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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hoi파파 Nov 05. 2020

셋째 딸 출산하던 날, 다시 아내 없는 삶이 시작됐다

아내도 찐이도 버텼구나, 버텨줘서 고마워.

2020년 11월 3일 오전 8시 48분, 셋째가 태어났다. 긴박한 상황에서 셋째를 맞이해서 그런지 어리둥절했다.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날 아침부터 예민했다. 아내의 출산을 직감했는지 모르겠지만 아내가 배를 움켜쥐며 아이들 등원 준비를 하는데 아내의 모습을 보고 신경이 곤두섰다. 힘들어하는 아내에게 하지 말고 누워 있으라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이번 주만 지나면 임신 37주를 채우는데 그날따라 힘겨워하는 아내를 보고 37주를 다 못 채우고 출산할 것 같았다. 자꾸 아내의 움직임이 신경 쓰였다.


괜히 첫째에게 불똥이 튀었다. 첫째를 혼낸 이유가 생각나진 않지만 아들의 칭얼거림을 받아주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감정에 휘둘린 모습에 부끄럽고 아들에게 미안하다.


신경이 곤두선채로 아침 8시에 두 아들과 집을 나섰다. 8시 11분 첫째를 유치원에 데려다줬다. 첫째 유치원과 5분 거리에 있는 둘째 어린이집. 둘째를 8시 16분에 어린이집에 데려다줬다. 출근길이었다.


8시 17분,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아내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아내는 킁킁 앓았다. 아내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출산이구나 직감했다. 아내 전화번호를 보고 순간 느낌이 싸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아내는 배가 아프다며 병원에 가야겠다고 했다. 아내의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부랴부랴 집으로 차를 돌렸다. 다행히 집과 근무지가 가까웠다. 차로 3~4분 거리라서 바로 집에 갈 수 있었다. 아내는 배를 움켜쥐고 안방에 누워있었다.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조금만 늦었어도 119를 불러야 하는 상황이었다. 아내를 부축해 일으켜 세우고 곧장 병원으로 갔다. 오전 8시 30분, 병원에 도착했다.


이른 시간이라 병원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고통스러워하는 아내 옆에서 발만 동동 굴렀다. 아내의 신음소리를 듣고 간호사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아내의 상태를 보고 간호사들도 바빠졌다. 자궁문이 얼마나 열렸는지 확인하기 위해 진료실로 들어갔다. 의사 선생님은 자궁문이 다 열렸다며 서둘렀다. 아내를 휠체어에 태우고 간호사와 함께 분만실로 이동했다. 아내가 분만실에 들어간 것을 보고 시계를 봤다. 오전 8시 40분이었다.


간호사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분만실에서 서성거리는 나를 불렀다. 간호사는 이것저것 설명하며 서명해달라고 했다. 아내가 분만실로 들어가는 순간 판단이 흐려졌다. 멍하니 간호사 말을 듣고 있었다. 말귀를 못 알아듣자 간호사는 답답해했다. 더는 지체할 수 없었는지 간호사는 이따가 설명하겠다며 분만실로 뛰어들어갔다.


첫째와 둘째는 가족 분만실에서 낳았는데 이미 자궁문이 다 열린, 워낙 긴박한 상황이라 처음으로 출산 과정을 함께 하지 못했다.(내 생애 마지막 출산일 텐데 함께 하지 못해 아쉽다) 분만실 밖에서 초초하게 기다렸다. 앉아서 기다릴 수 없었다. 긴장돼서 분만실 앞을 왔다 갔다 하며 주위를 맴돌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간호사가 분만실에서 나왔다. 탯줄을 잘라야 하니 분만실로 들어가자고 했다. '벌써 출산을 했어요?' 간호사에게 물었다. 아내가 분만실에 들어간 지 몇 분밖에 안 지났는데 벌써 출산했다니 속으로 진짜 긴박했구나 싶었다. 정말 아내도 찐이도 버틴 거로구나. 시계를 보니 오전 8시 48분이었다.


분만실에 들어가니 진통으로 고통스러워 아내 얼굴이 보였다. 아내에게 수고했다고 말을 했는데 들었는지 모르겠다. 그제야 의사 선생님에게 안긴 아이가 보였다. 울음이 터진 아이를 보자마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간호사는 탯줄을 자르기 위해 준비했다. 간호사는 내게 의료용 가위를 건넸다. 간호사는 아기가 닿지 않게 조심하라고 당부했다. 첫째와 둘째도 그랬지만 탯줄 자르는 순간이 가장 손 떨렸다. 덜덜 떨리는 손을 다잡고 조심스럽게 탯줄을 잘랐다. 아! 드디어 태어났구나.


간호사는 아이를 신생아실로 옮기기 전에 겉싸개에 싸서 보여줬다. 아이의 손발을 확인할 겨를도 없었다. 정신없이 아이를 신생아실로 보내고 말았다. 간호사를 더 붙잡았을 걸.


아내 점심을 챙겨 주고 바로 집으로 갔다. 다시 아내 없이 2주 간 두 아들을 돌봐야 했기에 집 청소를 해야 했다. 마른빨래를 털고 빨래통에 쌓인 빨래를 세탁기에 돌렸다. 빨래가 돌아가는 사이 마른빨래를 갰다. 다 된 빨래를 건조대에 널고 저녁밥을 지었다.


오후 3시 30분, 병원에 다시 가서 필요한 짐을 가져다주었다. 아내와 이런저런 이야기 하다 보니 첫째, 둘째 하원 시간이 되었다. 마음을 다잡으며 첫째와 둘째를 데리러 갔다. 아무쪼록 아내 없는 2주 동안 별일 없어야 할 텐데. 아내도 역시 걱정되었는지 첫째에게 신경을 더 써달라고 부탁했다.  


셋째를 맞이하던 날, 그렇게 아내 없는 삶이 다시 시작됐다.   


셋째를 탯줄 자를 때, 겉싸개 싸여서 신생아 실로 이동할 때, 신생아실에 기저귀와 물티슈 줄 때 봤는데 노심초사 마음 졸이며 기다린 셋째를 세 번 밖에 보지 못했다. 보고 싶다.


아내에게 미안하고 고맙다. 일찍이 조산으로 28주에 입원을 해 37주까지 버텼으니 대단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새벽부터 진통을 참아가며 기어코 첫째, 둘째 등원을 시킨 다음에 병원 가려고 했다는데 더 이상 긴말이 필요하겠는가. 여보! 버텨줘서 고마워. 건강해서 감사해.  

찐이야, 건강하게 태어나줘서 정말 고마워. 그런데 아빠를 너무 닮은 거 아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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