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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hoi파파 May 18. 2021

월요일, 오늘은 쉬고 싶었다

아빠의 속마음

 유독 월요일 병이 심하다. 일요일 저녁부터 증상이 나타난다. 일단 출근하 싫다.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안 잡힌다. 애먼 일만 붙들고 있다. 괜히 책상을 정리하고 교육복지실을 청소한다. 대충 시간 때우는 것이다. 커피를 마시면서 업무 다이어리에 오늘 해야 할 일을 끄적거리다 보면 어영부영 오전이 지나간다. 오후는 말해 뭐해. 오전과 별반 다를 게 없다.


 하필 월요일 오전에 회의가 잡혔다. 줌(Zoom)으로 교육복지사 학습 동아리 사전 모임을 했다. 회의로 오전을 다 보냈다. 겨우 오전이 지났을 뿐인데 녹초가 되었다. 해야 하는 일은 산더미다. 오후는 지난주 학년 별 사례 회의했던 자료를 정리했다. 지원 순위 별로 어떤 서비스와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연결할지 고심하다 보니 퇴근 시간이 가까웠다. 애들 하원 시간에 쫓겨 책상에 포스트잇 이젤 패트를 너저분하게 놓고 퇴근했다.


 월요일 병에는 특별한 약도 없다. 쉬는 게 답이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그냥 오늘은 쉬고 싶었다. 하지만 쉬고 싶다고 쉴 수 없다. 세 아이 아빠에게 선택권은 없다. 선생님들과 '집으로 출근하네요.' 우스갯소리 했던 말처럼 집으로 가면 아이들과 놀아야 한다. 적어도 저녁 설거지와 마른빨래를 터는 일은 내 몫이다. (물론 하루 종일 셋째를 보면서 집안 일 하는 아내가 이 글을 보면 콧방귀를 뀌겠지만.)


 아들이 집에 들어오자마자 킥보드 타자고 울고불고 난리 났다. 쉬고 싶은 마음에 버텼다. 맑게 갠 하늘에 곧 비 올 것 같다고 거짓말하지 않나, 비가 와서 킥보드 타면 물이 튄다는 말도 안 되는 말을 하고 말았다.


 아무리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지만 이 정도 일 줄이야. 세 아이 아빠에게 계획은 사치다. 쉴 계획은 물거품 되어 사라졌다. 순간 예측대로 흘러가지 않아 머리 아팠다.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머리가 지끈지끈 스트레스 지수가 올랐다. 그냥 기분 좋게 갔을걸 하는 후회만 남았다.

 한 시간, 동네 탐방을 했다. 여섯 살 첫째는 이제 제법 혼자 킥보드를 잘 탄다. 둘째를 앞에 태우고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가까운 아파트 놀이터에서 놀다가 학교 운동장에 갔다. 첫째는 킥보드 타고 서울 갈 기세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공사 현장을 보고 가는 길을 멈췄다. 한참 동안 지켜봤다. 두 아들 모두 포클레인이 움직일 때마다 신기한 듯 쳐다봤다. 둘째는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포클레인'이라며 좋아했다. 아이들이 집에 갈 생각을 하지 않길래 그 자리에 쭈그리고 앉았다. 10분이 넘었을까, 아들 눈치를 보며 '유호야! 저기 일하시는 분들 집에 가려고 정리한다, 우리도 집에 가서 밥 먹자.' 눈치채지 못하게 집에 가자고 유도했다. 조금만 더 보고 가겠다는 아들 말이 이렇게나 반가울 수가. 내색하진 않았지만 기분 좋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차라리 나가길 잘했다. 씻기고 밥을 먹으니 곧 재울 시간이었다. 솔직히 집에 있는 것보다 밖에 나가 노는 것이 낫다. 자기 전 세 시간 동안 좁은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다. 서로 장난감을 놓고 다투기만 하지 서로 이로울 게 없다.


 결국 저녁 8시, 두 아들을 재우러 들어가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월요일 병에, 퇴근 후 두 아들과 한 시간 동안 킥보드 탄게 숙면에 도움될 줄이야. 어쩌면 두 아들이 육퇴 후 자정 넘게 TV 보는 루틴을 깨 주었다. 그냥 애들 잘 때 같이 자는 게 월요일 병의 특효약일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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