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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hoi파파 Dec 15. 2020

2021년 새 다이어리를 받는 기분


 매년 12월이 되면 학교사회복지사협회에서 새 다이어리를 받는다. 11월쯤 협회에서 다이어리 발송을 위해 배송지를 확인하는데 카톡으로 주소를 입력할 때면 감회가 새롭다. '아! 벌써 일 년이 지나가는구나, 언제 이렇게 시간이 흘렀지' 주소를 입력하면서 복잡한 감정이 파도친다.


 2020년은 나에게 어떤 한 해였을까. 올해를 천천히 되돌아봤다.


 올해 일하면서 교장 선생님의 특명이 있었다. 교장선생님은 교육복지실이 아늑하고 편안한 분위기이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럴만했다. 2018년에 교육복지 사업 종료로 복지실이 1년 동안 주인 없는 빈 공간으로 방치되다시피 했다. 공교롭게 작년, 교육복지실 양 벽을 허무는 내진 공사를 했고 공사 과정에서 장판이 찢기고 복지실 군데군데 공사 흔적이 남아있었다.


 게시판부터 꾸몄다. 유튜브를 검색했다. 다이소 네트망으로 방을 꾸미는 꿀팁 영상을 봤다. 다음 동영상으로 이어 보다가 플랜테리어 꾸미기 영상까지 보게 됐다. 다이소에서 네트망을 구입해 영상대로 만들었다. 그리고 창가에 놓을 공기 정화 식물 화분 몇 개와 게시판에 걸어 놓을 필란데시아를 샀다. 아늑한 불빛의 앵두 전구와 귀엽고 발랄한 노란색 가랜드도. 포토 프린터로 '우리 가족 행복한 순간' 사진·그림 공모전 수상작을 인화해 전시까지 했으니 복지실 분위기가 한껏 그럴싸했다.    

 하지만 게시판 꾸미기만으로는 뭔가 아쉬웠다. 부분 리모델링이 필요했다. 결국 해진 벽지와 장판을 새로 바꾸기로 했다. 필름지가 일어난 문도 새것으로 바꾸고, 바 테이블과 벽면 책꽂이를 설치하기로 했다.


 지난주에 일어나고 색이 바랜 벽지를 뜯었다. 새 벽지를 바르기 위해 창가에 있던 책장을 옮겼더니 한 해 묵은 먼지와 쓰레기가 있었다. 지금 너저분하게 늘어져 있는 짐으로 복지실이 어수선하지만 쌓인 먼지와 쓰레기를 쓸어 담으면서 뭔지 모르게 후련했다.  


 복지실 게시판에 있는 감정 카드를 가지고 올해 한 해 동안 어떤 감정이 주로 들었는지 붙여봤다.

 행복했다. 올해 11월, 셋째가 태어났다. 세 아이 아빠가 됐다. 이제 두 아들에 딸을 둔 다둥이 아빠다. 아는 사람들이 딸이란 말을 듣고 성공했단다. 내 생애 딸바보 아빠는 못할 줄 알았는데 딸이라서 어찌나 행복하던지. 그렇다고 마냥 행복했던 것은 아니었다. 아내는 이른 조산기로 임신 28주부터 병원 생활을 했다. 출산할 때까지 아내나 아이가 혹여 잘못되지 않을까 불안했고 아내가 입원한 동안 두 아들을 보면서 엄마 몫까지 하느라 힘들었다. 다행히 아내와 아이는 잘 버텨줬고 임신 37주 때 아이가 건강하게 태어났다.


 38년을 살아보니 진짜 행복감은 어떤 목표를 달성해서, 성과를 내서 느끼는 것도 있지만 나와 가족, 주변 사람들건강하게 지낼 때 더 크게 찾아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뿌듯했다. 한 학기 미룬 석사 논문 졸업을 했다. 논문을 쓰는 내내 힘들었다. 졸업할 시기를 놓치니 그만 포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꾸역꾸역 어떻게든 해보자는 심정으로 논문을 썼다. 지도 교수님이 내 생애 첫 책이 논문이라고만 하지 않았다면 그만 썼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포기하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하마터면 성취감을 느끼지 못할 뻔했다. 사실 논문 주제가 지금 하고 있는 일과 연관되어 성과라면 성과다.


 설레고 기대됐다. 2월에 어느 출판사로부터 출간제의가 왔다. 나름 꾸준히 쓰면 11월에 출간할 수 있지 않을까 부푼 기대감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다른 일에 치여 출판사 쪽에서 제안한 미팅을 서두르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타이밍을 놓친 셈이다. 결국 꿈꾸던 출간 계획은 흐지부지 끝나게 됐다. 그토록 바랐던 출간 기회를 허무하게 날렸고 연초에 계획한 원고까지 못 썼다.

 하지만 다른 기회가 찾아왔다. 어느 한 플랫폼으로부터 교육복지사 직무에 대한 이해와 취업 준비를 위한 자기소개서 작성법, 면접 준비 과정 등을 강의로 녹음하자는 강의 제안이 왔다. 목표했던 책 출간은 아니지만 나름 오디오 강의니 오디오 책이나 다름없었다. 강의를 위해 한 달 동안 원고를 썼고 계약서까지 쓰게 됐다. 나중에 완성된 녹음 파일을 들으면서 다시 가슴이 뛰었다. 2021년 새로운 꿈을 꾸게 됐다.


 어제 무명 가수가 나오는 [싱어게인]이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봤다. 조용필의 [그 또한 내 삶인데] 노래가 귀에 꽂혔다. 짙은 고독도 외로움도 삶의 일부분이고, 더는 사랑이 없다 해도 남겨진 내 삶이고, 가야 할 내 길이었다는 가사가 움츠려진 계절과 잘 어울렸다. 만약 가사가 3절까지 있다면 지금 살아 숨 쉬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지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만족해도 충분하다는 내용이지 않았을까.


 매년 새해가 되면 새 다이어리에 다짐하기 바쁘다. 매년 새롭지만 새롭지 않은 계획이다. 뭔가 이루지 못하면 뒤쳐진다는 생각에 바닥이 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아등바등 한 해를 보내는 이유이다. 노래를 들으면서 한 해 새 다이어리에 적을 내용이 달라졌다. 비록 연초에 세운 목표를 이루지 못한다 해도, 어떠한 성과가 없다 해도 그 또한 내가 살아갈, 살아내야 하는 삶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매일매일 감사한 마음으로 살기로 했다.


 2021년 새 다이어리에 무엇을 담을까. 내가 담는다고 생각대로, 계획대로 담길까. 인생을 파도라고 하는데 살면서 파도에 맞서지만 않길 바란다. 거친 파도라도 서핑하듯이 자유롭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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