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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hoi파파 Oct 15. 2020

어린이집 적응에 성공했어요

  아내가 입원했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발만 동동 입원한 다음 날부터 둘째를 맡길 때가 없었다. 18개월 둘째를 어디에 맡겨야 할지 난감했다. 양가 부모님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언제 퇴원할지 모르는 상황에 내가 볼 수도 없었다.

    

  일단 시간을 벌어야 했다. 부랴부랴 3일 휴가를 냈다. 아내가 화요일 저녁에 입원했으니 3일 연가면 주말까지 5일, 급한 불은 끈 셈이다.      


  둘째가 다닐 어린이집부터 알아봐야 했다. 보통 어린이집에 보낼 때 한두 가지 신경 쓰는 게 아니다. 점검할 게 많다. 유난 떠는 게 아니다. 직접 방문해야지 전화 상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어린이집 환경을 확인해야 하고 놀 수 있는 공간과 시설이 충분한지 살펴봐야 한다. 어떤 교육 철학으로 어린이집이 운영되는지 커리큘럼을 확인해야 한다. 원장 선생님은 친절한지, 선생님들을 어떻게 대우하는지 말투와 태도를 눈여겨봐야 한다. 담임 선생님은 무조건 만나라. 아이와 관계를 잘 맺는지 꼼꼼히 따져 봐야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다.  

    

  발품 팔아야 좋은 집을 만나듯 어린이집도 마찬가지다. 이곳저곳 다니면서 어린이집 보는 눈을 길러야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다.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다. 그래야 내 아이와 맞는 어린이집을 찾는다. 조금이라도 만족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아내는 입원했고 주어진 시간은 단 3일이었다.

     

  아내와 상의 끝에 휴가 마지막 날 금요일, 둘째가 다닐 어린이집을 정했다. 여러 어린이집을 두고 고른 게 아니다. 다른 선택권이 없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상담받은 어린이집으로 그냥 보냈다.    

  

  지금 생각하면 아찔하다. 아내가 입원하기 전에 한 군데라도 상담을 받았으니 망정이지 하마터면 직장을 잃을뻔했다. 지난 8월에 보낼 생각으로 카카오 맵으로 동네 어린이집을 찾아봤었다. 이십 군데가 넘는 어린이집이 검색됐다. 집 근처에 이렇게나 많은 어린이집이 있다니 검색된 화면을 보고 놀랐다. 대부분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가정 어린이집이나 민간 어린이집이었다. 두 군데는 민간 유치원으로 기억한다.


  그 당시 아내는 임신 막달이었다. 아내가 직접 등 하원 시켜줄 수 없었다. 어차피 출퇴근하면서 첫째를 유치원에 등 하원을 시켜주고 있었기 때문에 둘째도 어린이집 등 하원을 직접 해주기로 했다.    

  

  일단 첫째 유치원을 지나가는 곳에 있는 어린이집부터 골랐다. 하지만 인근 아파트에 열 군데가 넘는 어린이집을 어찌 모두 방문한단 말인가. 아내와 함께 어린이집을 더 줄여보기로 했다. 아내는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어린이집은 보내지 말자고 했다. 아이가 뛰어놀 수 있는 넓은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아내의 결정으로 이십 군데 중에 삼분의 일이 넘었던 어린이집을 과감하게 패스했다.      


  후보 세 군데 중에 한 어린이집과 연락이 닿았다. 지금도 처음 상담을 받으러 가는 길이 떠오른다. 어린이집에 가는 내내 걱정했다. 분명 어린이집이 위치한 곳과 같은 동네에 살고 있는데 다른 세상 같았다. 어린이집이 동 끝에 있었고 행정구역이 나뉘는 군과 맞닿는 곳이라 논과 밭이 전부였다. 밭도 주차장도 아닌 곳에 차를 세우고 한동안 멍하니 어린이집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과연 여기에 보낼 수 있을까 어린이집으로 들어가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보통 아이를 처음 어린이집에 보낼 때 아이도 부모도 예민해진다. 관심을 가지고 아이를 배려하지 않으면 어린이집 적응에 실패하거나 늦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둘째는 일정 기간을 함께 가주 지도, 두세 시간만 잠깐 머물다가 시간을 점점 늘리지도 못했다. 어린이집 등원 첫날부터 8시간을 낯선 공간에서 생활해야 했다. 낯선 곳에 홀로 뚝 떨어진 느낌. 둘째가 느꼈을 불안을 생각하면 지금도 미안하다.     


  첫날은 둘째도 얼떨결 했는지 울지 않았다. 생각보다 씩씩하게 헤어져서 안심했다.  

    

  괜찮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그다음 날부터 2주간은 헤어질 때마다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 ‘빠~빠~빠~’ 둘째는 선생님 품에 안겨 나더러 가지 말라고 손을 뻗으며 애걸복걸했다. 자기를 데려가라는 듯 오열하는데 출근하는 2주 동안 마음이 편치 않았다.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게 해 줬더라면, 죄책감마저 들었다.     


  불안해하는 둘째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 잘 적응할 수 있을 거라고 믿고 기다리는 수밖에. 출 퇴근길에 ‘지호야! 잘 다녀와, 아빠가 일 끝나고 금방 데리러 올게.’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이야기해줬다. 어린이집 주변에 단 2분이라도 머물렀다. 둘째가 어린이집에 가는구나 받아들이고 환경에 익숙해졌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둘째의 불안은 집에서도 이어졌다. 사람 잘 따르는 둘째도 첫 2주는 힘들었던 모양이다. 부쩍 어리광이 늘었다. 자기 뜻대로 안 되면 칭얼거렸다. 그때 둘째가 불안해한다는 것을 느꼈다. 잠시라도 내가 보이지 않으면 애타게 ‘빠~빠~빠~’ 하고 부르며 찾았다. 어찌나 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던지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다리에 달라붙어 두 팔을 벌린다. 지금 당장 안아달라는 뜻이다.   

  

  며칠은 화장실도 제대로 못 갔다.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있으면 어찌나 문밖에서 소리를 질러대던지 자기 딴에는 노크한다고 문을 박살 낼 듯 쾅쾅 두드리는데 목놓아 ‘빠~빠~빠~’ 불렀다. 엄마들이 왜 화장실 문을 열고 볼일을 보는지 이해가 됐다. 볼일 보기 위해 앉았는데 어쩔 수 없이 문을 열어야 했다.


  둘째에게 기적이 일어났다. 아이는 기다리는 대로 믿는 대로 크는 걸까. 2주 전부터 둘째가 울지 않는다. 점점 불안한 모습이 줄어들었다. 요 며칠 계속 헤어질 때 방긋 웃으며 보내준다. 돌아서는 나를 보며 ‘빠빠~’ 손을 흔드는데 둘째의 표정에 안심이 됐다. 아! 이제 지호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했구나 싶었다.  

    

  둘째도 알았던 것일까. 어린이집에 가야 한다는 것을. 내가 언제 올지 알고 기다리는 둘째가 기특하다. 늘 데려가는 시간에 가까워지면 둘째가 선생님에게 밖으로 나가자고 손짓한다는데 시계는 보지 못해도 퇴근 시간을 아는 것 같다. 아이는 늘 한결같은 부모의 믿음, 그 어떤 기대로 성장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어린이집 가방에 집착하는 둘째를 보고 안심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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