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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hoi파파 Nov 19. 2020

산후조리원을 보며 산후조리원 퇴실 전야제를 보내야지

 오늘은 장범준 노래를 하루 종일 흥얼거렸다. '오늘 밤 잠이 오질 않네요.' 노래 가사처럼 오늘 밤은 자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다. 내일이 밝으면 첫째와 둘째 때와는 또 다른,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 상상이 안 되는 새로운 세상을 맞이할 테니까.


  내일이면 아내와 소이가 산후조리원에서 집으로 온다. 언제 올지 모를 2주가 금방 지나갔다. 임신 28주에 입원을 해버티고 버티다 37주 진입 하루 만에 출산을 했다. 아내가 없는 동안 두 아들을 돌보면서 그동안 참 애썼을 아내의 빈자리만 확인했다.


 어제 출산 휴가를 냈다. 오늘 하루를 돌아보니 하루 전날에 출산 휴가를 내길 참 잘했다. 하마터면 준비 없이 아내와 소이를 맞이할뻔했다.   


  출산휴가 첫날, 출근하지 않으니 아침이 여유로웠다. 조급하지 않았다. 마음의 여유가 생기니 불안하지도 아이들을 재촉하거나 다그치지도 않았다. 일부러 늦장을 부렸다. 평소보다 30분 늦게 집을 나섰다. 너그러워진 탓일까 동생이 다니는 어린이집에 가고 싶다는 첫째의 말이 떠올랐다. 평소 첫째를 먼저 데려줬지만 오늘은 둘째 어린이집에 먼저 갔다.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산후조리원에 갔다. 퇴실하기 전에 미리 짐을 챙겼다. 아내는 짐을 챙기고 잠깐 앉아 있는 나를 보고 어서 집에 가라고 했다. 오늘 여유를 부릴 시간이 없다며 조리원 실에 들어온 지 5분 만에 쫓겨나듯 나왔다. 5분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산후조리원 실에 있어봤다. 사실 산후조리원 실에 더 있고 싶었다.  생애 마지막 산후조리원실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냥 나가기 아쉽긴 하더라.

안녕! 내 생애 마지막 산후조리원 실.

 집에 가자마자 아내와 소이를 맞이할 준비를 했다. 신박한 정리를 시작했다. 일단 빨래를 돌렸다. 분리수를 하고 쓰지 않는 물건을 한 데 모아 버렸다. 설거지를 하고 건조대에 널어져 있는 마른 옷을 털은 다음 갰다. 거실을 치우는 사이 빨래가 다 됐다. 빨래를 널고 집안 구석구석 청소기를 밀고 바닥을 닦았다.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대청소를 했다. 집안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으며 티도 나지 않는다. 하루 종일 청소에 매달렸다.


 은행 업무를 마치고 집에 들어왔다. 숨 돌리고 앉아 귤을 까먹는데 아이들 하원 시간이 가까워졌다.

 엊그제 브런치 작가 제안이 왔었다. 저소득층 가정 학생의 치아 건강 상태 대한 기사를 쓰고 싶은데 사회복지사례를 듣고 싶다는 제안이었다. 하필 오늘 사례를 써서 보내주기로 약속 날이었다. 부랴부랴 노트북을 꼈다. 중학교에 근무했을 때 있었던 사례를 의식의 흐름대로 써 내려갔다. 사실 곧 하원 시간이라 글을 정리하고 다듬을 시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브런치 제안한 분에게 양해를 구하고 써진 날 것 대로 메일을 보냈다.


 4시 30분, 아이들을 데리러 집을 섰다. 아이들을 데려오면서 첫째에게 '내일이 되면 드디어 엄마랑 찐이가 집에 올 거야!'라고 이야기했다. 아들은 그 말을 듣자마자 신나 했다. 아싸! 감탄사를 연발했다. 엄마가 언제 오냐고 울고불고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아들은 어느새 엄마 없는 삶을 견디고 버텨냈다. 성가시다는 동생을 챙기고 기꺼이 자기  장난감을 건네줬다. 첫째는 며칠 사이 부쩍 의젓해졌다.


'유호야. 지호가 동생이 오면 잘할 수 있을까?' 내심 걱정되는 마음에 첫째에게 물었다. 사실 다섯 살 첫째는 걱정이 없었다. 이제 살인 둘째도 아기인데 동생을 잘 맞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걱정이 됐다.

 

'그럼! 지호는 잘할 수 있어.' 생각하지 못한 첫째의 대답에 놀랐다. '진짜? 그렇게 생각해?' 왜 그렇게 생각해?라고 다시 첫째에게 물어봤다. '음...' 잠시 곰곰이 생각하더니 '지호는 착하니까.' 아들의 대답을 듣고 한시름 놓았다. 유호야! 네가 그렇게 생각한단 말이지? 한 번 믿어볼게. 불현듯 첫째가 둘째와 셋째 사이에서 중재 역할을 잘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에게 오늘 잠을 자면 안 되겠다고 유난 떨었다. 다음 날이면 아내와 소이가 집에 오는데 뭔지 모르게 그냥 잠들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았다. 아쉬운 마음에 아내에게 치킨 사진을 카톡으로 보냈다. 말은 하지 않았어도 치킨 한 마리 시켜 달라는 메시지였다.


 아내에게 바로 답장이 왔다. 이게 뭐냐고, 뭐 하는 거냐며 웃었다. 아내는 '설마 시켜 달라는 거야? 자기가 더 난리라고?' 했다. 평소 같으면 안 시켜줬을 치킨이었다. 하지만 아내는 여러 종류의 치킨 사진을 보내며 골라보라고 했다.

 정신 붙들고 두 아들을 재웠다. 같이 잠들지 않기 위해 정신을 바짝 차렸다. 8시에 재울 준비를 마치고 안방에 나란히 누웠다. 요즘 두 아들을 재울 때 오디오 동화를 틀어주는데 효과가 만점이다. 30분 정도 틀어주면 첫째부터 잠들고 둘째도 20분 안에는 잠든다. 정확히 9시 10분에 둘을 재우고 거실로 나왔다. 아내가 시켜준 치킨이 현관문에 놓여 있었다. 여보! 너무 감사해요.


 본격적으로 산후조리원 드라마를 보며 산후조리원  퇴실 전야제 파티를 즐겼다.


 요즘 산후조리원 드라마를 보는 재미에 빠졌다.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첫째부터 지금까지 임신과 출산했던 지난 시간들이 생각난다. 뭐 직접 아이를 열 달 동안 배에 품고 분만실에서 진통을 겪으며 애를 낳아 보진 않아서 아내가 느꼈던 감정, 고통은 잘 모르지만 그래도 아내 옆에서 임신과 출산을 지켜보고, 아이를 키우면서 들었던 감정, 상황, 고민들 재밌게 그려져 있어 울고 웃긴다.


 당분간 없을 호사를 누렸다. 잠을 못 이룰 것 같았지만 배불리 먹은 치킨 때문인지 몰라도 노곤노곤 먹다가 잠들어버렸다. 정말 당분간은 육퇴가 없을 것 같다. 아내가 보내준 치킨은 아무래도 치킨 먹고 힘내서 셋째를 키우자는 의미 같다. 힘 내보자. 세 아이 육아 파이팅.


 노래 가사처럼 시간이 흘러도 아이들에게 향한 마음이 변함없는 보통의 날이었으면 좋겠다.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가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사람들처럼 유난 떨지 않았으면 한다. 유호, 지호, 소이가 부쩍 큰 순간에도, 내 품에서 떠나보낼 때까지 처음 아이를 가졌을 때에 바랐던 마음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이켜보면  임신 테스트기 두 줄을 보고 존재만으로 감사했다. 사랑에 그 어떠한 조건 붙이지 않았다. 부디 건강하게 태어나길 바랐던 마음, 다른 건 몰라도 행복한 아이로 커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전부였다.


 찐이 소이가 오면 또 어떤 세상이 펼쳐질까. 기대된다. 살짝 걱정도 함께. 하지만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잘 해내리라 믿는다. 두 아이를 키운 내공이라면 셋째는 거뜬하지 않을까. 힘 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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