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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hoi파파 Sep 29. 2020

독박 육아의 세계

  아내 없이 한 달을 지냈다. 아내가 입원하던 날은 걱정부터 앞섰지만 지금은 그럭저럭 나름 적응 중이다. 막연했지만 이 또한 지나간다고 벌써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아내가 없어도 괜찮을 줄 알았다. 걱정하는 아내에게 괜찮다며 그냥 출산할 때까지(두 달을) 병원에 있으라고 했지만 독박 육아의 세계는 혹독했다. 혼자서 두 아들을 돌보다 보니 그동안 아내가 얼마나 애썼을지 알겠더라. 임신 중에 둘째까지 돌봤으니 몸에 무리가 오지 않는 게 이상한 일. 그 대가로 오롯이 모진 독박 육아의 세계를 경험하는 중이다.


  돌이켜보면 아내가 입원하고 삼사일 동안 뭐 하나라도 놓치고 싶지 않아서 긴장감속에 살았다. 당분간이지만 두 아들 모습에서 엄마 없는 티를 내고 싶지 않았다. 평소보다 부지런을 떨면 엄마의 빈자리를 메울 줄 알았다.


  매일 아침을 먹이고,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제시간에 출근하려면 서둘려야 했다. 늘 시간에 기다 보니 나도 모르게 아이들을 얄짤없이 통제하기 시작했다. 그때는 조급한 마음에 예민하게 굴었던 것 같다. 아이들은 느닷없이 잔뜩 날을 세운 아빠의 모습에 당황했을지 모른다. 이러다가는 나도 아이도 오래 버티지 못할 것 같아 잘하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기 시작했다.  


  아무리 내려놓아도 독박 육아는 독박 육아였다.  


  아침마다 전쟁이었다. 일찍 일어나는 두 아들 덕분에 6시 30분이면 강제로 기상했다. 아침은 최대한 간단하게 조리할 수 있는 누룽지에 계란 프라이 아니면 김밥, 말이 김밥이지 맨밥에 조미김을 싸주는 게 전부였다. 가끔 스크램블에 콩나물국이나 미역국이 있으면 대충 말아먹였다. 아침을 다 먹이면 오전 7시 20분. 적어도 오전 8시 5분에는 집에서 나서야 시간 내에 출근할 수 있었다.


  매일 아침마다 아이를 둘러업고 뛰지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삼사일 tv 없이 버티다가 결국 출근 준비를 하는 20분 동안 tv를 틀어주고 말았다. tv를 보는 순간만 평화로울뿐 tv를 끄면 첫째든 둘째든 칭얼거렸고 보채기까지 했다. 심지어 19개월 둘째는 tv를 끄면 "티 티 티" tv에 손가락질하며 켜달라고 울먹였다. 어떻게 찾았는지 tv 서랍장 안에 있는 리모컨을 가져와서 "뽀 뽀 뽀" 뽀로로를 틀어달라고 조르기까지 하는데 아침마다 반나절 에너지를 쏟아붓고 출근해야 했다.


  퇴근 전 30분이 되면 나도 모르게 스멀스멀 걱정이 밀려왔다. 집으로 출근하는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저녁 메뉴를 정하다 보면 뒷목이 뻐근해졌다. 두 아들 두고 복잡한 요리는 할 수 없었다. 주로 간장 계란밥, 야채 볶음밥, 계란 볶음밥 같 조리도 간단하고 반찬이 따로 필요 없는 음식으로 만들었다.


  저녁을 먹이고 책을 읽어주거나 놀아주면 저녁 7시 30분. 목욕까지 시키면 4일 같은 4시간이 지나간다. 애꿎은 시계만 보는 것 같다. 4시간만 정신 바짝 차리면 육퇴를 하지만 아이들이 잔다고 해서 육아가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다음날 입을 옷을 미리 챙기고 싱크대에 쌓인 저녁 설거지나 빨래 개기 같은 집안일을 하다 보면 한두 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차라리 평일 독박 육아가 낫다. 주말 하루 종일 두 아들과 있을 생각을 하니 신경 쓸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매 끼니 챙겨줘야 하고 가까운 학교 운동장이라도 나가서 놀아야 했다.    


  최후의 보루는 처가댁 동냥 밥이다. 적어도 밥을 준비하는 수고로움은 덜 수 있으니 그것만으로 족했다. 그때만큼은 아이들도 장인어른에게 매달려서 논다. 잠깐이라도 숨 돌리며 쉴 수 있으니 늘어지게 낮잠은 잘 수 없어도 커피 한잔은 마실 수 있다.


  독박 육아는 부모도 아이도 좋지 않다.


차라리 평일이 낫겠구먼!


  그날 저녁 두 아들 저녁을 먹이다가 정작 밥 한술 제대로 뜨지 못하는 것을 보고 평소 과묵한 장인어른이 보다 못해 안쓰럽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장인어른의 속마음은 "자네, 참 애쓰네!"였다.


  "차라리 출근하는 게 나아요." 장인어른에게 주말에 비하면 평일은 식은 죽 먹기라고 했다. 평일에는 아침저녁으로 잠깐 바쁘면 된다고 했다. 주말 동안 아이들을 돌보다 보면 문뜩 출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힘든 직업이라도 육아만큼은 아닐 테니.


  만약 육아와 직장을 선택할 수 있다면 여느 독박 육아하는 엄마, 아빠들처럼 나도 출근을 선택하리.


  하필 아내 없는 올해 추석 연휴는 주말도 안 꼈다. 추석 연휴 5일 내내 그냥 주말 같을 텐데 다고민이 깊어졌다. 하루는 우리 집에 하루는 처가댁에 남은 연휴는 또 어디로 간 단말인가. 독박 육아는 긴 연휴도 달갑지 않다.

  그렇지만 여러분은 코로나-19로 힘들었던 지난 일상을 잠시 잊으시고 보름달처럼 행복이 가득 차오르는 추석이길 바라요. 저도 나름 보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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