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마뱀을 분양받기 전까지 이미 많은 사람들이 도마뱀을 키우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이색, 희귀 반려 동물 시장이 활발했다. 라테는... 반려 동물 하면 기껏해야 강아지와 고양이였다. 국민학교 정문 노점상에서 파는 노란 병아리와 문구점에 파는 거북이와 소라게 정도가 이색 반려 동물이라 할 수 있겠다. 뭐 어렸을 때 집 앞마당에 키웠었던 토끼와 오골계, 오리는 뭐 엄마 아빠가 자식 정서에 좋으라고 손수 키웠으니 일단 패스하겠다.
요즘 이색 반려 동물 시장에서 이미 고슴도치와 우파루파는 식상한 동물이 됐다. 뱀, 육지 거북이, 심지어 파충류 샵이나 아쿠아리움이나 생태 전시관에서 볼 법한 늑대 거북이, 전갈, 독거미 타란튤라도 키운다. 이미 이색, 희귀 파충류를 키우는 시대다.
한심해 보이는 멍 때리기, 한참 멍 때리기 대회가 이슈일 때 멍 때리기의 의미를 몰랐다. 멍 때리기는 현대인에게 꼭 필요한 안정제다. 뇌는 휴식이 필요하다. [알쓸신잡 2] 유현준 교수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그때 퇴근만 하면 눕고 싶고 리모컨을 손에 놓지 않으려 했는지 이유를 알았다고 무릎을 쳤었다. 유현준 교수의 말에 따르면 원시시대에는 장작불을 보고 긴장과 불안감, 스트레스를 풀었다고 한다. 현대 사회에서 그 역할을 TV가 한다고 했다. 그래서 퇴근하고 30분 정도는 TV를 보는 것을 내버려 둬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 어느 때보다 불안, 스트레스가 많은 현대인에게 멍 때리기는 필수다.
포켓몬스터 우파가 그 우파루파야?
불멍 말고 도마뱀멍이다.
도마뱀멍의 시작은 순전히 아이들 때문이었다. '선생님 저 도마뱀 키우고 싶어요.' 간절했던 아이 눈빛에 그만 도마뱀을 분양받고 말았다. 저마다 다른 이유로 학교 생활 적응이 어려운 아이들이었지만 곤충과 파충류를 좋아하는 아이들이었다. 뭐만 물어보면 주로 '몰라요' '싫어요'라고 말하던 아이 눈에서 처음으로 '하고 싶다'는 절실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실제로 분양한 뒤로 복지실에 자주 찾아왔다. 도마뱀이 밤새 안녕하지 관심을 보였다. 비록 동물이었지만 아이들에게 새로운 관계가 시작된 것이다. 어쩌면 아이들이 더 멍 때리기가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직접 장식물을 고르게 했다. 사육장을 꾸미고 복지실에 놨다. 평일은 아이들이 사료와 물을 돌아가며 준다. 주말은 아무도 없는 교육복지실에 둘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집에 데려간다. 여름 방학이라 요즘은 출퇴근길에 가지고 다닐 수 없어 그냥 집에 두었다. 가까이 두고 오래 봐서 그런지 도마뱀멍에 빠졌다.
내친김에 넓적사슴벌레 암수 한쌍도 분양받았다. 성체 넓적사슴벌레를 분양해야 1년 동안 알을 낳고 애벌레가 번데기 되어 다시 성체가 되는 과정을 관찰할 수 있다고 했다. 놀라운 것은 도마뱀 수명이다. 잘 키우면 17년을 산단다. 생각보다 오래 살아서 놀랐다. 진짜 강아지나 고양이 키우는 것만큼 애정을 쏟아야 했다.
요즘 도마뱀멍이 일상이다. 아침저녁으로 사육장 안에 분무기로 물을 뿌려 습도 조절한다. 사료 먹는 덕분에 귀뚜라미를 꼭 살 필요도 없다. 이틀에 한 번 사료를 물에 풀어 주면 된다. 마스카라 칠한 듯 속눈썹이 위로 올라간듯한 눈은 정말 빠져든다. 세로 모양의 눈동자를 보면 넋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다.
넷째다. 젖먹이 애가 한 명 더 늘었다. 이유식 먹이는 것 같다. 잘 먹지 않으면 걱정되고 잘 먹다가도 뱉으면 신경 쓰인다. 처음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도마뱀에 기겁하고 놀랐지만 지금은 조금 익숙해졌다. 호들갑 떨지 않는다. 도마뱀도 나도 친해질 시간이 필요했나 보다.
솔직히 책임이라는 무게감에 부담스럽다. 누군가 17년은 키워야 하지 않나. 그렇지만 아이들이 좋아해서 분양받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안부가 궁금한 아이들이 자주 복지실에 찾아온다. 개학하기 전에 도마뱀과 넓적사슴벌레와 친해지는 방법을 적어 볼 생각이다. 관계 맺는 법은 동물에게도 배울 수 있으니 말이다.
1. 반갑게 인사를 하고 이름을 불러요.
2. 어떻게 지냈는지 안부를 물어봐요.
3. 도마뱀이 하는 말에 귀 기울여 봐요.
4. 도마뱀의 변화를 자세히 보고 관심을 가져요.
5. 무엇보다 자주 봐야 해요.
6. 마지막으로 이름을 부르며 칭찬해줘요.
먼저 애들이랑 도마뱀 이름부터 지어야겠다.
오늘 교육복지사 간담회가 있어 인근 학교에 갔다. 복지실에 수족관이 있었다. 수경 재배하는 유리잔에 작은 물고기가 있었고 수족관에 작고 큰 물고기들이 헤엄치고 있었다. 물고기멍이다. 자꾸 시선이 가서 회의에 집중할 수 없었다. 이미 마음을 뺏겼다. 아무래도 머지않아 교육복지실에서 수경 재배할 것 같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