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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hoi파파 Jun 23. 2020

007 작전 같았던 결혼 5주년 기념 여행

지난 6월 20일 결혼 5주년 기념 일이었다. 벌써 결혼한 지 5년이라고. 후들거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신랑 입장했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두 아들과, 배속에 있는 셋째까지. 결혼 생활 5년을 돌아보니 세월이 빨리 지나갔음을 새삼 느꼈다. 나는 아내의 남편에서 세 아이 아빠로서 살고 있었다.


내는 몇 주전 주부터 결혼 기념을 맞아 여행을 가자고 했다. 얼마 만에 단둘이 떠나는 여행인가. 아마 작년 4월쯤으로 기억한다. 첫째가 어린이집에 간 사이 둘째를 장모님에게 맡기고 반나절 동안 산수유 보러 구례에 갔었다. 아마도 아내와 단둘이 간 마지막 여행이지 않을까 싶다.


잠깐이라도 좋으니 아내와 단둘이 가고 싶었다. 아이 없이 떠나기 위한 여행 계획을 척척 실행했다. 결국 결혼기념일이 아닌 19일에 연가를 냈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고 둘째를 18일 저녁에 장모님에게 맡겼다. 아내와 나는 첫째를 유치원에 데려다주면서 여행을 갈 생각이었다. 


아내와 단둘이 갈 생각에 들떴다. 육아로 잠자고 있던 연애 세포가 깨어나기 시작했다. 첫째를 이른 시간에 재우고 후다닥 여행 계획을 세웠다. 아내에게 어디 가고 싶냐고 물었다. 아내는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며 부여로 가자고 했다. 부여? 정령 결혼기념일 여행 테마가 역사란 말인가.


하지만 아내와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첫째 유치원 하원 시간에 맞춰 전주에 도착해야 했다. 오전 9시 출발해서 오후 4시 50분 도착. 8시간 남짓 둘만의 시간이 허락됐다. 


이른 아침, 첫째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서둘러서 부여로 떠났다. 마치 007 작전을 방불케 하는 긴장감 있는 여행이었다. 아이가 없는 여행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룰루랄라 출발부터 둘만을 위한 노래를 듣는구나. 

여행 전날 설렘 가득한 여행 코스

아내는 사랑나무에 사람들이 너무 많이 오기 때문에 줄을 서서 사진을 찍어야 한다고 했다. 알고 보니 드라마 촬영지였고 아내는 전날에도 드라마 촬영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왔다고 했다. 사람들로 붐볐다는 아내의 말에 맘 놓고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 걱정했다. 

걱정과 달리 주차장이 너무 휑해서 잘못 왔나 싶었다. 인기척이 없는 것으로 보아하니 사람들이 없어 보였다. 아내와 내가 가장 먼저 도착했다. 앗싸! 아내도 사진을 맘 놓고 찍을 수 있다며 신나 했다.   

사랑나무에 사람들이 붐비는 이유를 알았다. 오래 오르지 않은 곳에 사랑나무가 있었고 탁 트인 하늘과 풍경이 한눈에 들어와서 좋았다. 사랑나무의 가지 모양은 마치 하트 모양을 반절로 나눈 모습이었다. 아내는 사진을 찍고 좌우 반전을 시킨 사진과 합치면 하트 모양이라며 여러 포즈의 사진을 보여줬다. 

쨍쨍 내리쬐는 햇볕을 가려주는 큰 나무 그늘이 좋았다. 한참 뒤로 물러나야 나무를 찍을 수 있었다. 아내와 나는 한동안 사랑나무를 독차지할 수 있었고 남들 눈치 안 보고 맘껏 찍을 수 있어서 좋았다. 사람들이 줄 서 있었다면 남부끄러워서 과연. 


두 번째 장소인 궁남지로 출발했다.

궁남지는 마치 전주의 덕진공원 같았다. 산책길이 잘 조성되어 있었고 곳곳에 수련, 연꽃이 피어있었다. 아이들이랑 같이 왔으면 아마 덥다고 칭얼거리며 그냥 가자고 했겠지? 아내와 한껏 여유를 부렸다. 천천히 걷는 데이트, 연꽃이 피는 7월에 다시 오고 싶을 정도였다. 

결혼 5주년 기념 여행이 아니라 태교 여행이 돼버린 순간. 찐이야! 수련과 연꽃처럼 이쁘게 자라렴.

걷다 보니 배가 고파졌다. 아내가 맛집이라고 장원 막국수에 가자고 했다. 보쌈과 곁들여서 먹는 막국수. 가게에 들어가자마자 메뉴판이 눈에 띄었다. 메뉴는 간결했다. 막국수와 보쌈 두 가지밖에 없었다. 


줄 서서 먹는 이 곳, 맛집이 맞았다. 앉은 지 8분 만에 그릇을 비웠다. 익산의 부송 국수와 쌍벽을 이루는, 그날부터 부여의 장원막국수를 인생 국수로 칭했다.   

오죽 맛있었으면 게눈 감추듯 먹어 치웠을까. 새콤하고 시원한 동치미 국물이 맛깔났다. 벌써 12시. 전주로 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초초한 마음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로 다음 장소인 책방 세간으로 이동했다. 그림책과 독립 서적을 판매하고 있었다. 사장님은 담배 가게를 새로 꾸며서 만들었다고 했다. 사장님은 오는 손님마다 친절하게 대해줬다. 다음 일정도 커피숍이라 했더니 한잔만 시키라고 아내와 나를 배려해줬다. 자몽 에이드 한잔을 시키고 가게를 천천히 둘러봤다. 

사장님은 친근하게 다가와 차를 마시고 있는 아내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알고 보니 사장님은 모래놀이, 상담학을 공부한 분이었다. 사장님은 아내에게 읽어주면 좋겠다며 진열된 그림책 한 권을 내게 권했다. 어찌 결혼 5주년 기념이라는 것을 아셨을까. 그림책 읽는 내내 아내에게 프러포즈하는 것 같았다. 

이제 정말 1시간 남았다. 나도 모르게 애꿎은 시계만 계속 봤다. 부랴부랴 서둘러서 합송리 994로 향했다. 


커피숍에서 고양이 가족이 먼저 아내와 나를 반겼다. 앞마당에는 수국이 이쁘게 펴있었다. 멋들어진 한옥 창살 앞에서 인증 사진을 찍고 주문했다.

레몬 에이드와 모과차를 마시며 아쉬운 마음을 달래야 했다. 시간이 어찌나 빨리 가는지. 첫째 하원 시간에 맞춰 가려면 일어서야 했다. 아내와 나는 언제 또 단둘이 올 수 있을까 서로를 바라봤다. 짧았던 8시간의 데이트를 마치고 전주로 향했다. 여보, 궁남지 연꽃 보러 다시 옵시다. 


여보! 결혼 생활 5년 동안 함께 해줘서 고마워요. 두 아들과 전쟁 같은 육아를 치르고 있는 상황에 셋째 임신으로 많이 힘들죠. 고마우면서도 미안한 마음이 앞서네요. 손을 덜어주기 위해 노력하지만 당신만큼 되진 않구려. 당신처럼, 나도 항상 당신 곁에 함께할게요.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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