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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hoi파파 Jun 17. 2021

아들이 유치원 선생님에게 혼난 썰을 풀다

'아빠 같이 눕게 안방에 가자' 아들이 피곤한 모양이다. 터벅터벅 아들이 먼저 안방에 들어갔다. 바로 아들의 꽁무니를 따라 안방으로 들어갔다. 고분고분한 아들 모습에 평소와 다름을 느꼈다. 범퍼 침대에 이불을 펴고 아들에게 베개를 가져오라고 했다. 아들과 함께 베개를 베고 누웠다.


아들 표정이 좋지 않다. 요즘 들어 동생 때문에 혼나고 억울한 상황이 벌어진다. 아마도 그런 이유로 쉽게 짜증내고 화내는 것인지 모른다. 방금 전도 동생 때문에 울었다. 힘없이 축 늘어진 첫째가 안쓰러웠다. 짠한 마음에 첫째 머리를 쓰다듬고 엉덩이를 토닥거렸다.


순간 첫째와 단둘이 누워 본 적이 언제인지 떠올렸다. 첫째에게 미안한 마음이 몽실몽실 피어올랐다. 둘째가 어리다는 이유로 첫째에게 이해를 구하고 양보를 유도하는 것이 첫째 입장에는 잔혹한 요구였지 않았을까. 속으로 반성하고 있던 중 아들이 뜻밖의 이야기를 꺼냈다.


'오늘 혼났어' 아들이 선생님에게 혼났다고 했다. 갑작스러운 아들 고백에 당황했다. 이런 말도 할 줄 아는구나 신기하면서도 순간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난감했다. 요즘 들어 심해진 고집 자기 뜻대로 안 되면 짜증내고 징징 울면서 말하는 패턴을 봤을 때 유치원 생활이 어떨지 내심 걱정하고 있었던 터였다. 아니나 다를까 선생님에게 혼났다는 말을 듣고 걱정부터 됐다. 애써 평정심을 유지하며 태연하게 '어어 무슨 일 있었어? 왜 혼났는데?' 아들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앞으로 유치원 오지 말래' 아들은 선생님이 유치원 오지 말랬다며 내일 유치원 못 가면 어떡하냐고 걱정했다. 속으로만 '응? 설마 선생님이 그런 말을 했을까? 그렇게 말했다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겠지.' 생각하고 차마 입 밖으로 말할 수 없었다. 아들의 걱정하는 마음을 다독이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선생님이 그렇게 말했어? 선생님이 유치원 오지 말라고 말해서 속상하구나.' 그 유명한 '구나' 대화법으로 아들의 마음을 공감했다. 솔직히 말은 너의 마음을 공감한다였지만 속은 아들이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야 하나 갸우뚱했다. '선생님이 왜 유치원에 오지 말라고 그랬을까?' 아들이 생각해서 직접 말해줬으면 했다.


'급식실 복도에서 뛰어서 혼났어' 아들이 혼날만했다. 그렇다고 유치원에 오지 말라고 했을까 의문이 들었다. 선생님 이야기를 듣지 못했으니 일단 아들 말을 믿었다. '아 그래서 선생님이 유치원에 오지 말라고 했구나' 다시 한번 걱정하는 아들을 안심시켰다. 아들은 여전히 걱정됐는지 이제 유치원 못 간다는 말만 계속했다.


'유호야 선생님이 왜 그런 말씀을 하셨던 것 같아?' 아들이 한 번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 생각했으면 했다. 아들은 갑자기 창문을 넘다가 혼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위험한 행동했을 때도 선생님이 그런 말을 했다는 아들 말에 순간 뒷목이 뻐근했다.


아들에게 다른 사람과 함께 지낼 때 규칙과 질서가 필요하고 생명의 소중함을 이야기하면서 위험한 행동을 하지 말하야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선생님이 혼낸 이유는 위험한 행동을 해서 그러는 거야, 다칠 수 있어. 그리고 유치원에도 지켜야 할 규칙이 있어. 급식실에서는 뛰어다니면 안 돼. 다 같이 밥 먹는 공간인데 뛰어다니면 먼지도 일어나고 다른 친구들 밥 먹는데 방해되거든.' 이유를 차근차근 설명했다. 아들에게 '선생님이 그만 하라고 했을 때 바로 행동을 멈춰야 해.' 당부했다.


여섯 살 첫째가 말썽을 피우는 행동이 늘었다. 종종 아들이 하는 말과 행동을 보면 눈에 거슬린다. 아니 문제 행동을 문제로 보니까 어느새 말썽꾸러기가 되었던 것이다. 문제는 아들이 아닌 그렇게 바라보는 내게 있었다. 고집이 생겼다는 것은 자기주장이 생겼다는 말인데 왜 자기주장이 늘었네라고 귀엽게 바라보지 못할까. 왜 슬슬 눈치 보고 어깃장 내고 힘겨루기 하며 징징 거릴 때 휘둘리는 걸까.

언제부터인지 첫째 모습에서 우울함이 보였다

좋은 부모를 꿈꾸지만 매일 아이들에 휘둘리는 모습을 마주 할 때마다 자존감이 뚝뚝 떨어진다. 그래도 좋은 부모는 포기할 수 없다. 아이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주고 싶다. 매번 무참히 깨지지만 오늘도 좋은 부모이길 꿈꾸며 하루를 보낸다. 매일 아이들과 투닥투닥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어제보다 오늘 더 성장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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