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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hoi파파 Jul 16. 2020

어찌하여 겁 많은 것도 아빠를 닮은 거니?

퇴근하면서 아들을 어린이집에서 데리고 왔다. 집 앞에 주차할 곳이 마땅히 없어서 집과 조금 떨어진 골목길에 주차를 할 수밖에 없었다.


아들이 차에서 내리더니 "아빠, 강아지 없는 쪽으로 갈래!" 겁먹은 표정으로 말했다. 이유는 집으로 가는 길, 모퉁이에 있는 집을 지나가면 사나운 개가 짖기 때문이다. 하지만 집으로 가려면 어쩔 수 없이 지나가야 했다. 그날은 유난히 아들이 주춤하며 머뭇거렸다.


아들에게 아빠랑 같이 가면 괜찮아, 아빠가 유호를 지켜줄게 안심시켰지만 그 집이 가까워질수록 아들은 오줌 마려운 강아지처럼 안절부절못했다. 내 손을 뿌리치고서는 그 집 대문 앞을 크게 돌며 멀찌감치 떨어져서 후다닥 달려가는 게 아닌가.


아들은 뒤를 돌아보며 뛰면서 큰소리치는데...


 "이~겁쟁이 녀석아!"

 "이 놈 시끼야!"


누가 봐도 아들의 얼굴은 겁먹은 표정이었다.


아들이 무서워 하건 말건 아들의 말에 빵 터지고 말았다.


진짜 무서우면 오히려 큰소리치면서 용기를 얻지 않은가, 겁에 질린 표정으로 되레 큰소리치는 아들을 보고 어렸을 때의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다음 이미지

그때(라테는 말이야)는 골목길에 나가면 약속을 하지 않았어도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우르르 몰려다니며 친구들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저녁 늦게까지 놀 때가 많았다.


초등학교 때 살았던 동네는 유난히 미로 같은 골목길이 많았다. 집으로 가기 위해서는 터널 같은 캄캄한 골목길을 지나가야 했다. 가로등 없는 어둑해진 골목 안을 바라볼 때마다 무서웠다. (한창 홍콩 할매 귀신 괴담이 유행했던 시기인지라.)   


어두운 골목을 들어가기 전에 항상 주저했다. 친구들이 귀신은 십자가 목걸이를 무서워한다, 주기도문을 외우면서 가면 귀신이 도망간다는 말을 위안 삼으며 용기를 얻었다. 골목을 지나갈 때마다 음정, 박자 무시하며 친구들과 큰소리로 찬송가를 부르는데 얼마나 멋쩍은지 민망함에 서로 자지러지게 웃었었다.


어찌하여 영락없이 겁 많은 것도 닮아서는. 아들의, 남자의 허세란. 애나 어른이나 같나 보다.


미로 같았던 옛 골목, 지금은 소방도로가 나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그때의 추억만큼은 남아있다. 아들도 나중에 나와 함께한 시간, 지금의 순간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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