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부모를 필요로 하는 시간은 생각보다 짧았다
심리적 이유기란 부모의 울타리를 벗어나 독립을 시도하는 시기를 말한다. 대개 사춘기라고 불리는 중학교 시기에 나타나는데 요즘 그 시기가 더 빨라졌다. 이때 아이의 감정 변화는 하루에도 수십 번 들쑥날쑥 거리며 끝없이 요동친다. 아이는 부모에게 의존하고 싶은 마음과 스스로 하려는 마음이 충돌하며 양가감정을 느낀다. 신체적으로 급격하게 성장하는 것과 달리 생각하는 힘이나 심리적으로 아직 미성숙하기에 아이들은 더 혼란스럽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는 과정인셈이다.
다섯 살 첫째는 감정이 섬세한 아이다. 네 살 때와 다르게 의사표현이 확실해졌다. 그때부터 아들과 미묘한 갈등 상황이 늘었다. 이때 아이의 행동에 초점 두기보다 속마음을 들여다보고 그 안에 숨은 그럴만한 이유를 살피는 것이 중요했다. 눈에 보이는 행동만을 보고 지나치게 개입할 경우 아이의 생떼는 심해지고 오히려 반항심만 키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이의 반응에 따른 부모의 태도가 중요했다.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
사실 그날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는 아들의 한마디가 가슴 한편에 아직도 남았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으나 첫째를 혼낸 것은 사실이다. 결국 아들은 자기감정에 못 이겨 안방 문을 쾅! 닫고 들어갔다. 둘째 사이에서 뭔 일이 벌어진 것인데, 상황을 안 따져보고 성급하게 첫째를 나무랐다. 첫째 입장에서 억울했던 모양이다. 첫째는 자기를 이해해주지 않는다고 느껴 방문을 닫는 것으로 감정을 터뜨렸다. 부모로부터 이해를 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는 것에 더 놀랐다.
아들이 부정적인 감정을 쏟아낼 때 받아주지 못했다. 문을 쾅! 닫고 들어가는 행동에 화가 났다. 지금 돌이켜보면 첫째를 더 살펴야 했다. 지금은 아들의 심리적 이유기를 잘 보낼 수 있도록 배려하지 못한 행동에 반성한다.
"내가 탈게."
어느 날 주말 나들이로 순창에 갔다. 꽃잔디가 이쁘게 핀 공원에서 킥보드를 탔다. 차 트렁크에서 킥보드를 꺼내고 아들에게 "아빠랑 탈래?" 물어봤다. 아들은 혼자 타기를 원했다. 요즘 한 번에 OK 한 적이 없어서 튕기는 줄 알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들에게 "아빠가 태워줄게!" 다시 물어봤다. 아들의 대답은 같았다. 자기가 타겠다며 발을 구르며 멀찌감치 슝 가버렸다.
킥보드 타는 형을 보고 따라 하고픈 14개월 둘째아들의 뒷모습을 보고 왠지 모를 허전한 마음이 밀려왔다. 그 순간 불현듯 스치는 말 한마디. [아이가 부모를 필요로 하는 시간은 생각보다 짧다]는 말이 그날따라 유독 소스라치게 피부로 와 닿았다. 첫째의 뒷모습을 보고 부쩍 큰 자립심에 뿌듯하면서도 언젠가는 내 손을 떠나겠구나 못내 서운한 감정도 들었다. 아이만큼 나도 혼란스러운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이제 하나둘씩 내려놓고 아이가 스스로 선택하고 경험하도록 배려해야겠다.
무서워서 무릎 위에 타던 놀이기구도 이제는 혼자 타는구나. 때 아닌 빈 둥지 증후군을 경험했다. 언젠가 내 품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허전한 마음이 들었지만. 아이가 이다음에 커서 자기 일은 스스로 선택하고 그 결과에 책임지는 어른으로 성장하길 바란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일찍이 스스로 선택해보고 경험하는 일이 중요하다. 부모란 아이의 자립심을 길러주고 세상에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라고 하는데 이 과제를 무난히 마쳤으면 좋겠다.
빠르게 흘러간 세월만큼 어느새 커버린 아이의 뒷모습을 보고 울컥한다. 유치원 졸업할 때 아니 고등학교 졸업할 때 울려나. 군대 간다고 머리를 빡빡 밀고 내 앞에 나타나면 정말 미쳐버릴지도.
아들아! 네가 할 수 있는 일의 시작과 완성은, 네 몫이야. 아빠는 단지 옆에서 응원하며 지켜만 볼게. 멋진 어른으로 자라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