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살 첫째가 고집부리는 이유를 알았다

미운 여섯 살을 아시나요?

by hohoi파파

며칠 전 책을 읽었다. 책 장을 넘기다가 '미운 여섯 살'이라는 표현에서 한참을 멈춰 곱씹었다. '미운 네 살' '미운 다섯 살'은 들어봤어도 '미운 여섯 살'은 처음 다. 나만 그랬던 것이 아니었다. 여섯 살 아이를 둔 부모는 다 같은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 같아 위로됐다. 그만큼 아이 키우는 것이 쉽지 않다는 이다. 네다섯 살쯤 아이에게서 무슨 일이 벌어지길래 네 살부터 여섯 살 때까지 줄곧 미워지는 걸까.


'미운 여섯 살' 시기가 되면 아이들은 부모 말을 잘 듣지 않는다고 한다. 그 이유는 어른들이 하는 것을 자기들도 할 수 있다고 믿으며 무슨 일이든 자기가 하겠다고 고집부리는 데 있다고 했다. 저자는 이를 '전지전능감'이라고 표현했다. 이 시기에 아이는 '전지전능감'으로 무장하며 자신을 '유능한 존재'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부모를 무척 힘들게 하는 때지만 발달 과정상 극히 정상적인 시기라고 보면 된단다.

항상 말은 쉬웠다.


책을 읽자마자 '아~ 그렇구나! 그래서 그런 거였어?' 무릎을 탁 쳤다. 말 한마디에 깨달음을 얻다니. 순간 첫째 아들이 그간 했던 말과 행동이 머릿속에서 스쳐 지나갔다. 딱 저자가 말한 대로였다. 그동안 첫째에게 벌어졌던 일들이다. 뭔지 모르게 속 시원했다. 딱히 말로 설명할 수 없었던 일들이 글로 깔끔하게 정리돼서 뭔가 답답한 마음이 좀 풀렸다. 무엇보다 아들의 생각과 감정, 행동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저자에 따르면 '전지전능의 시기'는 보통 5~7세에 찾아온다고 한다. 딱 첫째가 전지전능의 시기에 머물고 있다. 이때 아이는 자신을 어른과 동일시하다 못해 초자연적인 인물로 여기기도 한다고 한다. "슈퍼맨 흉내를 내기도 하고, 잘난 척을 하거나 친구들이나 어른들의 의견을 무시하기도 한다. 이 시기에는 너도 나도 대장 역할만 하려다가 자주 다툼이 일어난다"라고 했다.

그래서 무시한 거였니?


발달 심리학자인 에릭 에릭슨에 따르면 3~6세에 주도성이 발달한다고 한다. 이 시기에 아이는 고집스러워지고 모든 일에 주도성을 가지려고 한다고 한다.


어쩌면 주도성과 전지전능감은 서로 관계가 있을지 모른다. 모든 상황을 통제하려는 것은 모든 일을 스스로 하려는 심리와 비슷하다. 저자와 발달심리학 말대로 발달 과정상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중요한 것은 이 시기에 '주도성이든' '전지전능감이든' 적절한 시기에 발달 과제를 획득하고 욕구를 충족해야 건강한 아이로 성장할 수 있다. 부모는 아이가 '주도성'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말에 또다시 반성했다.


'아빠! 나도 핸드폰 사줘, 엄마 아빤 있잖아' 아무리 아들에게 핸드폰은 지금 필요한 물건이 아니라고 설명해봤자 소용없다. 아들 입장에서 그냥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 엄마, 아빠가 밉고 속상하다.


어느 순간부터 아들이 누군가와 비교하기 시작했다. 친구들이 가지고 있는 물건은 사야 한다. '아빠! 헬로카봇 물통 사줘 친구들도 다 있어.' 아들에게 '펭수 물통을 산지가 얼마 안 됐고 또 물통을 사면 낭비 같아' 말해보지만 아들은 같은 물건을 또 사는 것이 낭비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머리는 이해해도 기꺼이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만큼 소유욕이 강열해졌다. '아빠, 우리도 높은 집에서 살자.' 아들이 아파트에 사는 친구들이 부럽다는 말을 할 때마다 어쩔 줄 모르겠다. 전지전능감은 열등감과 우월감 사이에 있을지 모른다.


아들에게 놀라운 능력이 더 있다. 요즘 말을 그럴싸하게 잘 지어낸다. 아들이 사실과 없는 말을 교묘하게 섞어 말한다. 무슨 말을 믿어야 할지 헷갈린다. 아들의 말을 듣고 있으면 '이게 진짜일까' 싶을 때가 있다. 아들 말에 공감하면서도 속으로 가려듣는 나를 마주한다. 가끔 눈에 보이는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던 말들이 사실일 때가 있어 얼마나 당혹스러운지 모른다. 펜트하우스 작가 하면 되겠다. 하하.


주도권을 자신에게 가져오기 위해 말을 지어내는 것일까. 아니면 진짜 자신이 전지전능하다고 믿는 걸까. 아들은 사실과 진실, 거짓 사이에서 창조한다. 이때 사실에 근거해서 거짓말 아니냐고 아이에게 무안하게 핀잔주거나 혼내면 안 된다고 했는데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그냥 창의력이 좋다고 생각하는 게 속편 할 수도.


저자는 '전지전능의 시기'는 인간이 회상할 수 있는 가장 어른 시절이라고 한다. 돌이켜보면 유치원 때 기억이 가장 오래됐다. 저자의 말처럼 평생 기억으로 남기 때문에 부모의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이의 '전지전능감'을 함부로 꺾으면 아이에게 큰 상처로 남을 수 있다고 한다. 한계를 느끼는 사건은 곧 자신에 대한 실망감, 좌절감이라고 했다. 이것이 고착되면, 이후 한계를 느낄 때마다 격렬한 감정 반응이 올라온다고 한다.


그렇다고 아이가 하고 싶은 대로 모든 것을 허용할 수 없지 않은가. 자기 멋대로 행동하는 아이로 클 수 있다. 단지 아이의 힘겨루기 식의 요구에 비난하거나 욱하지 않고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하고 싶다고 다 들어주는 것이 아닌 아이의 요구, 의견을 존중하면서 한계를 정해줘야 한다고 믿는다.

사실 그게 가장 어려운 일이다.


분명한 것은 여섯 살 아이가 문제 있는 것이 아니다. 자연스러운 발달 과정을 인내하고 지켜보지 못하는 서툰 부모의 태도가 문제를 키울 뿐이다. 여섯 살이라고 해서 미운 게 아니라 밉게 보니까, 힘들게 한다고 생각하니까 미웠던 것이다. 고집 피우는 것도 부모와의 상호작용에서 나온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사실 가장 큰 문제는 다른데 있다. 집에 전지전능한 분이 두 명이라는 것이다. 여섯 살 첫째와 세 살 둘째가 한 지붕 아래 살면서 첫째는 동생을 사랑하지만 한대 쥐어박고 싶고, 둘째는 형을 동경해 모든 말과 행동을 따라 하지만 기어코 이기고 싶은 마음이 서로 충돌하는 탓에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 아내와 나는 그 사이에서 휘둘린다.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알아듣지 못하는 말로 얼버무리거나 소리 지르는 세 살인 둘째는 왜 그런 걸까? 요즘 둘째가 다크호스로 떠오르며 전능전능한 자리를 넘보고 있다. 요즘 들어 아이들이 언제 크나 생각하지만.


사실 아이들의 미운 시기가 영원할 것 같지도 않다. 돌아보면 언제 이렇게 컸나 싶을 정도로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 것에 아쉽다. '미운 네 살'도, '미운 다섯 살'도, '미운 여섯 살'도 영원하지 않으며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소중한 순간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조금은 버거울지라도 지금 이 순간을 즐겨보자 마음을 다 잡는다.

사랑해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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