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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hoi파파 Apr 08. 2020

아빠는 요리사

아버지는 무슨 남자가 주방에 가냐고 한마디  쏘아붙였다. 주방은 여자가 가는 곳이라며 핀잔 주는 아버지의 말에 도저히 납득되지 않았다. 사람 무안하게 만드는 아버지의 잔소리가 듣기 싫을 뿐이다. 사실 지금도 아버지의 잔소리는 여전하. 아이들 저녁 준비하다가 아버지 눈치를 보며 설거지했던 때가 떠올랐다.   


조선 시대 같 아버지는 남자, 여자의 역할을 확실하게 구분했다. 바깥일은 남자가, 집안일은 여자가. 아버지는 남자는 직장에서 돈만 잘 벌어오면 그만 아니냐고 오히려 큰소리치셨다. 벌이로 집안일에 소홀해진 어머니를 와주기는커녕 왜 일하러 가냐고 틈만 나면 역정 내 분이었.


아버지에게 최고의 아내 상은 내조를 잘하는 여자였다. 남자가 성공하려면 여자의 내조가 있어야 한다. 한마디로 아버지의 말은 남자의 실패는 내조하지 못한 여자의 탓이었다. 자신이 술 먹는 것도 엄마 탓, 이렇게 사는 것도 엄마 탓. 심지어 할아버지가 정치인으로서 실패한 것도 할머니 탓을 했다. 


그것은 아버지가 선택하신 일이잖아요 버럭 화를 내도 상황만 악화될 뿐 아무 소용없었다. 내가 네 엄마한테 못 얻어먹어서 이렇다며 잔뜩 취기 올라 비아냥거리는 아버지. 어머니를 빙 둘러 비난하면서 너는 요리를 잘하는 여자를 만나라며 속을 뒤집어 놓는 그런 분이 나의 아버지였다.  


집안일에 남자 여자 구분할 필요가 있나, 아버지에 대한 강한 반발감으로 생긴 생각임에 틀림없다. 집안일 중에 자기가 더 잘할 수 있는 것을 하면 될 일을 상대에게 미루면서 다툴 이유가 있나 여자의 일이라고 떠넘기는 아버지가 이해되지 않았다. 잔뜩 쌓인 설거지거리를 먼저 본 사람이 하면 그만인데. 아버지를 지켜보면서 그게 그렇게 목숨 걸 인가 싶기도 했다. 요리하는 아빠, 전등 가는 엄마 더 멋지지 않은가. 적어도 나쁘지 않다.

내가 무슨 당신 밥 해주러 결혼했어?


웃으며 말하는 아내 말이 맞다. 가끔 퇴근하면 잘 차려진 저녁 밥상을 상상하곤 한다. 아이들 밥 챙기는 아내에게 "그럼 난?" 천연덕스럽게 아내에게 장난 걸듯 물어본다. 내심 아내의 밥상을 기대하는 나를 발견하곤 눈이 번쩍 뜨일 때가 있다. 아내가 밥 차려주는 사람은 아니지만 안 차려주면 서운한 것도 사실이다.


가끔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 요리를 한다. 딱 3분 요리다. 오늘은 뚝딱 만들기 쉬운 카레 덮밥을 해줬다. 정말 간단하다. 포장지 뒷면 레시피대로 하면 된다. 당근, 호박, 표고버섯을 깍두기 모양으로 한 주먹씩 썰어 그릇에 담아두면 준비 끝. 카레용 돼지고기를 펜에 기름을 둘러 볶은 다음 썰어 놓은 당근, 호박, 표고버섯을 펜에 넣는다. 노릇노릇 익어갈 때쯤 물을 자박자박 붓고 카레 가루를 넣는다. 지글지글 끓이면 끝.


아이들이 맛있게 먹으면 행복하다. 덮밥류, 유부초밥, 계란탕, 계란 프라이 같이 소소한 메뉴이지만 아이들도 가끔 받는 아빠표 밥상을 좋아하는 것 같다. 아내표보다 인기 만점이다. 아이들은 갖은 재료를 다듬고 칼질하는 모습이 신기한지 요리하는 내내 옆을 떠나지 않고 지켜본다. 아이들의 반응을 보면서 맛을 떠나 요리하는 아빠의 모습은 그 자체가 자녀 교육이라는 것을 믿게 되었다.

살아보니 행복은 가까운 곳에 있다. 적은 노력에도 얼마든지 좋은 남편,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었. "이유식은 내가 할게." 호기롭게 호언장담했던 약속은 아직도 못 지키고 있지만. 가끔 밥상을 차린다. 싱크대에 쌓인 설거지를 의식적으로 한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 궂은일은 언제나 나의 몫이다. 


결혼해보니 결혼 생활은 서로 노력하지 않으면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없는 일이란 걸 새삼 깨닫는다.

아빠표 주말 점심

"아빠가 유호를 위해서 만든 음식이야, 맛있게 먹어주면 좋겠어!" 이 한마디를 거들면 아들은 그 어느 때보다 숟가락질이 빨라진다. 자리 한번 뜨지도 않고 허겁지겁 먹어치운다. "아빠 최고!" 아빠의 노력은 적은 시간 투자로도 그 몇 곱절 행복으로 돌아오는 것 같다.


아들아. 아빠가 만든 음식을 잘 먹어줘서 고맙구나! 무럭무럭 자라서 이다음에 아들 표 밥상 차려주면 좋겠다.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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