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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hoi파파 Sep 01. 2020

두 아들 독박 육아지만 괜찮아요.

하루만 늦었어도 출산했겠다는 말에 어찌나 놀랐던지 당장 입원해야 한다며 서둘렀던 의사 선생님을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이 벌렁거린다. 놀란 가슴이 진정되니 어느덧 아내가 입원한 지 일주일이 됐다.


아내의 자궁경부 길이는 1센티미터였다. 2.5센티미터 미만이면 조산 위험이라고 하는데 아내는 당장 출산해도 이상하지 않을 길이였다. 지금 아내는 조금만 자극이 돼도, 배뭉침 증상이 잦아도 안 되는 상황이라 의사 선생님은 화장실이나 밥 먹을 때만 앉아 있고 누워서 쉬라고 당부했다. 밥도 오래 앉아 먹지 말라고 했을 정도니. 이제 아내는 출산 전까지 꼼짝달싹 못하고 입원하게 생겼다. 적어도 10주는. 두 아이 모두 다른 곳에 맡기면 퇴원시켜준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로 지금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었다.


지난 3일을 돌이켜보니, 전쟁 같은 육아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어쩌면 하루하루 버텼는지도 모르겠다. 그나마 첫째를 긴급 돌봄으로 유치원에 보낼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3일 동안 독박 육아하면서 글 쓸 엄두를 내지 못했을뿐더러 어떻게 지나갔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그간 3일의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입원 다음 날 당장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급한 대로 3일 휴가를 냈다. 말이 휴가지 입원한 아내를 대신해 아이들을 돌봐야 했다. 3일 내내 상상 이상으로 큰 아내의 빈자리를 실감했다. 직접 두 아들 끼니를 챙기고 집안일을 해보니 그동안 아내가 힘들었겠다는 생각에 미안했다. 아이를 재우고 덩그러니 거실에 앉아 있으면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좀 더 아내를 챙겼다면 입원하지 않았을 텐데, 둘째를 어린이집에 보냈어야 했는데... 때늦은 후회만 하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있을 때 잘하라고 하는 건가 싶다.


# 두 아이 끼니 챙기는 것이 힘들더라.

당분간 주 메뉴는 누룽지와 죽, 볶음밥류일듯 싶다.

육아의 반은 끼니 챙기는 일이었다. 밥을 차리고 치우면 그새 다음 끼니를 준비해야 했다. 저녁까지 먹고 치우면 언제 하루가 지나갔는지 싶다. 왜 아내가 남편이 밖에서 끼니를 해결하면 좋아하는지 알겠더라. 삼시 세끼 꼬박꼬박 먹어야 하는 두 아들 비위를 맞추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질린 만도 했겠지, 첫째는 매번 비슷한 메뉴를 차려주니 밥상을 보자마자 맛없겠다고 투정 부렸다. 야심 차게 내놓은 두부 부침도 그대로 남긴 것을 보고 내 속에 화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생각해서 만들어준 음식인데, 손도 안 대고 남기는 것은 만들어준 사람에게 대한 예의가 아니더라. "주는 대로 먹어!"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이내 말을 삼켰다. (여보! 앞으로 당신이 만든 음식 그릇 체로 먹을 테니 아프지 마요.)


아무래도 아빠 표 메뉴는 심플하다. 아침에는 만들기 쉬운 누룽지, 점심, 저녁에는 반찬이 필요 없는 볶음밥류다. 아내처럼 3찬 반찬을 먹일 수 없었다. 그동안 밥을 준비하면서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을까, 매 끼니 무엇을 먹일까 고민하는 엄마, 아내의 걱정을 조금이나마 느꼈다. 아침을 준비하면서 다음 끼니 걱정을 하니 3일 만에 엄마가 다 됐다. 조촐한 밥상에도 잘 먹어주니 두 아들에게 고맙다.

이번 주말에도 처가댁에 가야겠다

젖동냥도 아니고 끼니를 때울 요량으로 두 아이를 데리고 처가 댁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아이들도 아빠가 해준 음식보단 할머니가 해준 음식이 맛있나 보다. 솔직히 내가 먹어봐도 장모님이 해준 음식이 더 맛나다. 경쟁이 안된다. 그렇지만 서운한 건 어쩔 수 없다. 게 눈 감추듯 먹어 치우는 두 아들을 보고 어찌나 배신감이 들던지. 어찌 됐든 두 끼 해결했으니 그것으로 족하다. 새콤 시원한 미역냉국 먹으러 이번 주말에도 가야지.


# 두 명 보다가 한 명 보면 숨통이 트인다.


첫째를 유치원에 보내고 둘째와 데이트

사실 첫째는 아내가 입원한 다음 날부터 코로나-19 감염 확산으로 유치원에 갈 수 없었다. 급한 마음에 첫째 담임 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내의 입원한 상황을 알리고 긴급 돌봄 할 수 없느냐 문의했다. 다행히 유치원에서 걱정 말고 보내라고 해서 안심했다. 두 명 보다가 한 명을 보면 아이 보기가 조금 수월하다. 둘 보다가 한 아이만 신경 쓰고 맞추면 되니 얼마나 쉽겠는가. 그제야 답답한 마음이 트였다.


첫째를 유치원에 보내고 둘째와 나들이를 갔다. 코로나-19 감염 재확산으로 갈 때가 마땅치 않았다. 야외에 잠깐 있다 올 생각으로 익산 공룡테마공원에 갔다. 사실 국수를 좋아하는 둘째와 부송 국수에 가서 국수를 먹을 요량이었다. 약물로 삶은 계란도 먹을 겸. 한 끼라도 외식해야 지 어쩔 수 없었다.  

둘째를 장모님에게 맡기고 첫째와 데이트

지난 주말, 둘째를 잠시 장모님에게 맡기고 첫째와 커피숍 데이트를 했다. 다섯 살이 됐다고 이제 커피숍에 앉을만하다. 순창 어느 한 커피숍에서 한 시간 정도 머물렀다. 색종이로 개구리를 접어 게임도 했는데 돌이켜보면 아들이 가장 좋아한 순간이었다. 우물(하늘색 색종이)에 먼저 빠지는 개구리가 이기는 게임이었다. 제대로 뛰지 않고 나자빠지는 개구리에 자지러지는 아들, 몇 번이고 게임을 다시 했는지 모른다. 마지막으로 아들에게 엄마에게 응원의 편지를 써보자고 했다. 엄마에게 하고 싶은 말을 불러주면 그대로 받아 적겠다고 했다.


엄마, 사랑해요.
엄마, 힘내요.
엄마, 보고 싶어요.


아들의 편지에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담겨있었다. 어쩌면 두 달을 이렇게 지내야 하는 데... 엄마는 언제 오냐고 문득문득 물어볼 때마다 아들에게 미안했다. 씩씩하게 잘 지내고 있어야 엄마가 편하게 치료받고 빨리 집으로 올 수 있다고 설명하면서 얼마나 짠했는지 모른다.   


벌써 내일이면 출근이다. 출근을 앞두고 진짜 멘붕이 왔다. 내일이면 출근인데 과연 내가 아내 없이 잘할 수 있을까 덜컥 겁이 나고 두려웠다. 아내도 걱정이 된 모양이다. 아내는 벌써부터 내일 아침이 상상된다며 심난해했다. (여보! 사실 티는 안 냈지만 막막해.)


내일 아침을 위해 널브러져 있는 몸을 움직였다. 빨래통을 비워 빨래를 하고 건조대에 널었다. 먼지만 털어놓고 한쪽에 치워둔 빨랫감도 갰다. 다용도실에 쌓여 있던 쓰레기도 치웠고 옷방에 너저분한 수납되지 않은 짐들을 정리했다. 내일 입을 옷과 유치원 가방을 미리 챙겼다. 마지막으로 아내에게 아들 옷을 사진 찍어 보내면사 괜찮냐고 물었다. 아내가 괜찮다고 한 옷을 거실에 깔아 두었다. 이러면 안 되지만 발열 체크도 미리 해서 알림장에 적어두었다. 아침에 조금이라도 멘털이 나가지 않으려는 부단한 노력이었다.

육아는 힘들어도 아이들 덕분에 다시 힘이 났다. 아이들이 "아빠, 아빠"하고 들러붙으며 치대는 게 행복하다. 새근새근 잠든 두 아들을 보면서 내일 쓸 에너지를 만땅 충전했다.


방광 밑으로 이미 내려간 셋째 찐이, 이제 초음파 영상으로 얼굴을 확인할 수 없다고 한다. 얼마나 이쁘려고 얼굴도 안 보여 주는지. 지금 상황이 셋째가 건강하게 태어나기 위한 대가라면 더 한 것도 치르리라. 아내도 찐이도 조금만 더 버텨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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