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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hoi파파 Jun 11. 2021

지난 주 아이들과 경찰서에 다녀왔습니다

지난주 경찰서에 갔다. 경찰서 앞에서 기념사진도 찍었다. 아들이 선물용 비타 500을 낑낑대며 드는데 사진만 보면 집들이 간 줄 알겠. 한껏 들떠 있는 아이들을 보고 미루지 않고 잘 왔다 생각다.

몇 주전 아내가 아이들 지문 등록하자고 했다. 요즘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서 지문 등록한단다. 사실 아내가 말하기 전까지 아동 실종예방을 위한 사전등록제가 있는 줄 몰랐다.


아들에게 '유호야 오늘 경찰서 갈 거야' 아들이 경찰서에 간다는 말에 신났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아들에게 '경찰관 아저씨에게 수고하신다고 음료수 사갈까?' 물었다. 아들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음료수 사러 마트 가자고 난리다. 하여튼 일 벌이는 데는 일등이다. 아들에게 '유호가 음료수 드리면서 음료수 드시고 도둑 많이 잡아주세요'라고 해보는 건 어떻냐고 물었다.


마침 경찰서 가는 길에 마트가 있었다. 첫째를 데리고 마트에 들어갔다. 아들과 함께 음료수를 골랐다. 아들에게 '범인 잡느라 피곤하시니까 비타민이 들어간 비타 500을 사자'고 했다. 아들은 이미 어떤 음료수를 사느냐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아무거나 빨리 사서 경찰서에 가자는 눈치다.


경찰서 주차장에 차를 정차했다. 마침 한 경찰관이 주차장에서 쓰레기통을 정리하고 있었다. 혹시 몰라 서둘러 내렸다. 경찰관에게 지금 아이 지문 등록할 수 있는지 물었다. 쓰레기를 정리하던 경찰관은 곤란하고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담당자가 조퇴했단다. 비타 500까지 샀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순간 허탈했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당혹스러웠다. 순간 아들에게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아들이 갑자기 바뀐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걱정했다. 아직은 곧이곧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나이이기도 하고 요즘 들어 원래 계획이 조금이라도 달라지거나 틀어지면 받아들이지 못하고 징징대며 우는 소리로 말하기 때문이다. 차로 돌아가 아들에게 다음에 와야 할 것 같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반전, 걱정과 달리 아들이 차분해서 놀랐다. 아들이 '우리 전주역에 있는 경찰서에 가는 건 어때?' 아내에게 아이디어를 냈다. 생각해보니 다음 사거리만 지나가면 경찰서가 있다. 생각지도 못한 아들 반응에 걱정했던 행동이 멋쩍었다. 그날만큼은 문제 해결 능력이 나보다 좋았다. '유호가 좋은 아이디어를 냈네'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칭찬해주었다. '그래 가보자' 바로 다른 경찰서로 출발했다.

무슨 나란히 앉으니 조서를 꾸미는 것 같다. 경찰서는 나 역시 생소하다. 언제 경찰서에 올 수 있을까, 아들에게 또 언제 올지 모르니 잘 보라고 했다. 경찰서 안으로 들어오기 전까지 호들갑을 떨던 아들이 맞는지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비타 500을 들고 쭈뼛. 경찰관에게 비타 500을 주면서 아들 들으라고 아들이 주고 싶어 해서 샀다고 말했다. 강조하며 몇 번을 말했는지 모른다.  

엄지 손가락만 찍는 줄 알았는데 열 손가락 모두 찍더라. 기계 오류로 둘째는 열 손가락 모두 다시 찍어야 했다. 엎친 데 덮친다고  오류로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하지만 아이들은 지루해하지 않았다. 마냥 신나 경찰서를 누볐다. 특히 눈치 없는? 먹성 좋은 둘째가 경찰관들이 먹으려고 둔 방울토마토를 거의 다 먹어서 어찌나 민망하던지. 민망함은 내 몫이었다. 비타 500을 들인 값을 방울토마토로 뽑았다.

경찰관 모두 친절했다. 경찰관이 경찰차를 구경시켜준다고 첫째를 경찰차 태다. 첫째는 경찰차 내부 모습이 신기했던 모양이다. 경찰관에게 이것저것 궁금한 것을 물었다. 아무튼 첫째의 넉살은 인정해줘야 한다니까. 한참을 경찰차 주변 구석구석 돌아보며 구경했다. 


알고 보니 그 주에 첫째 유치원에서 '공공기관 방문해서 가족사진 찍기' 과제를 냈단다. 이거 웬일 손 안 대고 코 푼 셈이다. 그래서 첫째가 경찰차에 타러 나갔을 때 사진 찍으라고 눈치 줬구나. 그런데 아내의 의도를 눈치채지 못하고 남긴 사진이라곤... 하하.


주말 아이들과 가까운 동네 경찰서에 한 번 들러보세요. 아이들의 만족도는 최고입니다. 경찰관에게 음료수를 전해주는 경험으로 따뜻한 마음이 무엇인지 배우지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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