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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hoi파파 Aug 04. 2020

아들과 함께 콩벌레를 입양했어요

요 며칠 계속해서 하늘이 구멍 난 듯 후드득 굵은 비가 거세게 내렸다. 한꺼번에 쏟아지는 빗물을 주먹만 한 크기의 하수구가 감당하지 못해서 집 앞마당에 있는 작은 하수구에 빗물이 제대로 빠지지 않았다. 에어컨 실외기가 잠길 정도였으니 나름 물난리를 겪었다.


아들이 거실에서 앞마당에 물이 차오르는 것을 가만히 보더니 울먹였다. 글썽거리던 아들은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아들이 울면서 "콩벌레, 콩벌레" 하는데 처음에는 아들이 왜 우는지 영문을 몰랐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아들이 불어나는 빗물에 콩벌레가 죽을까 봐 걱정했던 모양이다. 걱정하는 아들을 안심시켜야 했다. 아들에게 "유호야! 유호도 집안에 있으면 비 안 맞지? 콩벌레도 집으로 피해서 괜찮대." 안아주며 달랬다.  


아들이 콩벌레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알았으나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아들은 관심을 넘어 콩벌레를 좋아하고 있었다. 콩벌레에 대한 사랑이 유별났다. 아들은 앞마당에 있는 꽃밭에, 길가에 기어가는 콩벌레를 보면 지나가다가도 쪼그려 앉아서 유심히 살펴다. 겁이 많은 아들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콩벌레를 잡아 동그랗게 말린 콩벌레를 보여주며 자랑하는데 영락없이 다섯 살 호기심 많은 아이였다.


아빠로서 아들의 콩벌레에 대한 관심, 사랑을 지켜주고 싶었다. 아들에게 "유호야 콩벌레 키워볼까?" 부추겼다. 설거지하던 아내는 아들에게 콩벌레 키우자는 말을 듣고 기겁했다. 눈을 흘기며 그게 대체 무슨 소리냐는 듯한 따가운 눈총을 쏘아붙였다. 아들이 저렇게 좋아하는데 그깟 혐오스러움이 대수라고 인상 찌푸리는 아내에게 괜찮다는 눈빛을 보냈다.


그 후 며칠이 지났다. 이미 내뱉은 말 주워 담을 수 없는 노릇이고 이것 참 큰일 났다. 약속에 민감한 다섯 살 아들에게 거짓말쟁이 아빠는 되기 싫었다. 일을 벌여놨으니 어찌 수습해야 할지 고민했다.  


아내가 어쩔 수 없이 곤충채집통을 인터넷 구입했다. 아들이 곤충채집통 샀다는 아내의 말을 듣고 엄청 신나 했다. 진짜 콩벌레가 뭐라고. 아들의 순수한 동심을 지켜주기로 했다.


콩벌레를 키우기 위해 콩벌레에 대해 알아야 했다. 콩벌레야 어릴 때 놀던 친구였지 평소 그냥 지나쳤던 아이였다. 콩벌레가 등각류이며 생태계에서 청소부 역할을 하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실제로 등각류 사육 세트로 인터넷에서 판매하고 있었다. 콩벌레가 쥐며느리와 다르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일주일 전 콩벌레를 입양하기 위해 처가댁에 갔다. 말이 입양이지 아들과 함께 눈에 불을 켜고 콩벌레 잡았다.

우선 아들과 콩벌레가 살 집을 만들었다. 곤충채집통 바닥에 흙을 깔고 콩벌레가 숨을 수 있는 작은 돌 몇 개를 쌓았다. 한쪽에는 뿌리째 뽑은 잔디를 심어주고 축축한 볏짚을 그 위에 깔았다. 나름 셀프 인테리어 한 셈이다. 완성된 콩벌레 집을 보고 아들보다 내가 더 좋아했다. 완성된 집을 들고 아내에게 자랑하듯 보여줬다.

본격적으로 아들과 콩벌레를 잡기 시작했다. 처가댁 주변을 샅샅이 뒤졌다. 습한 곳을 좋아한다고 해서 축축한 돌 틈 사이를 계속해서 들췄다. 콩벌레를 찾는 아들은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해 보였다. 진짜 콩벌레가 뭐라고. 그냥 아들의 감정을 존중하기로 했다.

문제는 콩벌레를 키우기 위해서 먹이를 줘야 했다. 일주일 동안 먹이를 주지 못했다. 채소를 먹는다고 하길래 오이 고추 조각을 줬는데 먹지 않았다.  이러다간 콩벌레가 죽어나가겠다는 생각에, 죽은 콩벌레를 보고 울고불고 난리 날 아들 생각에 콩벌레 먹이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콩벌레가 거북이 밥인 감마루스도 먹는다고 해서 어제 아들과 홈플러스에 가서 콩벌레 먹이를 샀다. 드디어 콩벌레에게 먹을 것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안도했다. 글을 쓰다 보니 어째 아들보다 내가 콩벌레를 키우는 것은 느낌이...

자연과 가까이 지내는 아이가 됐으면 좋겠다. 아들은 벌써 다음에는 무엇을 키울지 고민하고 있다. 물고기 키울까, 사슴벌레, 장수풍뎅이 키우자는 아들이 싫지 않다. 키우다 보면 뒤치다꺼리는 내 몫이 될 게 뻔하지만 어쨌든 아들이 자연과 생명을 느끼고 함께 살아가는 법을 터득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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