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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hoi파파 Jun 02. 2020

부부의 텔레파시

말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부부라서 통하는 뭔가가 있다. 갑자기 텔레파시의 정의가 궁금해졌고 국어사전을 검색해봤다.


텔레파시란 통상의 감각적 의사전달 통로를 이용하지 않고 한 사람(전달자 또는 행위자)의 생각이 다른 사람(받는 사람 또는 지각자)에게 직접 전이되는 현상을 말한다. 부부에게도 텔레파시라는 현상이 존재할까.

이 글은 아내와 텔레파시가 통했던 찌릿하고 짜릿한 이야기다.


# 하루에 두 번씩이나 통한 텔레파시

며칠 전 가족들과 함께 미용실로 갔다. 아내는 푸석해진 머리를 손질하기 위해, 나와 첫째 아들은 덥수룩하게 자란 머리가 지저분해서 정리하기 위해, 둘째는 맡길 때가 없어서 함께 갔다. 나름 가족 나들이였다.


텔레파시는 미용실 데이트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통했다. 집으로 가기 위해서는 전주 시내를 지나가야 한다. 전주 한옥마을을 지나 전동성당에 다다를 때, 중앙시장이 보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중앙시장에 있는 떡골목이 눈에 들어왔다.


떡골목은 중앙시장에서 가장 유명한 곳이다. 그날 만들어진 떡을 맛볼 수 있다. 두 세 사람이 지가면 어깨가 부딪힐 정도 좁은 골목길 안에 떡집이 들어서 있다.


초등학생 때 장 보러 가는 어머니 손을 잡고 자주 따라갔던 곳이기도 했다. 떡골목 입구부터 기름진 고소한 떡 냄새가 풍긴다. 마치 유럽 빵가게에서 풍기는 갓 구운 빵 냄새랄까. 그곳을 지나갈 때면 황홀한 떡 냄새로 입안에 군침이 돌았다. 인심도 후했다. 지나가는 사람이 떡을 사든 안 사든 주인 할머니는 떡을 먹어보라고 줬다. 시식해보라고 내놓은 떡으로 배를 채운 기억이 있다. 떡 가게에서 파는 떡볶이를 먹어본 적이 있는가. 아마도 금방 나온 떡으로 달짝지근하게 만든 떡볶이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지 않을까.


마침 저녁 식사 전이었다.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결국 아내에게 떡골목이나 들렸다가 갈까 물어봤다. "핵 소름." 깜짝 놀라며 쳐다보는 아내의 반응에 더 놀랐다. 이게 웬걸 아내 역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내는 자기도 방금 중앙시장을 지나면서 떡골목에서 파는 떡볶이가 며칠 전부터 생각났다고 했다.(그 사이 떡골목을 지나쳐 가는 바람에 결국 먹지 못했다.)  


중앙시장을 거쳐가면 모래내 시장이 나온다. 그 인근에 맛집이 있다. 안골 사거리 못 미쳐서 팥죽 가게다. 그곳은 팥을 좋아하는 아내 덕에 연애할 때 자주 갔었던 집이다. 둘만의 아지트다. 팥죽 맛도 맛이지만 겉절이가 일품이다. 아내는 팥죽을 나는 금방 막 무친 겉절이 먹으러 갔었다. 보리밥은 개인 당 메뉴를 시키면 무한 리필로 먹을 수 있다. 보리밥을 먹다 보면 큰 대접에 흘러넘치게 나오는 팥죽 덕에 1인분은 항상 위생봉투에 싸서 가져와야 했다. 배불리 먹어도 남는, 뭔가 대접받는 느낌을 받는다.   


떡골목은 잊은 지 오래다. 모래내 시장을 지나가니 싱싱한 상추, 부추와 무생채를 넣은 짜지 않는 엇구수한 된장과 비빈 보리밥에 올려먹는 아삭아삭한 겉절이가 생각났다. 아내에게 예전에 거기 많이 갔었는데, 언제 팥죽 먹으러 가자고 했다. 아내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눈이 휘둥그레 졌다. 또다시 소름 돋았다는 반응이다. 자기도 방금까지 그 생각했다며 팥죽을 먹고 싶어 했다.(첫째 유치원 갈 때 둘째를 맡기고 갑시다.)


# 주말 나들이때 통한 텔레파시

요즘 일하면서 엠씨 더 맥스 노래만 듣는다. 명곡이 이렇게나 많을 줄이야. 같은 노래를 1시간 들은 적도 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아내도 최근 들어 엠씨 더 맥스 노래만 듣는다고 했다.


저번 주, 주말 가족 나들이로 무주 반디랜드에 갔다. 차에 탄지 30분 만에 두 아들은 잠들었다. 재빠르게 첫째가 듣고 있던 노래를 껐다. 옆에 타고 있는 아내에게 노래를 틀어달라고 했다. 아무 노래도 괜찮았다. 첫째 아들의 시크릿 쥬쥬 노래만 아니면 됐다.


아내는 엠씨 더 맥스 노래를 틀어줬다. 한참을 듣고 있는데 갑자기 아내가 엠씨 더 맥스 노래 중에 숨은 명곡이 있었다며 들려주겠다고 했다. 이내 아내는 그 노래를 찾았고 [낮달]이라는 노래를 틀어줬다.  


사실 [낮달]은 평소에 즐겨 듣던 노래였다. 아내가 숨은 명곡이라고 했을 때 속으로 별달인가 낮별인가 정확하게 제목은 떠오르지 않았지만 혼자 그 노래를 생각하고 있었다.


아내가 노래를 틀어줬을 때, 제목은 떠오르지 않아 아내에게 낮밤인가 별달인가 그 노래 아냐 말했다. 아내는 소름 돋는다는 반응을 보였다.(분명 결이 다른 소름이었지만.)와! 어떻게 이 노래를 알지? 트로트만 들을 것 같은데 하는 놀라움이었다. 어쨌든 아내와 나는 결이 달랐지만 소름 돋고 말았다.


부부는 닮아간다는 말이 있다. 실제로 연구 결과 오래 함께 살 수록 닮아가는 부분이 많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는 성격이 갈수록 비슷해지는 결과라고 했다.


부부의 텔레파시는 어쩌면 전혀 다른 세계에 살던 두 사람이 만나 함께 살면서 양보하고 배려한 결과는 아닐까. 함께 산 세월만큼 두 사람이 공유하는 기억과 추억이 늘어가고 성격과 함께 취향도 닮아가는 것 같다. 어떤 사물이나 장소을 보거나 머물 때 함께 했던 추억, 그때 감정이 떠오르는 것도 그 이유다. 텔레파시란 이름으로 어느새 아내와 나는 서로 닮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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