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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hoi파파 May 26. 2020

19금, 아들이라 쓰고 남자라 읽는다

아들은 아침부터 뜬금없는 질문을 했다.


여자는 고추가 어딨어?


유치원 등원 길, 아침부터 고추 이야기라니, 그것도 여자 고추. 무심하게 묻는 아들과는 다르게 아내와 나는 흠칫 놀랐고 순간 당황했다. 순간 침묵이 흘렀다. 아내와 나는 서로 눈치를 살피면서 딱히 뭐라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렸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어떻게 설명할지 번뜩 떠오르지 않았다. 그건 아내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곁눈질하는 아내 눈마주쳤는데 어떻게라도 해보라는 눈치다.


태어난 지 36개월이 부모의 성기나 신체 구조를 관찰한다고 한다. 딱 첫째가 그랬다. 돌이켜보면 첫째는 목욕할 때 나의 성기를 유심히 관찰했다. 자신의 몸과 달라서 그런지 신기하게 쳐다봤다. 아들의 노골적인 눈빛에 아무리 아들이지만 민망했다. 처음에는 아들의 시선을 무시하고 딴청을 피우거나 시선을 다른 으로 돌리기 위해 황급하게 화제를 바꿨다. 털도 하나의 장난감이 될 수 있구나를 아들을 보고 알았다.  


아들은 쳐다보는 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불쑥 손을 내밀어 그곳을 만지려고 했다. 호기심 어린 아들 손에 놀란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나중에는 아예 만져 보도록 했다. (정작 멍석을 깔아주니 오히려 안 만지더라.) "이제 유호 목욕은 당신이 시키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아내의 말이 이제 와서 이해된다.


언젠가 맞이할 순간이라고 생각했지만 이토록 빠를지 몰랐다. 이제는 아들이라 쓰고 남자라고 읽어야 할 시기에 접어들었다. 15개월인 둘째는 첫째보다 빠른 것 같아 더 당혹스럽다.


15개월 둘째는 지금 자신의 성기에 대한 호기심이 왕성하다. 기저귀를 갈 기 위해 벗겨놓면 기회는 이때다 싶은지 손가락으로 자신의 성기를 꾹꾹 눌러본다. 떡 주무르듯 주물럭거리는데 보는 내가 더 아프다. 그뿐만 아니라 형의 것도 서슴없이 만진다. 첫째가 옷을 갈아입거나 함께 목욕을 하고 있으면 첫째의 그것을 재빠르게 잡아당긴다. 그럴 때마다 둘째를 말리느라 진땀 뺀다.  


아들 공부가 필요하단 말에 성교육 육아 서적도 찾아봤었다.


자신의 성기를 가지고 놀 때 부모의 태도, 반응이 중요하다고 한다. 호들갑 떨지 않고 차분하게 아이들과 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는데, 정가능하기나 한 일일까. 성기를 만지면서 탐색에 열을 올리는 것을 목격하고도 질겁하지 않을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당황해서 대충 얼렁뚱땅 얼버무리고 말았다. 아무리 마음에 준비를 하고 육아 서적을 본들 아무 소용없었다. 그 당혹스러움이란.


무엇보다 좋지 않은 행동이라고 질책하면 안 된다고 해서 잘못된 행동이라고 다그치지 않았다. 아들이 수치심을 느끼지 않도록 고추는 소중한 거라고 차분하게 설명해 줬다. 소중하기 때문에 유호가 지켜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지 않으면 더 은밀하게 즐긴다는데 그건 정말 싫었다.


다음 이미지

아들이 난생처음으로 여성의 몸에 관한 질문을 구체적으로 했다. 아들에게 처음 받아보는 질문에 당황했다. 여자 고추를 어떻게 설명해주지 고민하다가 그냥 아들에게 덤덤하게, 솔직하게 말했다.


여자는 고추가 안에 있어!


더 이상 다른 말은 떠오르지 않았다. 나름 최선의 답이었다. 아들에게 알려주면서도 게 설명하는 것인지 의심이 들었다. 나름 당황하지 않고 차분하게 말하려고 애썼다. "여자는 고추가 안에 있어, 유호처럼 남자는 고추가 밖에 있어." 아들은 설명을 듣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이내 조용해졌다. 아들상상의 나래 펼치고 있는 중이었다. 오히려 아들의 침묵에 당황했다.


일단 시작했으니  마무리를 해야 했다. 이상한 침묵을 깨고 아들에게 "그러니까 여자 고추도, 남자 고추도 소중하니까 지켜줘야 해!" 최대한 교훈을 담아 다시 설명해줬다.


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나름 훌륭한 대처였다고 생각해 아내를 쓰윽 봤다. 아내는 마지막 말을 듣고 어떤 의미인지 모르겠지만 피식 웃었다. 어쨌든 아내가 웃었으니 잘한 거라 생각하는데 잘 모르겠다. 오늘은 아침부터 진땀 흘린 하루다.    


어느 육아 책에서 네 살짜리 아이가 해수욕장에서 수영복을 입지 않으려고 할 때 옷을 입히는 것도 성교육이라고 했다. 사실 아들이 화장실에서 볼일을 본 다음 속옷을 안 올리고 나가려고 할 때 다른 사람들이 보면 안 된다고, 소중한 거라고, 잘 지켰으면 좋겠다고 했었는데 이미 나도 모르게 성교육을 하고 있었다. 네다섯 살 무렵 꽃 피우는 성 호기심. 앞으로 진짜 사춘기를 겪을 두 아들을 위해 단단히 마음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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