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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hoi파파 Sep 03. 2020

아내가 없어서 가장 힘든 건

아내의 갑작스러운 입원으로 18개월 둘째를 누군가에게 맡겨야 했다. 양가 부모님은 일을 하는 상황이어서 도움을 구하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둘째를 어린이집에 보내야 했다. 그렇다고 더 좋고 나은 어린이집을 선택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아내는 병원 진료받은 날 바로 입원을 했고 나는 아내가 입원한 날부터 두 아들을 돌봐야 했기에 이곳저곳 어린이집을 다니며 알아볼 상황이 되지 못했다.


진작에 둘째를 어린이집에 보냈을 걸 하는 후회감이 밀려올 때마다 가장 힘들다. 적어도 한 달 전에만 보냈어도 이런 사달이 나지 않았을 텐데 좀 더 아내를 설득시키지 못한 나를 자책하고 있다.


나는 8월에 둘째를 어린이집에 보내자고 했다. 임신 한 몸으로 18개월 된 둘째를 돌보는 일이 쉽지 않아 보였다. 아내 역시 부쩍 심해진 둘째의 칭얼거림에 힘들어했다. 육아는 육아대로 집안일은 집안일대로 해야 했다. 퇴근해서 아내를 대신해서 아이를 보고 집안일을 거든다지만 고작해야 3~4시간이었다. 아내가 탈 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배가 부를수록 예민하고 지쳐가는 아내가 걱정돼서 한 달 빨리 보내자고 했다.


반면 아내는 둘째 어린이집을 9월에 보내길 원했다. 힘들어하면서도 아내는 둘째에게 미안한 마음이 크다고 둘째를 더 데리고 있고 싶어 했다. 그때 아내의 요구를 단 번에 거절했어야 했는데... 아내의 뜻을 따르는 게 아니었는데. 그때 당시에는 9월까지 두 달이 남아 있었고 어린이집을 알아볼 여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서둘러 알아본 7월, 한 어린이집 방문 상담을 끝으로 더 이상 다른 곳을 알아보지 않았다.


보통 어린이집을 고를 때 어린이집 활동 내용은 어떤지, 원장 선생님과 담임 선생님 태도는 괜찮은지, 정원은 찼는지, 교육철학은 어떠한지 같은 조건을 따져가며 여러 군데 방문해서 상담받는데 그럴 수 없는 상황에, 둘째는 적응 기간도 없이 오전 8시 15분에 등원해서 오후 4시 30분에 하원 하게 됐다. 두 돌도 안된 아이를 8시간 동안 엄마, 아빠와 떨어 지내게 했다니.


어린이집 첫 등원하는 전날 둘째에게 계속해서 설명해줬다.


지호야! 내일부터 어린이집에 갈 거야, 어린이집에 가면 선생님도 있고 친구도 있어.
아빠가 일 끝나면 금방 데려올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기다려줘!


잠들기 전에도, 어린이집 도착해서도 잊지 않고 이야기해준다. 아침마다 첫째 유치원을 데려다주면서 일부러 둘째 보라고 첫째 유치원 문 앞에서 잘 다녀오라고 인사를 하고 이따가 보자고 말한다.


둘째가 나랑 헤어지는 것이 갑작스럽지 않았으면 해서 마음의 준비라도 하라고 넌지시 '지호도 선생님 보려 갈까요?' 묻는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해맑게 '네' 대답하는 둘째. 마음이 찢어지더라. 하지만 정작 어린이집 앞에서 차에 손가락질하며 가자고 내 품에 엥겨서 계속 칭얼거리다가 오열하는데... 아침마다 우는 아이를 두고 돌아서는 마음이 아프다. 갑자기 영문도 모른 채 엄마, 아빠와 생전 처음으로 떨어진, 그것도 낯선 공간과 사람들 사이에서 잘 지내고 있을까 불안하고 무엇보다 미안한 마음이 크다.


아내가 없다 보니 다섯 살 첫째에게 책임이라는 짐을 자꾸 주게 된다. 아무리 첫째라지만 아직 어리광 부릴 나이인데 형이니까, 엄마가 없으니까 조건을 달며 첫째에게 씩씩하게 잘 지내보자 에둘러서 말은 하지만 첫째 입장에는 징징거리지 말라고, 우는 소리 하지 말라고, 그럼 듣기 싫다고 혼나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엄마의 빈자리에 첫째는 둘째와 달리 우울해한다. 둘째는 아직 어려서 상황 파악을 못하고 있어 늘 헤벌쭉한다지만 첫째는 나처럼 엄마의 빈자리가 크게 다가오나 보다. 첫째 표정에 우울감, 그리움이 잔뜩 묻어난다. 첫째의 속상한 감정을 헤아리고 공감할 여유가 없다 보니 첫째의 마음을 위로해주지 못하고 있다.


아내가 입원을 하고 첫째에게 미안할 일이 생겼다. 둘째가 돌 전이나 그 무렵에는 첫째 둘째 동시에 재울 수 있었지만 둘째가 크고 나서부터 형과 장난치기를 좋아하고 놀기를 원해서 도저히 함께 재울 수 없다. 침대에 첫째를 범퍼침대에 둘째를 눕히고 그 사이에 누워 재우기를 시도하지만 두 아들이 함께 있으면 금방이라도 곯아떨어질 눈을 하고도 나를 사이에 두고 넘어 다니고 뒹굴면서 장난을 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30분, 1시간이 훌쩍 지나가기에 이러다가 멘털이 나가겠다 싶어 첫째를 밖에서 기다리게 하고 둘째 먼저 재웠다.


유호야! 밖에서 기다리면 어때?
재미없어. 속상해.  


솔직히 따로 재우는 것은 내 편의 때문이다. 확실히 따로 재워야 잠드는 시간이 짧아진다. 평소 잘 해내기에 아무렇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것이 잘못이다. 무엇보다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서 마음이 급했다. 솔직히 아내가 없으니 육퇴를 하고도 쉬는 것이 쉬는 게 아니었다. 다음날 아침이 바쁘지 않으려면 두 아들 등원 준비와 함께 입을 옷을 미리 꺼내놔야 하고, 싱크대에 쌓인 저녁 설거지를 해야 한다. 걷고 미쳐 개지 못한 빨랫감도 정리를 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저녁 10시가 훌쩍 지나가 있다. 빨리 재워야 내가 살 것 같았다.


첫째의 울먹이는 표정에 아차 싶었다. 다섯 살 아이를 거실에 혼자 두고 기다리라고 했다니 고작 다섯 살인데 큰아이 취급을 해서 미안했다. 아들 입장에서 상상을 해보니 아찔했다. 깜깜한 밤 거실에 혼자 있는 것이 얼마나 무서웠을까,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마음이 어땠을까. 안방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궁금하기도 했겠다. 말이 30분이지 다섯 살에게는 300분으로 느껴졌을 텐데 얼마나 심심하고 지루했겠는가. 하루 만에 안방 문을 두드리는 첫째를 보고 진짜 이건 아니다 싶었다.

아빠가 이 모습 지켜줄게

아내 역시 첫째가 달라졌다는 것을 느꼈다. '카톡' 아내에게 카톡이 왔다. 2년 전 첫째 사진을 보낸 아내. 누가 봐도 천진난만한 웃음 많은 아이다. 아내는 그땐 참 밝은 아이였는데 라며 이 사진을 보고 확실히 달라졌다고 했다. 아내는 첫째가 둘째 돌 전까지는 그래도 웃었는데 그 후부터는 그 모습마저 사라졌다고 했다. 아내의 말을 듣고 첫째의 마음이 그랬구나 싶었다. 형이니까 양보해야 하고 때론 뺏기기도 하고, 자기보다 동생을 더 잘해주는 것 같기도 하고 첫째의 서운한 감정이 느껴졌다.


아이가 변한 건 부모의 태도가 변해서 그랬을 텐데. 그동안 아들에게 한 태도를 돌아봤다. 어제 나도 모르게 아이 앞에서 한숨을 쉬었나 보다. 첫째가 "아빠 근데 왜 한숨을 쉬어?" 순간 뭐라 할 말이 없어 아무 말도 못 했다. 그때 알아차렸다. 지금 살짝 버겁구나. 지금 처음 겪는 적응 기간이구나 싶었다. 나도 아내 없으니 버거운데 엄마 없는 너희들은 오죽하리.


오늘부터 아이들에게 대하는 태도를 바꾸기로 마음을 먹었다. 첫째와 둘째를 동등하게 대하리. 물리적으로 둘째를 더 안아야 하고 챙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첫째에게 먼저 관심 보이고 스킨십을 해야겠다. 동시에 재우면 멘털이 나갔다 들어왔다 하지만 힘들더라도 같이 재워야겠다. 여유 없는 탓에 불쑥불쑥 올라오는 감정, 욱하고 화나는 마음을 잘 조절해야겠다. 어쩌면 긴 싸움이 될 텐데 몸과 마음을 굳게 먹어야지. 부디 이 고비를 잘 넘기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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