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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hoi파파 May 07. 2020

여자 구두를 사달라는 아들, 취향 문제겠죠?

취향 문제일까요.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최근 아들이 여자 아이가 좋아하는 것들에 빠졌다. 아들은 [시크릿 쥬쥬] 별의 여신을 좋아한다. 차에만 타면 [시크릿 쥬쥬] ost를 틀어달라고 조른다. 귀가 아플 정도다. 한동안 [미니 특공대]에 빠지더니 이제는 거들떠도 안 본다. 계속 들어서 그런지 몰라도 시크릿 쥬쥬 가사도 외웠다. 카시트에 앉아 따라 부르는 아들. 뭐! 이 정도는 그냥 봐줄 만하다.  


어린이날 가족 데이트로 교보문고에 갔다. 지난번 아들과의 약속을 지킬 겸 스티커북을 사러 갔다. 부모 욕심에 그림책을 권했지만 아들은 관심 없다. 한동안 교보문고를 둘러보더니 결국 아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 것은 [시크릿 쥬쥬]였다. [시크릿 쥬쥬] 네일아트 스티커를 사달라는 아들. 티 안 나게 존중하려는 척했다. 넌지시 [미니 특공대], [헬로 카봇] 스티커를 권했다. 고민하는 것 같이 보여도 아들의 마음속에는 이미 [시크릿 쥬쥬]다. 다시 [시크릿 쥬쥬]를 들어 보인다.


완구류에 [시크릿 쥬쥬] 화장 놀이 장난감도 사고 싶은 모양이다. 아들이 집어 들었다. 진짜 얼굴에다 화장하는 건 줄 알고 화들짝 놀랐다. 아내가 그림 도안에 하는 거란다.   


닳고 밑창이 떨어진 운동화만 신으려는 아들. 집에 운동화가 없는 건 아니다. 새 운동화가 버젓이 있다. 하지만 아킬레스에 닿는 부분이 딱딱하고 불편하단 이유로 신기를 거부했다. 아내는 답답한 마음에 아들을 데리고 몇 번 운동화를 사러 갔다. 하지만 아들은 여자 구두를 사달라고 졸라대서 결국 그냥 돌아왔었다.  


이참에 운동화를 살 겸 교보문고에서 나와 매장에 갔다. 아니나 다를까 아들은 여자 구두가 있는 코너에서 움직이질 않았다. 반짝거리는 것이 좋은 건지 이유는 모르겠으나 구두를 사달라고 아들. 속으로 아! 또 시작이군. 언제 끝날지 모르는 아들의 구두 사랑을 지켜보자니 아빠로서 천불 났다.  


아내는 여유 있게 구두를 골라주며 신어보게 했다. 딸이었다면 참 아름다운 모습이었을 텐데. 속에서 무슨 남자가 구두를 신어 한마디 하고 싶었다. 결국 참지 못하고 아들에게 말하고 말았다. 그때 남의 시선에 신경 쓰는 나를 알아챘다.  

"유호야! 그건 여자 아이가 신는 거야!"


아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구두 삼매경에 빠졌다.


한참을 그렇게 신고 벗더니 결국 아내와 운동화를 골랐다. 아내는 아들에게 빨간색을 권했지만 아들은 노란색이 이쁘다며 노란색 운동화를 골랐다. 와우! 취향이 너무 확고해도 문제구나.


한 번쯤은 사줘야 한대


아내도 고민이 되었는지 며칠 전 어린이집에서 일하는 친구에게 물어봤다고 했다. "친구가 꼭 반에 한두 명 남자아이들이 여자 구두를 신고 온대." 친구가 아들 취향을 존중해줘야 한다며 저렴한 것으로 한 번쯤은 사주라고 했다고 했다. 그래야 스스로 느껴보고 다시는 신는다는 말을 안 한다고. 선택에 대한 결과도 오롯이 아이의 몫이란 말이었다. 그래서 아내는 사주려고 했구나.


아이가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쯤은 알겠는데 내 아이의 문제 앞에서 무너지는 게 부모 같다. 아이의 몫을 대신해주지 않는 것, 아이의 의사를 존중하는 것, 그 꼴을 지켜보며 기다려주는 것이 이토록 어려운 일이던가. 오늘도 반성하게 된다. 아들아! 한 번쯤은 사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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