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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hoi파파 Jul 14. 2021

하필 그날 비가 내렸다

교육복지사는 누군가에게 우산이다

몇 주 전부터 한 학생을 전담하였다. 같은 반 친구에게 위협하는 행동을 해서 잠시 학급에서 생활할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처음 일주일 동안 4교시에 맡다가 이제는 5교시를 함께 보내고 점심을 같이 먹는다.


사건이 일어나고 교장, 교감 선생님과 담임 선생님, 상담 교사와 대책 회의를 했다. 피해 학생이 등교를 하게 되어 반을 옮겨야 하는 상황이었다. 가해 학생에게 반을 옮기게 된 상황과 이유를 설명해야 했다. 어떻게 전달해야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의견을 나눴다.


가해 학생이었지만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 안타까웠다. 반을 옮기는 것이 과연 최선일까 생각했다. 오히려 반감을 사고 적대감을 심어주는 결정이 아닐까 걱정했다. 모두 반 교체는 가혹하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가해 학생에게 반을 옮기게 됐다는 것을 알려주기로 한 날이다. 그날 오후 3시, 어머니가 학교에 방문하기로 했다. 아이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게끔 언질 주지 않은 상황이었다.


마침 종례 후 그 학생을 데리고 건지산에 가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하필 그날 오후에 비 소식이 있었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아이와 함께 학교를 나섰다. 마트에 가서 마실 음료수와 과자, 초콜릿 하나씩 골라 건지산으로 출발했다. 원래 건지산 정상에 가려고 했다. 하지만 정상 쪽 하늘은 온통 먹구름이었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았다. 조금이라도 더 걷기 위해 반대 방향으로 갔다. 한 10분을 걸었을까, 멀리서 나무 벤치가 보였다. 아이가 벤치에 앉아 쉬자고 했다. 사실 2학년이라 같이 걷는 것 차제가 의미 있었다. 날씨 탓도 있었지만 더 걷는 것에 욕심 내지 않았다. 자리를 잡고 그날 기분, 학교 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한 40~50분을 머물렀을까 갑자기 우르르 쾅쾅 번쩍번쩍 천둥번개가 쳤다. 금세 숲은 어두워졌다. 하늘을 보니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았다. 속으로 '하필 오늘 같은 날 비가 내가 내려' 생각했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서 어쩔 수 없이 학교로 출발해야 했다. 진짜 작정하고 소나기가 내렸다. 양동이로 퍼붓듯이 내렸다.


"아이들에게 교사나 상담자들이 해줄 수 있는 일은 우산이 되어주는 것이다. 부모님이 퍼붓는 잔소리, 기대와 이상, 자기애에 가까운 욕망을 뒤집어쓴 채 숨도 못 쉬고 있는 아이들에게 숨 쉴 수 있도록, 도망갈 수 있도록, 쏟아지는 비를 피할 수 있도록 우산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중략) 아이들에게는 그 답답함과 압박을 이야기할 누군가가 필요하다. 아이들의 심정을 비난하지 말고 그대로 들어줄 사람이 필요하다."(김현수 저자, 무기력의 비밀 중에서)


하필 반을 옮겨야 하는 소식을 듣는 날, 비까지 퍼부었으니 아이의 기분이 어떨지 난감했다. 날씨처럼 온통 잿빛 하늘에 천둥 번개가 치는 것처럼 반을 옮겨야 하는 것이 얼마나 불안하고 무서울까. 퍼붓는 비를 쫄딱 맞는 기분은 아닐까 걱정했다.  

교육복지실에 겨우 돌아와 아이에게 우산 챙기길 다행이라고 말했다. 학교를 나서기 전 행정실에 들러 우산을 빌려온 것이 이렇게 고마울 수가. 우산이 아니었으면 큰일 날뻔했다며 비록 비가 억수로 퍼붓지만 우산을 빌려온 것이 천만다행이라고 말해주었다. 내심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하고 느끼길 바랐다.


아이에게 '오늘 어땠어?' 물었다. '비가 와서 무서웠어요.' '비가 쏟아져서 옷과 신발이 젖었어요.' 아~ 그랬구나! 아이의 말을 다시 반영해주며 아이의 생각, 감정을 그대로 인정했다.


'좋았던 점이 있다면, 뭘까?' 물었다. '음...' 한참을 고민하더니 '선생님이랑 걸어서 좋았어요' '고라니를 봤어요' 말했다. 아이 말에 맞장구치며 '그래! 언제 비를 맞아보겠어. 비를 맞았지만 씻겨 내려가는 듯한 기분이라 오히려 선생님은 시원했어' 말해주었다. 같은 상황에 다르게 생각하고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의도적으로 알렸다. '덕분에 고라니도 봤잖아, 즐거웠어' 마냥 좋은 상황은 아니었지만 좋은 기억으로 생각하기를 바랐다. 어쩌면 반을 옮겨야 되는 상황을 잘 받아들였으면 하는 마음은 아니었을까.


시간이 지나자 아이가 고른 감정 카드에 변화가 생겼다. 아이가 그동안 고른 감정 카드는 '답답하다' '외롭다' '무섭다' '후회하다' '우울하다' 죄다 부정적인 감정이었다. 요 며칠 '편안하다' '신난다' '재미있다' 감정 카드를 골랐다. 처음에는 '자기가 안 했다' '그랬다고 치자며' 친구에게 위협한 행동을 인정하지 않았다. 감정 카드에 변화가 생겼을 때 '자기가 했는데 거짓말했다'며 미안한 마음을 표현했다.


최근 아이의 변화를 지켜보며 교육복지사의 역할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교육복지사는 아이들이 퍼붓는 비를 잠시 피할 수 있도록 우산이 되어주거나 우산을 준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부정적인 감정, 사건으로 부터 아이를 보호하고 스스로 극복하고 벗어날 수 있도록 돕는 일임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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