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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hoi파파 Dec 22. 2020

결혼기념 2000일, 선물도 타이밍이다

 12월 9일이 되기 며칠 전 알람이 울렸다. 결혼기념일을 알리는 문자였다. 아내와 결혼한 지 벌써 2000일이 됐구나. 시간 참 빠르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풋풋한 대학생이었던 아내가 어느덧 세 아이의 엄마라니. 결혼한 지 2000일이 특별한 날은 아니지만 그날만큼은 특별하게 다가왔다.


 누가 결혼기념 2000일을 챙기겠냐만은 의미두지 않는 날에 뭐라도, 하물며 편지라도 쓰면 특별날이 되지 않겠나 생각했다. 마침 색종이가 보였다. 색종이 접기 책을 봤더니 [산타카드]를 접는 방법이 있었다. 빨간 색종이로 [산타카드]를 접었다. 카드 앞면에 산타 얼굴도 있어 활짝 웃는 모습을 그렸다. 그럴싸하게 만든 [산타카드]에 '사랑하는 슬에게, 산타 남편이'라고 적었다.

택배 박스에 투박하게 붙인 편지지

 다른 색종이에 편지를 썼다. 결혼기념 2000일을 축하하는 내용이었다. 세 아이도 축복이자 선물이지만 당신만큼은 아니라고, 아이보다 당신을 먼저 챙기라는 진심을 담았다. 편지를 쓰고 편지지 모양으로 접어 [산타카드]에 넣었다.


 [출산 후 산모 선물] 키워드를 검색했다. 영양제, 호박즙, 흑염소 엑기스. 뭔가 색다른 선물을 찾고 싶었는데 하나 같이 새롭지 않았다. 대부분 추천 선물이 산모보다 아이에게 맞춰있었다. 만약 여자라면 서운하겠더라.


 그때 셋째를 출산하고 산후조리원에서 했던 아내의 말이 떠올랐다. 아내는 회음부가 아프다고 했다. 산후조리원에 있을 때부터 아파했다. 첫째 때만큼의 고통은 아니었지만 셋째 출산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유독 힘들어했다. 쉽게 앉지 못했다. 아내는 몸을 한쪽으로 기울여서 엉덩이를 띄워 엉거주춤 밥을 먹었다. 자연히 골반이 틀어질 수밖에.


 30분을 검색했다. 찾고 찾아 원적외선 좌욕기를 찾았다. 회음부가 아파 식은땀 흘리던 모습이 눈에 선해 더는 고민하지 않았다. 원적외선 효과를 보고 안 살 수가 없었다. 피부 미용, 비만 해소, 혈액순환 개선, 신진대사 강화, 통증 해소, 생리통, 변비 해소, 스트레스 해소. 이쯤 하면 만병통치약이다. 하지만 결혼기념일에 맞춰 받기에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어쩔 수 없이 결제만 해놨다.

 결혼기념일 당일은 퇴근길에 국화 꽃다발을 샀다. 비록 아내가 좋아하는 신문지에 둘둘 말린 꽃다발은 아니지만 꽃을 사면서 좋아할 아내를 떠올리며 설렜다. 순간 아내에게 언제 꽃을 사줬지 기억을 더듬어봤다. 바로 떠오르지 않았다. 아내에게 소홀했다는 생각에 셀렌 마음도 잠시, 미안했다.


 아니나 다를까 현관문에서 꽃다발을 받는 아내는 소녀였다. 비록 화병이 없어 소주병에 꽃꽂이를 했지만 그마저도 얼마나 좋아하던지. 지금은 엄마와 아내로 사느라고 정작 자신을 챙기지도 못하는 아내 모습이 보여 뭉클했다.        


 기다리고 기다렸던 선물이 택배로 왔다. 어떤 선물이냐고 묻는 아내에게 기대하라고 알려주지 않을 만큼 비밀에 부쳤다. 두두두 드디어 선물 개봉.


 기대와 달리 아내는 출산하고 바로 받았다면 눈물을 흘렸을 거라고 했다. 예상과 다른 반응에 순간 당황했다. 그냥 좋아해 주는 척이라도 해주지. 보통 선물을 받자마자 뜯어보는데 아무리 아이들 때문에 해볼 시간이 없어도 그렇지 선물을 받은 지 하루가 지났는데도 뜯지 않은 택배박스가 거실에 방치되고 있었다. 며칠 동안 속으로 끙끙, 괜히 샀나 싶었다.


 인생은 타이밍이다. 뭐든지 적절한 시기가 있다. 선물도 그랬다. 타이밍을 놓쳐서 감동이 줄었다. 나중에 아내에게 들어서 알았지만 아내는 출산하고 꽃 선물을 기다렸다고 한다. 본의 아니게 국화꽃을 준 타이밍이 애 낳고 꽃 한 송이 안 줘서 서운하다고 말한 다음이라 꼭 그 말을 듣고 사다 준 것처럼 됐다.  


 왜 산후조리원에 있을 때 생각하지 못했나 자책했다. 출산하고 바로 선물했더라면 어땠을까 괜히 후회만 됐다. 특별한 날, 날 잡아서 꽃다발 선물하기보단 한 송이라도 자주 선물하자, 아니 그냥 평소에 잘하자로.


 여보, 세 아이 키우면서 고생이 많소. 아내로, 엄마로 사느라 힘들죠? 그래도 남편보다 아이보다 당신 먼저 챙겼으면 좋겠소. 당신 이름이 더 빛나도록 당신 옆을 지킬게요.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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