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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hoi파파 Dec 14. 2020

남자의 허세란, 다섯 살도 비켜가지 않았다

 남자는 왜 허세를 부릴까. 바로 '남자의 허세' 키워드로 인터넷 검색을 했다. 남자의 허세는 진화의 결과라고 하는데, 옛날 옛적 수렵 생활을 하던 때는 이성의 선택을 받기 위해서 자신의 능력보다 과시를 해야 했다고, 허세는 동성 간의 경쟁에서 밀리지 않고 선택받기 위한 하나의 생존 처세술이었던 것이다. 허세 한번 잘 부리면 자기 유전자가 대대손손 이어지니 안 부릴 수가 있겠는가. 남자의 허세는 태초부터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


 나도 남자지만 허세는 남자와 뗄레야 뗄 수 없다. 남자들이 모이면 서로 자기 군생활이 힘들었다고 경쟁하듯 과시한다. 군생활에 대해 이야기하면 꼬박 날을 새도 부족하다. 누구나 라이언 일병 구하기 무용담은 하나쯤 가지고 있다. 말만 들으면 하나같이 전쟁에 참여라도 한 것 같다.


 뿐만 아니라 아내와 연애할 때 보고 싶어도 안 보고 싶은 척, 아파도 안 아픈 척, 힘들어도 안 힘든 척했다. 연애할 때는 무슨 척 포장하기 바빴다. 어떻게든 잘 보이려고 온갖 허세를 부렸던 것 같다. 아직도 이제 막 샤워를 마친 모습을 보고 으쓱거리는 것을 보면 지금도 어깨에 뽕이 줄지 않았다.


 허세는 다섯 살 아이도 비켜가지 않았다. 요즘 아들 어깨에 잔뜩 뽕이 들어있다.


 며칠 전 통 크기가 실한 양배추를 들고 퇴근을 했다. 생전 처음 보는 크기였다. 두 아들을 데리고 집에 도착했는데 두 아이 가방에 짐까지 있어서 검은 봉지에 든 양배추를 들고 갈 손이 부족했다. 하필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주차를 해서 둘째를 안고 가야 했다.


 끙끙 거리며 둘째를 안아 들어 올리니 첫째가 '내가 들게.' 라며 잽싸게 검은 봉지를 가져갔다. 하여간에 눈치 하난 빠른 첫째다. 하지만 마음만 받을 수밖에 없었다. 무슨 양배추가 첫째 몸통만 했으니 누가 봐도 첫째가 들고 가기엔 역부족이었다.

 

 "유호야, 무거워! 아빠가 들게." 걷다가 넘어지기라도 할까 봐 걱정됐다. 아들에게 괜찮다고 도와줘서 고맙다고 말하며 두 손으로 낑낑거리며 힘겹게 들고 있는 양배추를 다시 가져갔다.


 아들 반응에서 뭔가 잔뜩 힘이 들어갔다. 아들 표정이 '아빠! 괜한 걱정을 하시네요.'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아들은 나를 바라보며 한 번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나 하나도 안 무거운데!' 괜찮다는 표정을 지으며 두 손바닥을 하늘로 향해 올렸다. 다섯 살 아들도 이제 남자라고 허세를 부릴 줄 안다.


 어제 주말 동안 힘들었는지 매운 게 당겼다. 일요일 저녁, 아내에게 분식이나 시켜 먹자고 했다. 평소 매운 걸 잘 안 먹는데 내 입으로 신전 떡볶이를, 그것도 매운맛을 시키다니 놀라웠다.  


 신전 떡볶이 메뉴를 보고 아내에게 먹고 싶은 것을 말했다. 신전 김밥, 치즈 스틱, 잡채말이, 튀김 오뎅, 오뎅 탕. 거짓말 안 하고 더 시키고 싶었다. 아내가 무슨 분식을 이렇게 많이 시키냐고 해서 속으로는 아쉽지만 충분하다는 척을 하고 그 정도면 됐다고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만 칠천 원 치를 시켰더라.  


 먹는 내내 입안은 얼얼하고 머리카락은 쭈뼛쭈뼛 섰다.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속을 진정시키기 위해 오뎅 국물을 마셨는데 입안이 더 화끈거리고 아렸다. '안 매워?' 걱정하는 아내에게 안 매운 척 태연하게 말하느라 힘들었다. 괜한 허세를 부렸나 싶었다. 내일이면 대가를 치르리라. 이러다가 내일 피똥 싸는 건 아닌지 몰라.


 아내에게 안 맵다고 했지만 나도 모르게 코를 훌쩍거리기 시작했고 딸꾹질을 했다. 역시 실속 없는 허세는 결국 티가 나더라.


 다섯 살 아들이나, 곧 마흔 살이 될 아빠나 남자라고 괜한 자존심에 허세 부리는 것도 닮았다. 아들, 우리 귀여운 허세까지만 부리자. 진짜 마음을 속이지 말자. 굳이 허세를 안 부려도 되는 자존감으로 가득 찬 사람이 되자꾸나. 아빠도 그래 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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