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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hoi파파 Mar 17. 2021

아내가 사진만 남기고 집을 나갔다

아내에게 온 카톡 사진

  지난주 금요일, 아내는 1박 2일 여행을 갔다. 여행이라고 표현했다가 아내에게 무슨 말을 들으려고, 아내가 이 글을 안 봤으면 좋겠다. 다시 말해 여행이라기보다 잠시 외출? 외박?. 말이 1박 2일이지 토요일 오후에 아내를 다시 만났으니 1박 2일이라고 말하기 곤란하다. 꽉 채운 1일 정도면 몰라도.


  혼자 가지도 않았다. 4개월 조금 지난 셋째를 데리고 나갔다. 여행이라고 말하기 미안한 이유다. 아내에게 호기롭게 혼자 다녀오라고 말했다. 곧 죽어도 멋진 남편처럼. 셋 보는 것은 식은 죽 먹기라며 자신 있게 말했다. 아내는 혼자서 어떻게 셋을 보냐고 기막혀했다. 아내는 혼자 가면 걱정되고 신경 쓰여서 마음 편히 못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진짜 가도 되는데.  

  

  사실 아이들 키우면서 아내 혼자 멀리 간 적이 없다. 외출을 해도 누군가 한 명은 꼭 데려갔다. 여섯 살 첫째는 이제 제법 컸다고 커피숍에 가는 것도 가능해졌다. 세 살 둘째를 데리고 나갈 때는 같은 또래를 키우는 친구를 만나러 간다. 이번 1박 2일도 4개월 셋째와 비슷한 또래를 키우는 친구 모임이었다.


  아침 일찍 간다는 말이 떠올라 아내에게 카톡을 했다. 


출발했어?


  아내는 이제 출발한다고 했다. 알고 보니 청소하느라 늦어진 것이다. 속으로 그냥 나가지, 진 빠지게 무슨 청소를 한다고... 물론 아내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마지막까지 집안일하는 아내가 안쓰러웠다. 


  하루 종일 셋째를 보면서 얼마나 답답할까. 좁은 집에 햇빛도 잘 안 들어오는 거실에서 하루 종일 있는다고 생각하니 미안하더라. 요즘 부쩍 집을 나가고 싶다고 말하는 아내가 걱정된다. 진짜 나갈까 봐. 체력도 정신도 한계가 온 듯하다. 


  아내는 지금 쉼이 필요하다. 아내도 더는 아내와 엄마가 아닌 자신의 삶을 살고 싶을 텐데.


  진짜 나가기 전에 아내에게 휴가를 줄 생각이다. '아이들 걱정 말고 어디 잠깐이라도 다녀와!' 말을 해도 아내는 걱정된다는 이유로, 어디 갈데없다는 말로 얼버무릴게 뻔하지만. 이번에는 내쫓는 한이 있어도 강제 휴가라도 줘야겠다.


  어떻게 하면 아내에게 쉼을 줄 수 있을까 고민이다. 아내가 남긴 사진에 어떤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큰 아들처럼 굴지 않고 손이 많이 가지 않는 남편으로 거듭나라고 한다. 오늘따라 큼직하게 쓴 글이 눈에 띄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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