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노트북 바꿀까?
속 터져 죽겠어.
아무리 장비 탓하면 안 된다지만 느려 터진 노트북 덕에 성격 버리겠다. '이렇게 느려 터져서야 글을 쓸 수 있겠어' 버벅거리는 노트북을 내던지고 싶은 적이 한두 번 아니다. 감정대로 행동했으면 이미 노트북은 저 세상 갔겠지.
매번 글 쓰는 의지가 꺾였다. 부글부글 주인 속 뒤집어 놓고 혼자 태연하다. 장비 탓하는 거 아니라고요? 글 쓰기 고수가 아니라 장비 탓하는 것이다.
노트북은 결혼 전 아내와 함께 샀다. 혼수품이다. 사실 노트북을 구입할 때 컴퓨터 사양을 꼼꼼하게 따지지 않았다. 컴맹이라 매장 직원이 추천한 노트북을 샀다. 그것도 다른 매장과 비교하지 않고 바로. 컴퓨터를 구입할 때 쓰는 목적에 따라 CPU, RAM, SDD 사양이 달라진다는 것을 이번 새 노트북을 알아볼 때 처음 알았다.
노트북에 대한 로망이 있다. 커피숍에 노트북을 가져가는 꿈, 하루 종일 뷰가 좋은 창가 테이블에 앉아 글을 쓰고 싶다. 하하. 겉멋만 잔뜩 들었다.
글이 막히면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면 된다. 찰각찰각 커피숍에 울려 퍼지는 타자 소리와 마실 때마다 달그락거리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은 상상만 해도 마음이 평안해진다.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다.
현실은 다르다. 장비와 꿈의 괴리는 컸다. 가지고 있는 노트북 무게가 2kg 남짓 된다. 묵직한 게 벽돌 드는 느낌이다. 무겁거니와 거추장스럽다. 노트북 가방이 무슨 서류 가방같이 생겼다. 촌스럽다. 속도가 느려 버퍼링이 심하다. 워드 작업과 인터넷을 동시에 할 수 없다. 한 가지 작업만 해야 한다. 글을 쓰다가 자료를 찾으려고 인터넷 창을 띄우면 검색하다 눈을 질끈 감게 된다. 손 놓고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길다. 원고 작업이나 과제를 위해 커피숍에 노트북을 가져가 봤지만 딴짓만 하고 애꿎은 아메리카노만 마시게 되더라.
명색이 브런치 작가인데 노트북 하나 장만해야겠다 생각했다. 지지부진한 원고 쓰기에 동력을 불어넣기 위해서라도 새 노트북 사고 싶었다. 새 노트북이면 글이 잘 써질 것 같았다. 일단 노트북을 사면 돈이 아까워서라도 글을 쓰리라 생각했다. 꼭 공부하기 전에 책상 정리하다 기 빨려 책 덮는 꼴이다.
'그래, 노트북 사자' 책 쓴다며. 고민 끝에 노트북을 사기로 마음먹었다. 이 맘먹기까지 오래 걸렸다. 다른 작가들은 어떤 컴퓨터를 쓰는지 '작가 노트북'을 검색해봤다. 그 뒤로 '가성비 노트북'을 추천하는 유튜브 영상을 골라봤다. CPU, RAM, SDD가 무엇인지 확실히 알았다. 며칠 동안 내게 맞는 노트북을 추렸다.
결국 무게였다. 노트북을 때와 장소 구분 없이 사용하려면 가벼워야 했다. 국내 제품뿐만 아니라 해외 제품도 가벼운 것이 많았다. 어느 유튜버가 컴맹은 운영체제가 깔려있고 서비스 잘 되는 LG나 삼성 제품을 사라고 했다. '다나와' 앱을 깔고 노트북을 비교했다. LG 그램과 에이수스 엑스퍼트 B9 노트북이 마음에 들었다.
고민만 하다 시간만 허비했다. 차라리 그 시간에 글 쓸걸 그랬나. '살까', '사야 할까' 사이에서 갈팡질팡만 했다. 투자한 만큼 본전을 뽑을까. 과연 육퇴를 하고 얼마나 노트북을 켤까? 아무래도 TV를 더 킬 것 같은데. 주말에 노트북을 들고 커피숍에 갈 수 있을지 따져봤다. 궁서체로.
답이 나오더라. 장비 탓하지 마라.
다음 이미지 기준을 낮추기로 했다. 욕심부리지 않기로 했다. 결국 노트북 구입을 미뤘다. 지금 글 쓰는 실력으로는 워드 작업만 해도 충분하다. 사실 지금 노트북으로도 글 쓸 수 있다. 아무 문제 될 게 없다. 새 노트북은 괜한 욕심을 낸 것이다. 글이 안 써지는 이유를 노트북에 돌리고 있었다. 문제는 글쓰기 실력인데.
무엇을 어떻게 써야 잘 써진 글일까를 고민한다. 완벽한 글은 없다. 중요한 것은 일단 쓰는 것이다. 새 노트북 없이도 글은 핸드폰으로, 볼펜과 노트에다 충분히 쓸 수 있었다. 글 쓰기 기준을 낮추는 일은 핑계와 다른 이유를 대지 않고 매일매일 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