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계약서에 서명을 했다만

by hohoi파파

출간 계약을 했다. 꿈이 현실 되는 순간이다. 아니 현실이 꿈이 되는 순간인가. 꿈인지 생신지 아리송하다. 그렇다고 볼을 꼬집어 볼 수 없는 노릇이다. 두근거리는 심장을 붙들고 출판 계약서에 서명했다.


사실 계약서에 무엇이 적혀 있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유독 계약서에 숫자가 도드라지게 보인 것은 또렷이 기억난다. 몇 자리 숫자였을까. 솔직히 기억을 더듬어도 잘 모르겠다. 어쨌든 숫자가 길었다.


출판사 사장님과 실랑이를 했다. 사장님이 제시한 숫자에 몇 자리 더 넣어야 한다고 다툰 것이다. 사장님과의 줄다리기가 팽팽했다. 끝내 설득했다. 계약서에 두줄을 찍찍 긋고 숫자를 새로 적었다. 그 순간 그 자리에 함께 앉아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일어나서 박수를 쳤다.


출간 계약도 했겠다 기분 좋게 쏠 요량으로 자리를 옮겼다. 술집으로 갔다. 술이 서너 잔 돌자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기승전결 화제가 출판 계약서였다. 옆에 앉아 있던 사람이 계약서를 보자고 난리다. 마지못한 척 보란 듯이 데이블에 딱하고 올렸다.


그 순간 사람들은 비명을 질렀다. 환호성이 아니었다. 테이블에 올린 계약서에 불이 붙은 것이다.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간힘을 다해 계약서에 옮겨 붙은 불을 껐다. 하지만 불씨가 남았다. 불씨는 계약서를 태우기 시작했다. 화장지가 타듯 순식간에 계약서가 사라졌다. 계약서가 홀라당 타 버렸다.


눈이 번쩍 떠졌다. 아! 기분 더럽다. 뭔지 모르게 찝찝하다. 발만 동동 구른 기분이 여전히 남아있었다. 새벽 4시, 꿈에서 깼다.


순간 멍하니 컴컴한 천장을 바라만 봤다. 계약서에 서명할 때까지만 해도 행복했는데... 출판의 꿈이 한순간에 사라진듯한 기분에 꺼림칙했다. 황망하다. 눈 앞에서 사라지는 계약서를 보고도 손 쓸 수 없는 상황에 어찌나 어이없고도 가슴 아픈지. 하루 종일 꿈의 잔상이 떠나지 않고 머릿속에 굴러다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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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꿈을 곱씹어보다 정신분석 심리학자인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상담 기법이 떠올랐다. 그가 출간한 [꿈의 해석]에서 꿈은 "억압된 욕망의 위장된 성취"라고 정의한다.


정령, "위장된 성취"란 말인가. 요 며칠 출판 계약서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나보다. 출판에 대한 간절한 소망이 무의식에 팍팍 꽂히고 새겨졌다. 머리만 대면 곯아떨어지고 평소 꿈도 잘 안 꾸는 내가 꿈을 꾼 것을 보니 말이다.


이걸 또 기록하겠다고. 꿈에서 깨자마자 핸드폰부터 찾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실제로 상담 현장에서 사용하는 꿈의 분석 방법이었다. 꿈을 구체적으로 적어보고 연상해서 꿈의 이미지와 내면을 연관 짓는 작업을 그 새벽에 하고 있었다. 분석 심리학자 융은 꿈은 삶 속에서 구체화시키는 자기실현의 과정이라고 한다. 융의 말대로 꿈을 간절히 소망하고 현실에서 실현시키라는 메시지였나.


이번만큼은 꿈은 반대라는 말을 믿고 싶다. 결국 끝내 출판 계약서를 쓰고 만다는 꿈보다 해몽을. 보통 꿈을 꾸면 금방 잊어버리는데 너무 생생해서 지금도 당황스럽다. 깨고 싶지 않은 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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