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백신 1차 접종을 했다. 백신을 맞자마자 다이소에 들러 집으로 바로 갔다. 하지만 아내는 남들은 백신 맞고도 잘만 출근한다고 엄살 피운다며 난리다. 어차피 공가로 쉴 수 있는데 뭐하러 출근하나. 이런 날은 쉬어도 돼, 오늘은 좀 쉬자. 아내 말에 콧방귀를 뀌었다.
다이소에 들렀던 이유는 얼마 전 분양한 게코 도마뱀 사육장을 새로 꾸미기 위해였다. 사육장이 아크릴판으로 만들어져서 도마뱀이 벽을 타고 오르지 못했다. 힘겹게 올라가다가도 힘없이 쭉 미끄러졌다. 오르는 습성이 있는 도마뱀에게 좋지 않은 사육장이었다. 이왕 키우는 거 살기 좋은 환경으로 만들어 주고 싶었다.
다이소에서 산 물건을 식탁 위에 펼쳐놨다. 어떻게 하면 사육장을 이쁘게 꾸미지 한참을 사육장 만들기에 몰입하고 있는데 아내가 전화 온다고 했다. 몰입한 탓에 전화 온지도 몰랐다. 저장되지 않은 번호였다. 평소 같으면 모르는 번호라 안 받았을 것이다. 번호를 보고 뭔지 모르게 전화를 받아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여보세요'
'선생님!'
핸드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를 듣고 누구인지 단번에 알았다. 멘토 학생이었다. 매일 복지실에 들러 돌봄 교실에 가는 학생이다. '선생님이랑 먹으려고 김밥 사 왔어요.' 시계를 보니 때마침 점심시간이었다. 오후 돌봄 가기 전에 김밥을 먹고 가려는 모양이다. 문제는 선생님 김밥도 사 왔다는 말이었다.
쉬고 싶은 마음에다 방금 전까지 사육장에 집중하고 있는 탓에 순간 고민됐다. '어디세요?' 묻는 아이에게 출근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했다. '오늘 선생님이 백신을 맞아서 학교 가지 않았어, 어쩌지?' 이렇게 말하면 아이가 '괜찮아요'라고 대답할 줄 알았다.' 뽀로통하게 '선생님 김밥 사 왔어요'라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때 왜 '고마워! 선생님 생각해서 김밥 사 왔구나.' 하지 못했을까. '김밥 한 줄은 네가 먹고 남은 하나는 교무실에 계시는 선생님 드리면 되겠다.' 아이는 다른 선생님이 아닌 나와 먹고 싶었는데 같이 김밥 먹고 싶은 아이 마음을 공감하지 못했다.
아내가 통화를 듣다못해 한마디 했다. '오빠 생각해서 김밥 사 왔구먼 잠깐 학교에 다녀와, 초등학교 2학년이 오빠 주려고 김밥 사 온 게 얼마나 대견해.'
지금 생각해보면 시무룩해진 아이 말투를 듣고 아이의 속마음을 알아차렸어야 했다. 김밥을 챙길 때 얼마나 기대했을까. 또 불 꺼진 복지실을 보고 얼마나 실망하고 속상했을까. 아내의 말을 듣고 누가 머리를 때린 것처럼 띵했다. '잠깐만 기다려, 지금 선생님이 복지실로 갈게.' 한달음으로 갔다.
컴컴한 복도 앞 의자에 앉아있었다. 아이 손에 검은 봉투가 들려있었다. 안에는 김밥 두 줄과 코카콜라 두 개가 있었다. 나를 보자마자 반갑게 웃던 아이의 모습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그냥 '선생님이랑 먹으려고 김밥 사 왔다'는 말을 듣고 암말 않고 바로 왔었을걸 하는 생각에 미안했다.
복지실에 있는 컵라면을 꺼내 뜨거운 물을 붓고 아이와 마주 앉아 점심을 먹었다. 아이와 함께 점심을 먹고 돌봄 교실까지 데려다주었다. '선생님 생각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잊지 않고 했다. '덕분에 맛있는 김밥을 먹었다'라고 아이의 따뜻한 마음을 칭찬했다.
돌봄 교실에 거의 다다랐을 때 아이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만약 선생님이 안 왔으면 어땠을 것 같아?' 아이는 바로 '슬펐을 것 같아요'라고 말하는데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그런 아이에게 김밥 한 줄은 다른 선생님에게 주라고 했으니 아이에게 또 그런 막말이 어디 있겠나. 다시 한번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아이와 헤어졌다.
'선생님이 아빠 해주면 안 돼요'라고 말했던 아이. 아이에게 밥보다 '함께 먹는 사람'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아침은 안 먹고 점심은 대충 때우거나 거른다. 저녁 돌봄에서 먹는 저녁 그마저도 양껏 먹지 않는다. 관계가 빠진 식사는 먹어도 먹어도 배 부르지 않고 공허한 것이다. 그래도 매일 복지실에 들러 얼굴 도장 찍고 반갑게 인사하는 아이라 다행이다. 오늘의 교훈, 아이들의 전화는 무조건 받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