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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사회복지사 Jul 29. 2020

첫아이와 다른 둘째 임신과 출산

둘째 출산 예정일이 222일이었는데 내심 218일에 태어났으면 했다. 물론 내가 원한다고, 바라는 날짜에 맞춰 아이가 태어나겠느냐 만은 출산 예정일이 가까울수록 기대한 것은 사실이다. 만약 둘째가 18일에 태어났다면 첫째와 나 그리고 둘째까지 태어난 일자가 같아지기 때문에 뭔지 모르게 설렜다. 아내는 뭐 그런 것 까지 의미 부여하냐며 어이없어했지만 말이다.


2019년 2월 11일, 19시 48분에 둘째가 태어났다. 둘째 임신, 출산의 10개월을 돌이켜보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첫아이 임신과 출산 모습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 태교

태교부터 달랐다. 첫아이 임신 때는 오롯이 태교를 할 수 있었다. 나의 하루 시작과 마무리는 태교였다. 매일 아침 눈 뜨자마자 아내 배에 귀를 대고 태명을 부르거나 말을 걸었다. 저녁 11시면 매일같이 아내의 배에 튼살 크림을, 퉁퉁 부어오른 발에 오일을 바르며 마사지했다. 잠들기 전 항상 자장가를 부르고 책을 읽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첫아이라, 일찍부터 조산기가 있어 더 가능했는지 모른다.


반면 둘째는 태교 할 겨를이 없었다. 둘째 때는 아내의 발 마사지는커녕 튼살 크림을 배에 바르는 일도 쉽지 않았다. 아내를 대신해서 첫째를 돌봐야 했고 점점 배가 불러올수록 첫째 돌보는 것을 전담해야 했다. 퇴근 후 매일 2시간 격하게 몸으로 놀아야 했기 때문에 태교 할 체력이 남아있지 않았다. 아이를 재우다가 다음날에 눈 뜨는 날이 허다했다. 자연스럽게 자장가 부르기도, 책 읽기도 건너뛰게 됐다.


첫째가 나를 대신 태교를 했다. 첫째가 나를 대신해서 아빠 노릇을 했다. 첫째는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아내 배에 대고 "아침 해가 밝았어요." 인사를 했다. 아들은 아내의 윗옷을 들추고 자신의 얼굴을 배에 들이댔다. "엄마! 주주는? 주주는 뭐랄래?(뭐라고 해?)" 아들은 나름 대화를 이어갔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둘째는 나보다 첫째 목소리에 반응을 보였다. 서운하게도 내가 태명을 부르면 아무런 반응을 안 보이다가 첫째가 부르면 태동이 있었다. 아마 둘째는 첫째를 아빠라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 첫째와 함께한 출산 

첫아이 출산 때 오롯이 첫째를 맞이했다. 가족 분만실에 나만 있었다. 진통으로 힘들어하는 아내를 곁에서 지키며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 함께 했다.  



반면 둘째 출산 때는 첫째와 함께 했다. 처음부터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그날은 진통이 예정일보다 빨리 왔고 진통이 오는 주기로 봤을 때 병원에 가야 했다. 아내는 전 날부터 잦아진 진통으로 힘들어했다. 아내는 고통을 느끼며 다음 날 애가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사실 첫째를 장모님에게 맡길까도 생각했지만 그럴 상황이 못 됐다. 아이를 맡길 곳이 마땅치 않아 그냥 첫째를 데리고 병원에 함께 갔었다.


하필 둘째 출산 예정 시간이 저녁 시간과 겹쳤다. 사실 첫아이 때도 저녁 시간과 겹쳤지만 혼자 있어서 먹지 않아도 됐다. 그때는 배고픔을 느낄 상황이 아니었다. 저녁 6시가 넘어가자 첫째가 배고프다고 했다. 언제 둘째가 나올지 모르는 상황에 부랴부랴 첫째를 데리고 병원과 가까운 김밥 집으로 갔다. 결정적인 순간에 남편이 사라졌다고 하면 평생 아내에게 한소리 들을 것 같았다. 김밥 집에서 먹였다간 둘째가 태어날 것 같아 포장을 했다.


진통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아내 옆에서 보란 듯 김밥 냄새를 풀풀 풍기며 첫째와 허겁지겁 먹었다. 가족분만실에 기름진 고소한 김밤 냄새로 가득 찼다. 지금 생각하면 민망하지만 그 당시에는 출산 준비를 위해 분만실을 오가는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를 아랑곳하지 않고 김밥을 먹었던 것 같다.          


# 첫째와 둘째 다른 출산의 감동

출산 때 느끼는 감동 포인트가 달랐다. 첫아이 때 가장 감동이었던 순간을 뽑자면 단연 탯줄 자르기다. 덜덜 떨리는 손에 고스란히 전해지는 첫아이 탯줄, 노랑 고무줄 100개를 한 번에 자르는 것 같이 질겼다. 한 번에 탯줄이 안 잘려서 여러 번 가위질했던 기억이 난다. 반면 둘째 때는 탯줄이 쉽게 잘렸다. 아무래도 첫아이라 긴장한 탓이었나 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둘째 때는 첫아이 때만큼 탯줄 자르는 감동이 크지 않았다.


둘째 감동 포인트는 다른데 있었다. 둘째 때는 동생을 맞이하는 첫째 모습이 가장 감동이었다. 첫째는 둘째를 보고 누구보다 좋아했다. 첫째는 핏덩이인 둘째를 보고 “주주다!” 방방 뛰면서 소리쳤다. 신기해서 그런지 몰라도 동생 곁을 떠나지 않았다. 계속 둘째 옆에서 떠나지 않고 기웃거렸다.


나는 간호사에게 둘째를 건네받고 품에 안아 첫째에게 보여줬다. 첫째에게 주주야 인사를 시켰다. 흥분한 첫째 목소리를 듣고 둘째가 눈을 떴다. 갓 태어난 아이가 눈을 바로 뜰 수 있구나 그때 처음 알았다. 두 아들이 서로 눈 맞춤하는데 순간 울컥했다. 지금도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아이마다 달랐던 임신과 출산의 순간, 셋째 찐이는 과연 어떤 감동을 전해줄까. 11월이면 곧 만날 테지만 그날이 손꼽아 기다려진다.


찐이야! 무럭무럭 건강하게만 자라 다오. 사랑해, 딸바보 예비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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