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이나 산행 모임에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하필 5월 등산 모임이 석가탄신일에 잡혔다. '그냥 눈 딱 감고 질러 버려?' 모른척하고 갈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감히 생각을 행동으로 옮길 위인은 못 된다. '아내에게 물어보고 말씀드릴게요.' 해놓고 차마 아내에게 물어보지 못했다.
석가탄신일이다. 결국 등산 모임을 포기하고 가족과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화창한 날씨에 아이들과 모래 놀이할 겸 해수욕장으로 갔다. 짐을 챙겨 부안 변산 해수욕장으로 떠났다.
바야흐로 모래 놀이하는 계절이 왔다. 변산 해수욕장은 매년 아이들과 모래 놀이 겸 가는 곳이다. 거리가 적당하다. 가깝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멀지도 않다. 한 시간 달리면 도착한다. 무엇보다 야외에 수도 시설이 있어서 아이들을 씻기기도 편하다. 원터치 텐트와 매트, 도시락만 챙기면 하루 종일 있을 수 있다.
두 아들이 모래 놀이를 하다 말고 해변가로 걸어갔다.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첫째가 바다로 들어갈 것 같았다. 이내 첫째가 첨벙첨벙 바다로 들어가더니 철퍼덕 주저 않았다. '아! 아직 해수욕하긴 이른 날씨인데' 주변을 둘러봐도 물놀이하는 사람은 손을 꼽을 정도였다.
둘째가 형을 따라가겠다고 난리다. 결국 둘째 손에 이끌리어 바다에 들어갔다. 역시 애들은 애들이다. 찬 바다에서 한 시간 넘게 놀았다. 입술이 파랗게 변해도 나갈 생각을 않는다.
첫째가 바다에 둥둥 떠있는 해조류를 잡더니 이게 뭐냐고 묻는다. 미역인가? 사실 잘 몰랐다. 알 수 없으니 그냥 미역이라고 했다. 그 뒤로 첫째가 미역국 끓여 먹어야겠다며 열심히 건져 올렸다.
자꾸 섬을 가리키며 가자는데 어찌나 식겁하던지. 해변가에 두고 온 모래 놀이 장난감이 점점 멀어졌다. 알고 보니 밀물이 아니라 썰물 때였다. 아들에게 곧 물이 들어오니 나가자고 했는데 물이 빠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사이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였다. 쭈그려 앉아 조개를 캐고 있었다. 맛소금을 들고 다니며 맛조개를 잡는가 하면 갈퀴를 가지고 동죽조개를 잡았다.
'유호야! 우리도 조개 캐보자' 조개 캐는 모습을 신기하게 쳐다보는 아들에게 말했다. 간신히 바다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새 조개 캐기에 호기심을 보이는 두 아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모래 놀이 삽으로 조개를 캤다. 장비 탓하는 것은 아니지만 갈퀴가 있었더라면 그날 저녁 조개 구이를 해 먹었을지도 모른다. 첫째가 조개 캐는 것을 보고 '아빠 조개 학원에 가야겠다.' 아들의 말은 조개를 진짜 잘 잡으니 학원에 가서 조개 캐는 것을 가르치라는 것이다. 아들 말에 웃음이 빵 터졌다. 아들에게 조개 캐는 것으로 인정받으니 어깨가 으쓱. 그 뒤로 두 아들 아랑곳하지 않고 혼자 신나게 조개를 캤다.
아들과 함께 놀기 위해서라도 수영을 배워야겠다. 친구네 부부와 만나 데이지 꽃을 보러 부안 마시길 1코스로 자리를 옮겼다. 30분 동안 머물고 집으로 출발했다. '유호야 아까 잡은 게, 동죽조개를 놓아주자고 가자' 했다. 뭐 해 먹기 곤란한 양이었다. 이대로 가져가 봤자 버릴게 분명했다. 가져가고 싶은 아들을 설득했다. '게와 동죽조개 집에서 부모님이 기다린데' 놓아주자고 다시 말했다. 나름 생명에 대한 소중함을 알려주고 싶었다. 다음에 또 잡기로 하고 선착장 갯벌에 놓아줬다. 아쉬워하면서도 뿌듯해하던 아들 표정이 생생하다.
진짜 실컷 놀았다. 낮잠도 자지 않아 육퇴가 빠를 것이다. 재우는 시간에 맞춰 오후 6시 30분에 집에 도착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세 아이를 씻겼다. 아내와 손발이 척척. 차례로 아이를 씻기는 사이 아내는 아이들을 닦이고 밥을 먹였다. 안방에 널어놓은 빨래를 털어 개고 잠자리를 폈다.
저녁 8시 10분 잠자리에 들었다. 첫째가 피곤했는지 금방이라도 눈이 감길 듯했다. 오늘 하루가 어땠는지 궁금해서 잠들기 전에 '유호야! 오늘 어떤 것이 좋았어?' 물었다. 모래 놀이하고, 조개 캔 것이 좋았다는 아들, 감사 기도가 채 끝나기도 전에 새근새근 잠들었다.
오늘은 하얗게 불태운 게 아니라 뻘겋게 불태웠다. 팔이 뻘겋게 타서 쓰라렸다. 아무래도 하루 종일 애쓴 나에게 수고했다고 위로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두 아들 잠들 때까지 장인어른이 챙겨준 막걸리만 생각했다. 아이들과 함께 잠들지 않기 위해 정신 바짝 붙들고 있었다. 좀처럼 잠들지 않는 둘째를 재우다가 몇 번의 고비가 왔는지 모른다. 만약 다음 날 아침에 눈을 떴다면 하루 종일 원망했으리.
때 이른 해수욕이었지만 모처럼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다음에는 아침 일찍 선유도에 가야지. 여름을 잘 보내기 위해 모래 놀이 장난감부터 사야겠다. 아니 갈퀴부터 사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