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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hoi파파 Apr 02. 2020

아들아! 일에는 다 순서가 있단다

다섯 살인 아들은 오늘만 산다. 조금 전까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중요하지도 지금 하는 행동이 앞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궁금해하지 않는다. 아들은 과거도 미래도 아닌 지금 이 순간에 충실히 살고 있다. 의식의 흐름대로 결정하고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지금 당장 해야 한다. 하고 싶은 대로 하지 못하면 누구보다 힘들어한다. 지금 이 순간을 즐기는 아들과 한 번에 한 가지씩만 하라고 관여하는 나와 실랑이가 벌어지는 상황이 늘었다.  


#지금 이 순간, 당장 해야 하는 아들

양치를 하다 말고 딴짓하는 아들. 아무렇게 내동댕이 쳐있는 칫솔을 보면 속이 타들어간다. 육아서대로 아이에게 단호하지만 부드러운 목소리로 하던 양치를 마무리하고 다른 것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것도 처음 몇 번이다. 아들의 관심은 이미 놀이에 꽂혔고 거실을 활보하며 다니기 바쁘다. 청유형으로 다시 말해보지만 소용없다. 아들은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 못한다.


돌아다니면서 먹는 밥도 눈에 거슬렸다.(점점 과거형이 되고 있어 감사하지만) 다 같이 밥을 먹은 후로 돌아다니면서 먹는 습관이 고쳐지고 있지만 (다섯 살 첫째와 갓 돌 지난 둘째와 식사 시간이 달랐고 챙기다 보면 아이들 먼저 먹이는 경우가 많았다) 예전에는 말도 못 했다. 아들에게 "밥은 식탁에서, 한자리에 앉아서 먹었으면 좋겠다" 수도 없이 말했던 것 같다. 아들은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입 머금고 곧장 자리를 떴다. 꼭꼭 씹지 않고 오물거리는 탓에 밥 한술 넘기기 힘들었다. 말을 삼키며 눈을 질끈 감을 때가 하루 이틀 아녔다.   

 

지금. 지금. 지금. 먹고 싶다고!


"잉! 오렌지 먹고 싶은데." 입을 삐죽거리며 보챈다.


"오늘은 바나나 먹자" 어째 이미 바나나를 사버렸다.


아들이 오렌지를 먹고 싶은 것은 알겠으나 이미 바나나를 사버린 것을 어쩌겠는가. 그래도 오렌지 먹고 싶어 하는 아들 마음을 공감해줬다. 오렌지 먹고 싶었어? 오렌지 먹자! 그런데 지금 늦어서 오렌지를 살 수 없어, 바나나가 있어서 그것부터 먹어야 해. 다음에 오렌지 사는 건 어때? 달래 보지만 아무 소용없다.


아들이 지금 먹고 싶은 것은 오렌지일 뿐, 좀처럼 다른 것으로 타협이 되지 않았다. "지금 오렌지 먹고 싶은데" 계속해서 같은 말만 하는 아들에 한숨을 푹 쉬었다.


아들은 뭐에 꽂히면 지금 당장 그것을 해야 한다.


다음 이미지

#한 번에 한 가지씩. 잔소리하는 아빠

한 번에 한 가지씩 해도 모자랄 판에 이것저것 하느라 어느 한 가지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아들을 지켜보고 있자니 천불이 났다. 아들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며 제발 부탁이니 "한 번에 한 가지씩 하는 건 어때?" 권유해보지만 아직 어러서 그런지 말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다. 아들 입장에서는 그냥 잔소리다. "아빠는 왜 이렇게 말이 많아?"(해석: 아빠는 왜 이렇게 잔소리가 많아?) 천연덕스럽게 되받아치는 아들에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그래도 일의 우선순위를 가르쳐야 한다고 믿는다. 지금 당장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상황에 따라 부득이하게 절제해야 할 때가 있다. 아들에게 한 번에 한 가지씩 하고 한 가지의 일이 끝나면 다음 것을 했으면 좋겠다고 가르치는 이유다. 


아들아!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은 좋은데, 하는 것은 마무리하고 하자. 아빠가 살아보니 시작만큼 중요한 게 마무리더라. 어쩌면 마무리가 더 중요할지 몰라. 쓸데없는 일을 안 벌이기 위해서라도 지금 가장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에 따른 순서를 정하렴. 너의 삶을 응원한다.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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