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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hoi파파 Mar 24. 2021

세 살 아들이 아픈 뒤로 변했다

  아들이 어린이집에서 두 번 토했다. 하원을 하고 바로 병원에 갔다. 장염 초기 증상이었다. 요즘 장염이 어린이집에서 유행한단다.


  다행히 아픈 첫날은 멀쩡했다. 장염이라고 하기에는 저녁밥을 잘 먹었다. 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웠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느낌이 싸했다. 아니나 다를까 하루 종일 누워있었다. 아들 눈은 초점 없이 흐릿했다. 누가 봐도 아픈 아이였다. 말을 걸어도 대꾸가 없었다. 누워서 눈만 껌벅거리며 멍한 표정으로 천장만 바라봤다. 아내도 나도 장염을 처음 겪어서 우왕좌왕했다. 장염일 때 흰 죽을 먹여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아픈 첫날 쇠고기 죽을 먹였으니.


  아픈 주말 동안 둘째가 투정을 부렸다. 껌 딱지인 줄 알았다. 꽁무니만 줄줄 따라다녔다. 하루 종일 보채기 시작했다. 앉아 있으면 다리에 머리를 베고 눕고 일어서면 바짓가랑이를 잡고 놓아주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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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가 아프고 나면 훌쩍 큰다는데 어리광이 늘고 떼를 쓰는 것이 심해졌다. 아내와 혀를 내두르고 고개를 저을 정도다. 둘째의 억지가 귀엽다가도 자지러지게 우는 소리가 듣기 싫어졌다.


  돌이켜보니 둘째가 아픈 뒤로 변했다. 자기 것이 분명해졌다. 뭐든 '지호 꺼야'한다. 형이 자기가 좋아하는 공룡 장난감을 만지거나 가져가면 악을 쓴다. 돌고래도 놀라 나자빠지지 않을까. 둘째 울음소리가 천장을 뚫고 달나라까지 들릴 것이다. 곧 아내와 나는 둘째의 악 쓰는 울음소리 때문에 노이 이로제가 걸리게 생겼다. 그나마 폭발적으로 말이 늘고 자아 개념이 생겼다고 위로하고 있다.


  고집도 이런 고집이 없다. 고집이 세다는 최 씨, 안 씨, 강 씨도 아닌 전 씨인데 막강하다. 25개월쯤 자아 개념이 생긴다는데 자기주장이 심해진 이유 같다. 뭐든 반대로 하려고 한다. 매일 아침 전쟁이다. 옷을 안 입겠다며, 양치질 안 하겠다며 이리저리 도망 다니는 둘째를 보며 인내심을 훈련받는다. 둘째를 보고 첫째가 순둥이였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나마 자기 원하는 것을 알고 표현할 줄 안다는 것에 위로하고 있다.


 아빠 껌딱지다. 옷을 입힐 때도, 밥을 먹일 때도, 놀 때도 '아빠, 아빠'하고 목 놓아 찾는다. 양치질을 할 때나 기저귀를 갈 때 아내의 손길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둘째가 온몸으로 버티는 바람에 아내의 손목이 너덜너덜해졌다. 형이랑 노는 것도 못 보고 동생을 안고 있지도 못한다. 오직 자기에게 관심을 둬야 한다. 오롯이 자기에게 집중하길 바란다. 셋째를 안고 있으면 둘째는 아기 침대에 눕히라고 자지도 않는 아이를 '소이 자, 소이 자' 침대를 가리키며 손가락질한다. 둘째의 질투가 무섭다. 엄마보다 강한 애착 관계가 만들어졌다. 불리불안을 느끼는 것인지 몰라도 아무튼 아픈 뒤로 집착한다.


  자는 패턴도 바뀌었다. 저녁 8시, 거실에서 셋째를 보고 있으면 아내가 안방에서 첫째 둘째를 재운다. 둘째가 아픈 뒤로 잠자리 패턴이 바뀌었다. '빠'하고 찾는 덕에 책을 읽어준 아내와 교대해야 한다. 먼저 잠든 첫째를 침대 위에 올리고 둘째와 범퍼침대에 나란히 누워 토닥토닥한다. 옆에 있는지 확인하고 그제야 잠든다.


  둘째가 가장 일찍 일어난다. 아침 6시면 기상이다. 늦잠 자면 6시 30분이다. 제발, 10분만 더 눕고 싶은데 둘째 덕에 꿈도 못 꾼다. 둘째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나를 깨운다. 얼굴을 들이 밀고 쳐다보는 둘째. 둘째가 씩 하고 웃는다. 눈이 마주치자마자 둘째는 '빠 나가자'라고 한다. 아니면 '빠 공룡'이라고 한다. 매일 아침 30분, 거실로 나가 공룡으로 역할 놀이하는 것이 아침 루틴이 되었다.


  아이는 변하고 변하면서 성장하고 있다. 둘째는 지금 성장통을 겪고 있다. 아이도 그것을 지켜보는 아내와 나도 힘들지만 아이와 함께 부모도 성장하리라 믿는다. 아들이 부디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라길, 그리고 아이 눈높이에 맞추는 부모가 되야겠다. 무엇보다 첫째를 알게 모르게 신경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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