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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hoi파파 Jun 18. 2020

유대인 부모가 되긴 글렀다

몇 개월 전 둘째가 tv를 고장을 냈다. 둘째가 손에 들고 있던 장난감으로 tv화면을 쳤다. 얼마나 세게 내리쳤는지 그 뒤로 tv화면이 나오지 않았다. 아내는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져서 둘째를 말릴 틈이 없었다고 했다. 둘째 덕에 몇 개월 동안 거실에 tv 없이 생활을 했다. 일부러 tv를 고치지 않았다. 눈물을 머금고.  


유대인 부모는 거실에 tv를 놓지 않는다고 한다. tv대신 책장을 놓는다는데 유대인 가족의 거실 문화는 가족과 대화하고 질문과 토론하는 공간이었다.


어차피 이렇게 된 바에야 유대인 부모처럼 살아보고자 마음먹었다. 유대인 부모처럼 일부러 아이들에게 질문하고 토론하진 않았지만 거실에 tv가 없으니 자연스럽게 놀이 공간으로 바뀌었다. 놀면서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사실 tv가 잘 나왔을 때도 아이들에게 tv를 보여주진 않았다. 저녁시간이나 주말에 tv를 줄곧 틀어놓지 않았다. 특별한 경우에만 틀었다. 아이들과 외출 준비를 할 때, 혼자서 두 아이를 재울 때는 첫째에게 잠깐 동안 tv를 보여주고 그 사이 둘째를 재웠으니 tv는 유용한 육아 용품이나 다름없었다.

tv에 무섭게 빠져드는 둘째

tv는 아내와 나를 위한 도구이기도 했다. 아이들이 먼저 밥을 먹고 일어서면 tv를 틀어주고 아내와 오붓하게 저녁 식사를 하기도 했다. tv는 육퇴 후 항상 켰다. 그때부터 잘 때까지 줄곧.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을 보는 재미가 솔솔 했다. 고된 육아에 대한 보상이랄까.


[사랑의 불시착] 드라마 본방 사수를 위해 아이들을 재우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지금 생각하면 tv가 없어서 아쉬운 것은 아이들보다 아내와 나... 솔직히 나였다. tv가 고장 나서 [부부의 세계] 본방 사수를 못한 게 지금도 아쉽다. 앞으로 얼마나 더 재밌는 드라마가 나올지 걱정이 앞섰다.


돌이켜보니 강제였지만 유대인 부모처럼 몇 달간 지내보니 좋은 점이 있었다. 우선 아이들이 tv를 보지 않아서 좋다. 첫째는 다섯 살이라 통제가 어느 정도 되는데 이제 15개월 인 둘째가 tv에 노출되기에는 너무 일렀다. 언제부터 tv에 집중하는 둘째를 보고 치워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문제는 덩달아 아내와 나도 tv를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한동안 적응 못해서 tv대신 유튜브를 봤다. 이제는 나름 의미 있는 시간으로 채우기 위해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다. 그렇게 한지 며칠 되진 않았지만 즐거웠다.

tv를 고치는 것이 신기한 거니, tv 볼 생각에 들뜬 거니

장모님 tv도 고장 났다. 다행히 구입한 지 1년이 되지 않아 무상으로 고칠 수 있었다. 장모님은 그보다 큰 tv를 새로 살 거니까 고쳐서 쓰라고 했다. 고민했다. 이걸 받을 것인가 말 것인가.


결국 tv의 유혹을 이기지 못했다. 나름 나쁘다고 무조건 치우는 것이 나은가, tv도 순기능이 있는데 자기 조절 능력을 키우는 것이 좋은 교육 아닌가라고 합리화하고 말았다. 그래! 결심했어! 유대인 부모처럼 어설프게 따라 하기보다 내 스타일에 맞는 부모가 되면 된다고.


나중에 아이가 크면 애들한테 tv 보지 말고 공부하란 말 못 할 것 같다. 그런 적은 없지만 앞으로도 애들 앞에서 소파에 누워 tv 리모컨을 손에 쥔 채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지 않겠다고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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