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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hoi파파 Apr 28. 2020

바람처럼, 운명같이 셋째가 내게 왔다

아들만 셋은 아니겠죠?

셋째 임신은 운명이었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몇 가지 일들이 셋째 임신을 암시라도 하듯 벌어졌다. 지난 일들을 가만히 돌이켜보면 지금도 소름이 돋는다. 물론 긍정적으로 의미 부여하고 해석해서 그럴 수 있지만 말이다. 어쨌든 지금으로서는 셋째 임신을 조금씩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마치 피할 수 없는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돌이켜보면 불길한 예감은 항상 비켜가지 않. 한 달 전 친구네 부부와 동생네들 부부들과 식사하는 자리가 있었다. 우리 가족을 포함해 네 가족이 모여 함께 식사를 했다. 그 자리는 동생네 부부가 자신의 집으로 초대한 자리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둘째 임식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다. 공교롭게도 우리 가족만 빼고 그날 모인 가족 모두 임신 중이었다.(그때 아내도 임신 중이었는데 와우!)


둘 키우는 아 팁과 출산 준비에 대한 노하우를 전수했다. 친구네 부부와 동생네들 부부는 첫째 아니면 둘째 임신이었고 아이 둘을 키우고 있는 우리로서는 해줄 이야기가 많았다. 이야기꽃을 피울 때쯤.


갑자기 태몽 이야기로 화제가 바뀌었다. 친구가 며칠 전에 꿈을 꿨다고 호들갑 떨며 말문을 열었다. 자기 꿈속에 우리 부부가 아이를 안고 유아 세례를 받고 있었다고, 태몽 아냐며 흥분하는 게 아닌가. 설마 하고 "유호야? 지호야?" 물어봤다. 둘 다 아니란다. 그럼 누구지... 왜 그런 질문을 했는지 지금도 이해 안 가지만 친구에게 "남자야? 여자야?" 다시 물어봤다. 보통 태몽은 동물이나 사물, 과일을 꾸는데 사진 찍듯이 생생한 장면 묘사에 왠지 느낌이 싸했다. 허걱, 세례 받는다니. 이상했지만 아니겠지 그냥 웃어넘겼다.


아내가 생리를 하지 않는다고 했을 때 등골이 오싹했다. 내색하지 않았지만 놀랐다. 임신이 아닌가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줄 알았다. 놀랐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생리가 늦어질만했다. 그때만 해도 코로나-19로 다섯 살, 13개월인 두 아들 독박 육아로 피곤이 누적된 상태였다. 극심한 스트레스 상황이라 단지 호르몬 변화로 생리 주기가 늦춰졌다고 생각했다.


4일 재택근무를 했을 때 점점 의심이 더해졌다. 지칠 때로 지친 아내, 4일 동안의 아내 모습을 보고 본능적으로 셋째를 준비했는지 모른다. 마치 잠자는 숲 속의 공주처럼 아내는 4일 내내 잠만 잤다. 한번 잠들면 일어날 생각을 안 했다. 그 덕에 4일 동안 업무 처리는 고사하고 두 아들 독박 육아를 해야 했다. 어느 때보다 피곤해하는 아내. 저녁 9시 육퇴 후에도 몸을 가누지 못했다. 평소 같았으면 거실에 나와 TV를 보거나 마사지를 받았을 텐데 아이들과 함께 다음날까지 한 번을 깨지 않고 푹 잤다. 그때 처음으로 적막한 거실에 덩그러니 혼자 남아 임신인가 생각했다.


임신 같은데 자꾸 아니라는 아내. 미칠 듯이 궁금해서 "생리해?" 물어봤다. 몇 번이고 돌아오는 대답은 "아니, 안 했어!"였다. 심증은 있는데 물증이 없으니 답답한 노릇이었다. 당장이라도 약국에 가서 임신 테스트기 사 올까? 생각했지만 단호하게 아니라고 하는데 별수 없었다. 단호한 아내 기에 눌려 깨갱 바로 꼬리를 내렸다.


아내는 며칠이 지나도록 계속 피곤하다며 누워있었고 춥다며 온몸을 이불로 싸맸다. 그때 올게 왔구나 확신했다. 돌이켜보니 나는 이미 예비 셋째 아빠처럼 굴었다. 피곤해하는 아내에게 무조건 쉬라고 했다. 설거지든 빨래든 안 해도 되니 그냥 누워있으라고 했다. 웃긴 것은 첫째든 둘째든 아내 배 위에서 장난치는 꼴을 못 봤다. 나도 모르게 빨래, 설거지, 식사 준비를 하고, 아이들을 돌보고 있었다. 누가 봐도 임신한 아내를 둔 남편의 모습이었다. 아내가 임신을 하면 남편도 호르몬 변화로 출산 준비를 한다는데 그렇게 셋째를 준비하고 있었나 보다.


촉이 좋은 처제가 임신을 축하한다며 치킨 쿠폰을 보냈다. 눈치 빠른 처제의 선물. 확실하지 않으면 안 보냈을 텐데 뭔가 수상쩍었다. 의심의 눈초리로 아내에게 임신 테스트기 사 올까 물어보았다. 친구 집에서 해봤다며 단번에 내 말을 잘랐다. 아니라는데 어쩌겠는가. 당장이라도 한 줄인 임신 테스트기를 보여달라고 하고 싶었으나 꾹꾹 참았다. 지금 생각하면 아내 말을 철석같이 믿은 순진한 바보였다.


아내가 도저히 저녁 준비를 못하겠다며 시킨 치킨. 바로 처제가 선물한 그 수상한 치킨이었다. 그래 오늘은 치밥이다. 나도 저녁 준비 못해. 대충 먹기로 하고 치킨 오기만을 기다렸다. 배달된 치킨을 식탁 위에 올려놓고 잠시 자리를 비웠다. 아내는 두 아들을 앉히고 먹을 준비를 했다.


이게 뭐야?  

첫째가 큰소리로 말했다. 첫째 쪽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순간 동공이 커졌다. 임신 테스트기였다. 순간 눈이 침침해졌다. 다시 눈을 크게 뜨고 확인했다. 2020.3.24. am 8:37. 첫째와 둘째 때 보지 못한 붉은색으로 선명한 두줄, 빼박이었다. 진짜 임신이구나. 그제야 크게 웃었다. "정말 임신이네, 수고했어!" 주르륵 울고 있는 아내를 안아줬다. 임신은 세 번 맞이하고도 말문이 막혔다. 나름 마음의 준비를 하고도 머리가 하얗게 되는 것은 세 번 모두 같았다. 그래도 두 번의 예방 주사로 좀 더 고마운 표현을 적극적으로 했던 것 같다.


그 일이 있은 후 설거지하고 있는데 불현듯 떠올랐다. 아내에게 "이건 정말, 핵 소름이야. 설마 첫째 유치원에 선발된 것도 다 셋째를 위한 큰 그림이었을까?" 말했다. 경제적인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라고 그랬나 봐. 로또보다 청약만큼 힘들다는 공립 유치원에 선발된 것 같다며 웃으며 아내에게 말했더니 어이없다는 듯 합리화하지 말라는 아내. 아내는 정말 어이없어했다.


결혼 전, 막연하게 세 명을 낳고 싶다는 생각 했다. 형제라곤 여동생 한 명밖에 없어 항상 크면서 형과 누나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외롭게 큰 나로서는 형제가 많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지 모른다. 그때 처음으로 아내에게 나는 세 명을 생각했었다고 솔직하게 고백했다.


나는 경제적인 부담만 없다면 넷까지 가능해. 도전?


당장 수술하기로 결심했다. 그동안 미루고 미뤘던 그 수술. 셋째를 임신하니 그제야 망설였던 수술이 하고 싶어 졌다. 누구의 말처럼 생산직을 그만 두기로 했다. 이제 서비스 업이 되겠지만 더는 자식 욕심이 없다. 솔직히 셋이면 충분하다. 아이들 뒷바라지보다 각자의 자기 삶, 부부의 삶을 살아야 하지 않나.


아내에게 미안하다. 며칠 전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로 살지 말고 당신의 이름으로 살라고 했는데 셋째 임신으로 한 2년 더 미뤄지게 생겼다.  


셋째 태명을 "찐이"로 정했다. 첫째는 태아 사진이 콩알만 해서 달콩이로, 둘째는 제주도에서 임신 소식을 들어 살고 있는 전주와 합쳐 주주로 정했다. 셋째는 정말 고민됐다.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찐.찐.찐." 진짜가 나타났다. (사실 영탁의 찐이야의 영향이 크다) 첫째와 둘째가 들으면 조금 서운해 할 수 있으나 진짜 같다. 진짜 막내라 찐막이라고 지어야 하나.   


아내 뱃속에 새 생명이 피어났다. 손톱보다 작은 아기집에 먹물로 찍은 듯한 점만 한 아기. 처음 듣는 아이의 심장소리는 안도감과 감격을 안겨줬다. 태아 심장소리는 언제 들어도 눈물 난다. 잠시 맡겨진 새 생명. 아이의 심장소리 들으며 이 아이가 세상에 아름답게 피어날 수 있도록 키우겠다고 다짐했다. 부디 건강하게만 자라 다오.


p.s: 이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과 구독자님 부탁이 있습니다. 댓글로 셋째를 임신 한 아내에게 축하 메시지 달아주세요. 아무래도 아내의 친구들과 가까운 지인, 가족들은 셋째 임신 소식에 축하보단 걱정부터 합니다. 자신을 불쌍히 여기고 안쓰럽게 바라보는 시선 때문에 자꾸 위축이 되는 것 같아요. 마땅히 축하받아야 하는데 임신 소식을 전하는 것도 꺼리게 되었습니다. 누가 볼까 브런치에 글 올리지 말라는 아내에 괜히 미안해지네요. 아내를 걱정하는 마음인 줄 알지만 지금은 축하만 해주고 싶네요. (무플일까 살짝 두렵지만) 축하 메시지는 아내에게 큰 위로가 될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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