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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hoi파파 May 21. 2020

부부 생활이 지루하다고요?

부부의 날, 지루하지 않은 TIP

오늘 학생들에게 점심 도시락을 주기 위해 차를 타고 각 가정으로 배달하고 있었다. 출발하자마자 라디오부터 틀었다. 사실 어느 채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라디오 DJ의 목소리가 나른한 오후를 깨우기 충분했다.


라디오에서 "부부 생활하면 무엇이 떠오르세요?" DJ가 물어봤다. 라디오를 들으면서 부부 생활하면 무엇이 떠오르는지 나름 생각해봤다. 곧이어 라디오에서 가장 많이 응답한 결과를 알려주었다.

 

지루하다


지루하다고? 생각지도 못한 응답이었다.



이내 아내의 생각이 궁금했다. 아내에게 바로 연락했다. 카톡으로 아내에게 "우리의 부부 생활을 떠올리면 한마디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어?" 물어봤다. 아내에게 카톡 오기를 "슬기로운 부부생활"이란다. 아무래도 "슬기로운 감빵생활" 드라마 제목을 따라한 것 같다. 아내에게 다시 생각해보라고 했다. 질문이 어렵나? 아내에게 "한 단어도 괜찮고, 감정도 괜찮아." 다시 알려줬다.


답장이 바로 오지 않는 것으로 보아하니 아내가 생각하는 것 같다. 좀처럼 쉽게 답하지 못하는 아내. 카톡 너머 아내의 모습이 그려졌다. 뭐라고 써야 할지 몰라 카톡을 썼다 지웠다 반복하고 있었지 않았을까. 아니면 속마음을 들키지 않기 위해 망설였는지도.


건전하다?


건전함? 19금 부부 생활에 건전함은 무엇? 아내의 예상치 못한 대답에 그 의미를 물어봤다. "어제 오빠 책 읽고 나 뜨개질하는 모습이 떠올라서..." 그래서 건전함이 떠올랐단다. 건전하다는 단어밖에 안 떠오르다는 아내의 대답에 뭔가 찜찜했다. 차라지 지루한 게 나아 보였다. 건전함은 뭐지? 상처 받을까 봐 말을 가려하는 거면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담담하게 들을 준비됐다고 아내에게 말했다.


아무것도 안 떠올라!


부부 생활이 없는데 어떻게 감정이 있냐며, 맨날 육아만 하고 아이들 이야기만 하다가 잠드는데...


우리 둘만의 부부 생활에 대한 그 어떠한 것도 안 떠오른다는 아내. 육아에 대해 말하라고 하면 감정 500개는 말할 수 있다는 아내에게 뭔지 모를 미안함이 밀려왔다. 아... 지금 아내의 마음이 버거운 육아로 하루하루를 근근이 버티고 있구나 싶어 나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오늘부터라도 둘만의 부부 생활을 가져보기 위해 아내에게 어떻게 둘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은지 물어봤다. 아내는 애들 없이 나가고 싶다고 했다. 아내는 한 달에 한 번이라도 둘만의 시간을 갖기를 원했다. 애 셋이면 상상도 못 하겠지? 이미 아내는 한 달에 한 번 둘만의 데이트도 사치라고 여기고 있었다.


아내는 그때 되면 자연스럽게 친구들도 알아서 날 안 부르겠지? 다시 푸념을 늘어놨다. 결혼 생활, 부부 생활이 반복된 일상, 버거운 육아로 자칫 지루할 수 있구나 싶었다.   


다음 이미지

라디오 DJ는 마지막 멘트를 했다. 그 지루함도 소중하다고 마무리하는 것 같았다. 일상이 무너진 부부에게는 파국이라는 것을 [부부의 세계] 드라마에서 볼 수 있었다며.


부부가 지루함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젊은 날의 뜨거운 사랑이 사랑의 모든 면이라고 착각해서는 아닐까. 예전 같지 않다며 사랑이 식은 거 아니냐며 상대를 몰아세우는 것이 그래서일까. 갑자기 사색에 잠기게 됐다.


아랫도리의 뜨거움과 상대의 눈빛만 봐도 쿵쾅쿵쾅 가슴 뛰던 시절의 사랑만이 사랑이 아님을. 결혼, 부부 생활은 때로는 어느 한쪽이 양보하고 배려해야 하는 사랑을 보여야 하고 서로 존중하며 희생과 책임으로 가정을 지켜야 하는 사랑을 해야 한다. 아이를 낳았다면 그 희생과 책임은 곱절 짊어지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쌓이고 쌓일 때 비로소 온전한 사랑이 찾아온다. (나름 심각해졌다.)


반복된 일상을 깨는 방법은 사소한 변화 하나면 충분하다. 사실 오늘이 부부의 날인지 몰랐다. 라디오에서 부부에 관한 이야기를 했을 때도 눈치 못 챘다. 순간 얼마 전 아내가 부부의 날이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고민했다. 그냥 집에 가느냐, 뭐라도 사들고 가느냐.


그래! 꽃을 사기로 결심했다. 눈에 바로 보이는 허름한 동네 꽃집에 들어가 꽃을 샀다. 아내에게 엽서에 편지도 썼다. 둘이 만나 벌써 다섯이 됐네요 편지에 마음을 담았다. 지루할 틈 없이 달려온, 때론 버겁고 힘들었을 결혼, 육아의 부부 생활이 몇 송이 꽃다발로 눈 녹듯 사라지진 않겠지만, 그랬으면 좋겠다.


TIP: 퇴근길에 아내를 위한 꽃 선물 어떨까요. 거창한 것보다 무심하게 건네는 꽃 한 송이에도 활짝 웃을 겁니다. 지금 눈을 돌려 꽃집을 찾아보세요. 오늘 밤 지루할 틈 없이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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