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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hoi파파 May 21. 2021

사귄 지 10주년, 다음날이 로즈 데이여서 다행이었다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무슨 일 있어?' 아내는 아무 말이 없었다. 순간 답답했다. 수화기 너머 아내의 숨소리가 들렸다. 뭔가 심상치 않다. 뭔지 모르게 할 말이 있는 듯했다. 다시 아내에게 무슨 일로 전화했냐고 물었다. 아내는 한참을 뜸 들이더니 어렵게 한 마디를 했다.


그냥 전화했어


 아내의 긴 침묵에 긴장했다. 기운 없었다. 아무래도 하루 종일 셋째를 돌보느라 지쳤나 보다. 평소 셋째 이유식을 먹이거나 울음을 그치지 않을 때 영상 통화를 하곤 했으니 그런 줄만 알았다. 아내는 한참을 뜸 들이더니 '뭐 무슨 일 있어야 하나' 그냥 전화했다고 했다. 별 이야기 없이 전화를 끊었다. 그게 더 무섭더라. 


 핑계 대자면 바빴다. 마침 회의를 준비하고 있었다. 회의 자료와 간식 준비에 정신없었다. 간식을 사러 가는 길에 전화 온 것이다. 하필 정신없을 때 전화 왔으니 용건부터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생각해보니 언제부터 무슨 일이 있어서 전화했나, 시도 때도 없이 전화기 붙들 던 때가 떠올라 주책맞은 주둥이만 연신 때렸다.


 그날 저녁 아내가 일찍 잠들었다. 하루 종일 셋째를 보느라 피곤했던 모양이다. 혼자 덩그러니 거실에서 tv를 보다가 무심코 아내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봤다. '아 그래서 전화한 거였어?' 아내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보고 아차 싶었다. 꽃병에 꽃은 주황 장미꽃 사진과 함께 적어놓은 글이 가슴에 꽂혔다.


10년 전 오늘, 오빠랑 처음 만났다. 혹시나 싶어 약속도 안 잡고 하루 종일 집구석에 있었는데 혹시는 무슨 바쁘다고 연락도 안 함. - 아내 인스타그램 스토리 중에-


사귄 지 10주년이구나.

 사실 다음 날이 로즈 데이인 줄 몰랐다. 그날따라 브런치, 인스타그램 피드에 장미꽃이 많이 보였다. 출근길 우연히 라디오 사연을 듣고 로즈 데이인 줄 알았다. 그렇다고 전 날 못 챙긴 '사귄 지 10주년'과 퉁칠 생각은 아니었다.


 데구루루 잔머리 굴러가는 소리. 퇴근 전 10분 일찍 학교를 나섰다. 학교 후문에 꽃집이 있다. 꽃집에 들어가 '장미꽃을 주세요.' 진열된 장미꽃을 한참 동안 봤다. 붉은 장미꽃이 좋을까, 파란색이 섞인 장미꽃도 눈에 띄었다. 한참을 무슨 꽃을 살까 고민했다. '주황 장미꽃 열 송이 주세요.' 10주년이니 10송이 샀다.


 계산을 하려고 지갑을 찾았다. '아! 차에 두고 왔지, 차는 아내가 타고 오는데.'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일단 하던 포장을 마저 하고 아내가 도착하길 기다렸다. '후문까지 가지 말고 그전에 차 세워봐' 아내는 꽃집 앞에 차를 세웠다. 그때까지 아내는 눈치채지 못했다. 아내는 자연스럽게 차에서 내려 뒷자리에 탔다.


 아내가 뒷자리에 타는 사이 재빨리 조수석에 있는 지갑을 꺼냈다. 운전석에 타는 척하고 꽃집에 가서 계산하고 꽃다발을 들고 나왔다. 뒷문을 열고 등에 숨긴 장미 꽃다발을 스윽 내밀었다. '무슨 꽃이야?' 내심 좋아하는 눈치다. '어제 우리 사귄 지 10주년이었잖아 그래서 장미꽃 10송이 샀어' 어깨를 으쓱댔다.


 이거 로즈 데이랑 퉁치는 거야? 
다음 이미지

  '아니 아니 그럴 리가.'  


 예전에는 신문지로 둘둘 무심하게 말린 꽃도 참 많이 줬는데. 여전히 소녀 같은 아내, 꽃을 받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미안해지더라.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참 많은 것이 변했다. 벌써 둘이 만난 지 10년이 넘었고 결혼해서 세 아이를 낳았다.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함께 해준 아내에게 고맙다는 말을 이 글을 빌러 전하고 싶다. 


 여보! 고맙고 사랑해요. 친구 남편은 하루에 다섯 번 전화한다며 열 받아하던 모습이 떠오르는군요. 어찌나 귀엽고 미안하던지 민망했소. 결혼해도 연애하는 것처럼 살겠다는 다짐을 다시 새겨봅니다. 세 아이 키우면서 헌신해줘서 고맙고 더 행복하게 해 주리라.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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