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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hoi파파 Dec 30. 2020

유치원 선생님에게 하는 거 반만 해봐라

 어느 날 거실에 가지고 논 장난감과 읽다 만 책이 널브러져 있었다. 거실에 발 디딜 때가 없었다. 걸을 때마다 감이 발에 걸렸다. 흩어져 있는 책과 장난감 보고 있자니 정신이 사나웠다. 결국 보다 못해 첫째에게 다른 것 하기 전에 정리부터 하자고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하게 됐다.   


 아들이 무슨 일을 할 때 진득하게 한 가지만 집중했으면 좋겠다. 아직 다섯 살이라 그러려니 지만 이것저것 마구잡이로 노는 모습 눈에 거슬렸다. 책을 읽다가도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퍼즐을 맞추다가도 책을 읽는다. 항상 거실은 미처 끝나지 않은 놀잇감들로 널브러져 있다.


 이참에 첫째에게 정리하는 법을 알려줄 셈이었다.


 '아빠가 놀았으니 아빠가 치워!'


 은근슬쩍 빠져나오려고 아들의 머리 굴리는 소리가 들렸다. 치우자는 말에 구렁이 담 넘어가듯 책임을 떠넘겼다.


 '가지고 논 장난감 정리하지 않으면 앞으로 가지고 놀 수가 없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화를 누그러트리며 단호하게 말했다. 치우지 않으려는 첫째와 팽팽하게 맞섰다.


'아빠랑 같이 치워보자!' 함께 치우자고 하면 순순히 치울 줄 알았다. 순진했다.


'여긴 유치원이 아니잖아!'

아들의 말에 하도 기가 차서 말문이 막혔다.


 첫째가 다섯 살이 되더니 징징이가 됐다. 어쩌면 동생이 생겨서 퇴행했는지 모른다. 울 일이 아닌 데 자기 뜻대로 되지 않거나 분에 못 이기면 눈물부터 흘린다. 남자는 우는 게 아니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르지만 해서는 안 되는 말이라는 것을 안다. 남자는 울어야 할 때 우는 것이라고 에둘러대지만 소용없다.


 어느 날 첫째가 하 징징거리 칭얼거리길래 '유호야! 유호가 울면서 이야기하면 엄마나 아빠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어, 다짜고짜 짜증부터 내면 엄마, 아빠 힘들어'라고 감정내비쳤다.


 대뜸 '선생님이 힘들지, 엄마가 뭐가 힘들어!' 말대답을 했다.


 첫째의 말을 듣고 어이없었다. 평소 담임 선생님을 잘 따르고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 정도 일 줄이야. 서운했다. 다섯 살이 상대방의 기분을 헤아리고 공감할 수  나이라는 것은 알지만 이 와중에 담임 선생님을 위하는 아들이 기가 막혔다. 그날따라 자식 키워봤자 소용없다는 말이 왜 이리 와 닿는지.


 유치원에서는 안 그런다는 아들의 말이 가관이다.  후로 첫째가 무조건 울음으로 해결하려고 하거나 정리 정돈을 하지 않거나 스스로 하지 않 때 아들에게 유치원에서도 그러냐고 되묻는다. 아들은 정곡에 찔려 머뭇거리며 눈치를 살핀다. 유치원에서 안 그런다는 아들, 얄밉지 않은가. 유치원에서라도 잘하는 것에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그 아들, 유치원 선생님에게 하는 거 반만 해봐라.


  말이 부메랑 되어 돌아왔다. 집 밖에서 하는 것처럼 부모님에게 했는지. 숱하게 썼던 연애편지도 부모님에게는 군대 있을 때 말곤 써드리지 못했다. 부모님을 따로 모시고 외식, 여행 한번 제대로 해드리지 못했다. 건강하신지 별일 없는지 외롭지 않게 전화 한 통 못했다.


 이그 아들, 남들한테 하는 거 반만 해봐.

낙엽이 지기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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