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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hoi파파 Mar 24. 2020

나방 죽음에도 슬픔 애도의 5단계를 거치는 아들

6시 30분 이른 아침. 매일매일 알람 시계 같은 두 아들 덕에 강제 아침형 인간이 된 지 오래다. 아이가 태어난 후 늘어지게 자고 싶은 마음을 접다. 그래도 7시에 일어나는 날이면 호사를 누리기하는데, 오늘이 그날이었다. 오랜만에 누리는 꿀 같은 30분. 진작 30분 전에 눈은 떴지만 그냥 누워서 늦장 부렸다.


삼시세끼 꼬박꼬박 챙겨 먹는 두 아들 아침밥부터 챙겼다. 밥통에 밥이 없었다. 부랴부랴 쌀을 씻고 밥을 안쳤다. 취사 버튼을 누르니 7시. 안방에서 슬금슬금 기어 나오는 두 아들에 소름 끼쳤다. 8시까지 아이들과 놀다가 출근 준비를 했다. 아들 노는 소리에 깬 아내는 아이들에게 김밥(그냥 맨밥에 김)을 먹였다.


나도 삼식이. 두 아들이 나를 닮았나 보다. 굳이 안 먹어도 되는 아침밥. 먹고 가면 늦을 것 같았지만 기어코 챙겨 먹었다. 싱크대 옆에 서서 아침 먹고 있는데.


으악!


갑자기 소리 지르는 아내 목소리에 더 놀랐다. 나방 때문이었다. 나방 같은 건 죽이지 못하는 아내이지만 이미 나방은 아내 손에 짓눌려 처참하게 죽어있었다. 아내 말을 들어보니 죽일 의도는 없었다. 우연찮게 놀라며 호들갑 떤 손에 작은 생명이 하늘로 떠난 것이었다.


"왜 나방을 죽였어!" 아들은 나방을 보며 원망 섞인 말을 아내에게 했다.


아내도 그렇게 죽을 줄 몰랐을 거다. 억울한 아내는 "나방이 엄마 손으로 날아와서 죽은 거야!" 아들에게 해명을 하기 시작했다. 아들이 계속 되묻자 "나방이 앞을 안 보고 날아와서 엄마 손에 부딪혀 죽은 거야, 그러니 유호도 신호등 잘 보고 앞 보고 잘 건너..." 아내 말에 갸우뚱거렸지만 누구보다 아들을 달래주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모자간의 대화를 가만히 듣자니 웃겨 죽는 줄 알았다.   


갑자기 안방에 들어가는 아들. 이어 아들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아내에게 "우는 거야? 나방이 죽었다고?" 아들의 행동이 귀여우면서도 웃겼다. 웃으면 안 되는 줄 알면서 웃고 말았다. 기다리면 안방에서 금방 나올 줄 알았다. 몇 분이 흘렀지만 나오지 않아 아들을 달래줄 겸 안방으로 들어갔다.


나를 보자마자 오열하는 아들. 꺽꺽 운다. 조용히 아들을 안아주었다. 속으로 그게 울 일인가 싶었지만 어쩔, 아들의 감정을 존중해줘야 하는 것을. 품에 안고 토닥거려주었다. 다섯 살 아이 감수성 폭발인가, 좀처럼 감정이 추슬러지지 않았다. 계속해서 울음을 그쳤다가 다시 울었다.


우리 기도하자


결국 죽은 나방을 위해 기도하는 아내. 침대 위에 두 아들과 기도하는 아내의 모습이 마치 골방에 들어가 기도하는 모습 같아 성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다음 이미지
유호야! 네가 그렇게 울고 있으면, 나방이 슬퍼서 하늘나라로 못가. 우리 나방이 좋은 곳으로 가라고 같이 기도해주자. 하나님 우리 나방이 좋은 곳으로 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아멘" 할 때 아들이 얼굴을 이불에 파묻고 오열했다고 한다.


결국 아들은 나방의 죽음을 받아들였다. 그제야 안방에서 나왔다. 그래도 아들 표정에서 여전히 슬픔이 묻어 나왔다. 출근하려고 현관문 나서는 내내 "아빠! 나방은 언제 올까? 묻는 아들. "아빠가 데리고 올게, 하늘나라 갔지만 또 날아올 거야!" 안심시켰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헤벌쭉 거리며 헤헤 웃는 아들이다.


아들에게는 나비도 나방도 다 같은 소중한 친구였나 보다. 나방 죽음에도 슬픔, 애도의 5단계를 거치는 아들을 보면서 "나비도 아니고 나방인데"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마음을 반성했다. 어른들보다 아이들이 낫다. 타인의 아픔과 고통을 생략하지 않고 충분히 공감해줄 수 있다면 지금보다 더 살만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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