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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hoi파파 May 11. 2021

휴가인 듯 휴가 아닌 휴가 같은 재량휴업일

  5월 6일과 7일은 학교 재량휴업다. 뜻밖의 휴일에 기분 좋았다. 한 달 전부터 그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나름 재량휴업일을 어떻게 보낼지 계획을 세우며 가슴 설렜다.


  어린이날만 하얗게 불태우면 꿀 같은 휴가다. 재량휴업일 계획은 이랬다. 두 아들을 유치원,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고 하원 시간까지 4차 원고 투고할 출판사 리스트도 정리할 겸 교보문고에 갈 생각이었다. 이틀 동안 적어도 한 시간은 커피숍에 혼자 앉아 달달한 티라미슈 라테를 마실 줄 알았다.


  '6, 7일 재량휴업일로 유치원 쉰 대.' 첫째도 그날 쉰단다. 아내의 말을 듣고 좌절하고 말았다. 믿을 수 없었다. '뭐? 하필 같은 날 재량휴업일이라니.' 아내의 말을 듣는 순간 머리가 노래졌다. 훨훨 가의 단꿈이 날아갔다. 그날 처음으로 국공립 유치원에 다니는 것을 원망했다.

어린이 날 처가댁 텃밭에 심은 고추 모종에 줄을 쳤다

  드디어 어린이 날이다. 긴 연휴 시작다. 어떻게 보내야지 벌써부터 걱정이다. 어디 멀리 가족 여행이라도 가면 좋겠지만 코로나로 엄두도 내지 못했다. 이제 가족 여행은 다섯 식구가 탈 수 있는 카니발 정도 되는 차가 있어야 가능하다. 꾸역꾸역 조수석에 셋째를, 뒷자리 창가 쪽에 두 아들을, 엉덩이도 안 들어가 가운데 자리에 아내가 걸터앉는다면 몰라도. 그렇다고 집에만 있을 수는 없었다.  


  첫째에게 킥보드를 사줄 겸 집을 나섰다. 첫째가 타던 킥보드는 자연스레 둘째에게 갔다. 킥보드도 탈 겸 장인어른이 근무하고 있는 학교에 갔다. 강당에서 반나절 동안 놀았다. 킥보드 타고 공놀이하고 학교 텃밭 비닐하우스에 상추 뜯고 아이들이 신났다. 


 직장인이라면 쉬는 날에 은행을 가든지 병원을 가든지 그동안 미뤄뒀던 일을 한다. 재량휴업일에 아이들 병원부터 가기로 했다. 둘째는 아토피 증상으로 피부과에, 첫째는 충치 치료를 위해 치과에, 셋째는 예방 접종하기 위해 소아과에 갔다.  


  재량휴업일 첫날

  아침 일찍 서둘렀다. 오전 8시 30분에 집을 나섰다. 피부과에 갔다. 세 아이 모두 아토피 증상으로 피부가 좋지 않다. 상처 난 둘째 귀는 좀처럼 낫지 않는다. 상처가 아물다가도 다음날이면 피부가 빨갛다. 고름이 뚝뚝. 아토피 증상처럼 피부가 하얗게 일어났다. 진물이 피어오른다. 아토피 때문인지 상처가 아물지 않는다.

 

  아침 일찍 서두른 이유가 있었다. 아내 말에 따르면 진료 시작하기도 전에 접수 마감된단다. 아니나 다를까 8시 40분에 도착했지만 이미 대기자가 줄을 섰다. 오전 11시에 진료가 가능했다. 하는 수 없이 오후 4시 20분에 진료 예약하고 병원을 나섰다. 둘째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줬다.


 첫째가 TV 보는 모습을 보고 사시가 아닌지 걱정했다. 첫째는 TV를 볼 때 정면을 보지 않는다. 자세를 고쳐줘도 삐딱하게 고개를 옆으로 돌려본다. TV를 보는 모습이 어찌나 눈에 거슬리는지 바른 자세로 봐야 한다고 말해봤자 소용없다. 잔소리로 듣고 관계만 틀어질 뿐이다. 그렇다고 그냥 내버려 둘 수 없었다.

 

 둘째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면서 안과에 들렀다. 아내와 첫째를 병원에 내려줬다. 둘째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아내와 첫째를 태우러 다시 안과로 갔다. 다행히 아내는 아무 이상 없다고 했다. 이 시기에 가끔 옆으로 고개 돌려서 보기도 한단다. 단지 습관 되지 않게 지도해주라는데 TV 보여줄 때마다 신경 쓰게 생겼다.    


 마침 셋째 예방 접종해야 했다. 바로 보건 의원에 갔다. B형 감염 예방 주사를 맞았다. 겸사겸사 첫째 수두 예방 접종도 했다. 생각해보니 재량휴업일 첫날은 오전 오후 병원에만 있었다. 아내가 속이 다 후련하다고 했지만 아직 한 군데가 남았다. 


 재량휴업일 둘째 날

 오전 9시 아내는 첫째와 둘째를 데리고 집을 나갔다. 전날 예약한 치과 진료가 있었다. 아내는 치과 치료를 마치고 둘째를 어린이집에 보냈다. 아내는 첫째와 데이트를 했다. 그 덕에 하루 종일 셋째를 봐야 했다. 


  육아는 끝이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4시간마다 분유를 먹인다. 트림을 시키면 잠을 잔다. 하지만 30분 이상 자지 않는다. 다음 분유를 먹을 때까지 그림책 보여주고 동요 불러주며 놀았다. 빨래를 털고 개기 위해 아기 바운서에 눕히지만 일어나려고 버틴다. 아이가 우는 바람에 거실 청소를 미처 못 끝냈다. 널브러진 청소기에 나까지 정신없다. 아이를 보면서 집안일까지 하는 아내가 대단할 뿐이다.   


 첫째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노력했다. 굳이 안 보내도 되는 둘째를 어린이집에 보냈다. '유호야 쉬는 날 뭐하고 싶어?' 아들에게 하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해보라고 했다. '기차 타러 가자' 곡성에 기차를 타고 간 적이 있는데 그때 좋았나 보다. 아들이 요 며칠 기타 타러 가자는 말을 자주 했다. '그래, 기차 타자!'   

 병원 가느라 기차 타자는 약속이 미뤄졌다. 아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토요일에 기차를 탔다. '유호랑 기차 타고 갈 테니 지호랑 소이 태우고 삼례역으로 와' 기차 타는 시간이 생각보다 짧아 당황스러웠다. 아쉬워하는 아들에게 '다음에 아빠랑 단둘이 KTX 타고 서울에 가자' 아들은 싱글벙글 대며 웃었다.    

 삼례역에 내리면 삼례문화예술촌이 있다. 아들과 아내를 기다리며 구경했다. '아들 로봇 태권 V 옆에 앉아봐' 아들과 사진 찍으며 시간을 보냈다. 모처럼 활짝 웃는 아들을 보며 미안해지더라. 


 휴가인 듯 휴가 아닌 휴가 같은 재량휴업일이 끝났다. 출근했다. 혼자만의 시간을 갖지 못해 아쉽지만 미뤘던 일을 해치운 것 같아 속이 다 후련하다. 


  그래, 혼자만의 시간은 출근해서 마시는 맥심 커피 한잔으로 족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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