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따뜻한 관심과 애정, 안정적인 환경이 필요합니다.
퇴근 후면 아들이 잠들기 전까지 놀아주고 대부분 소파에 누워서 쉰다. 생산적인 활동을 하면 좋겠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다. 소파와 하나가 되는 시간이 내가 유일하게 쉬는 시간이다. 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잠시 나의 시선을 끈 프로그램이 있었다. EBS [다큐프라임-녹색 동물, 번식 편]이다. 잠시 보면서 어렸을 때가 떠올랐다. 나는 자연 관련 프로그램을 좋아했다. 그중에「퀴즈탐험 신비의 세계」는 항상 본방 사수했던 기억이 난다.
나도 한 명의 게스트가 되어 열심히 퀴즈를 맞췄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얼마나 감정이입이 되었던지 문제를 못 맞히기라도 할 때면 여느 게스트처럼 아쉬워하고 탄식했었다. 어느 순간부터 출제되는 문제가 쉬워졌고 맞추는 횟수가 늘었다. 그때 얼마나 즐겨봤는지 알만하지 않은가.
오늘 프로그램은 식물의 번식에 대한 내용이다. 식물에 따라 번식하는 방법이 다르다는 것에 새삼 놀랐다. "식물은 산불을 기다린다."는 표현이 적절했다. 번식을 위해 자이언트 세쿼이어는 3천 년 가까이를 살면서 불을 이용했다. 이 나무는 산불이 나야 비로소 씨앗을 퍼트린다. 산불의 위기 속에서 기회를 놓치지 않고 번식하는 모습이 신기했다. 7일 동안 이어지는 산불을 이겨냈다. 나무의 곳곳에 시커멓게 탄 흔적은 경이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민들레 씨앗이 왜 둥근 모양인지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사실 나는 왜 둥근 모양일까 지금까지는 관심이 없었다. 그냥 둥글겠지 생각했다. 둥근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 보고 나서 둥근 이유에 대해 알았다. 민들레 씨앗이 둥근 모양으로 노출되어야 바람이 어느 방향에서 불어도 씨앗이 사방으로 날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효과적인 번식을 위해 그렇다.
동의나물 꽃, 처음 보는 꽃이다. 주로 물가에서 서식하는 식물이다. 동의나물 번식 방법도 신기했다. 꽃이 진자리에서 씨방이 벌어지고 벌어진 오목한 씨방 안에 씨앗은 모두 하늘 위를 향해있었다. 동물이든 바람이든 꽃대를 넘어트리지 않으면 번식할 수 없는 구조였다. 그때 비가 주룩주룩 내리기 시작했고 비가 씨방에 맞으면서 그 충격으로 씨앗이 튕겨져 나갔다. 톡. 톡. 톡. 씨방에 벗어난 씨앗들은 물로 떨어져 물의 흐름에 따라 이동하다가 싹이 틀 자리를 잡았다.
제주도 해안가에 핀 문주란도 소개됐다. 이 꽃은 모든 꽃이 한 꽃대에서 핀다. 마치 꽃무릇의 생김새와 비슷하다. 흰색 꽃이 지면 씨방이 부풀어올라 호두알 정도 크기로 커진다. 씨방이 꽃대가 감당하기 어려운 크기로 커지고 이내 꽃대는 씨방 무개를 이기지 못하고 쓰러지고 만다. 쓰러진 꽃대에서 씨방은 떨어져 나가고 데굴데굴 바다로 굴러간다. 씨방은 부력이 있어 파도 따라 이동한다고 한다. 남쪽 나라에서 바다 건너 제주로까지 왔다는 말을 듣고 신기했다.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에는 우연이 없다. 일어나는 모든 일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오늘 식물의 번식에 관련 한 프로그램을 보면서 느낀 한 줄이다.
아이들이 하는 모든 행동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요즘 학생들을 만나면서 드는 생각이다. 학생들이 하는 모든 행동은 동기가 있다. 행동에 따른 옳고 그름의 판단은 다음 문제겠지만 어쨌든 아이들의 모든 행동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어른들의 성급한 판단과 비난, 무시, 단정짓고 강요하는 태도, 무관심, 과도한 행동, 억압은 오히려 부정적인 행동을 부추기거나 강화를 시켰다.
사실 어른들도 과거 경험, 경험에 대한 감정, 과거에 대한 기억이 흐려지고 왜곡되었을 뿐 과거에 자녀나 아이들이 겪었던 비슷한 문제로 괴로워하고 고통스러워했다. 어른과 아이가 다른 점은 그 과정을 겪고 어느 정도 극복한 상태의 정도 차이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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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유독 자신 몸에 상처를 가하는 학생들이 많아졌다. 이런 일로 선생님들과 대화를 하면 자해에 대한 어른들의 태도를 엿볼 수 있다. 물론 모든 어른이 그렇지는 않지만 상당히 많은 어른들의 시선은 아이 탓, 그렇게 키운 부모 탓에 머물고 있다. "친구 따라 하는 것"이라는 표현, 유행처럼 번지는 파급효과도 있겠지만 호기심에 하는 아이들이 얼마나 될까. 아이들은 어떠한 이유로든 몸과 마음이 아파서 그런 행동을 한다.
우리 사회는 부모로부터 따뜻한 애정을 느끼거나 적절한 책임, 한계를 느낄 기회가 점점 줄고 있다. 부모는 먹고사는 문제로 일터에 나가기 바쁘다. 자연스럽게 부모-자녀 관계, 부모의 훈육 기능이 약화되고 부모로부터 받아야 할 애정과 관심, 책임을 지역사회 기관이나 타인에게 떠넘기는 경우가 늘고 있다.(아이를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사회가 중요하다. 단순히 돈을 더 쥐어주는 수준에서 머물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뿐인가 치열한 경쟁에 성적으로 평가하는 학교 현장은 학교 안에 있어야 할 이유를 스스로 포기하게 만든다.
많은 아이들이 가정이나 학교, 더 나아가 사회에서 설 자리를 잃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청소년 시기에는 과거의 사건과 경험으로 우울해하고 불확실한 미래로 불안해한다. 충동적이고 감정적인 이 시기에 건강한 성장을 위해 안정적은 관계가 필요하다. 아이들에게 건강한 어른이 필요하다. 따뜻한 관심, 애정이 담긴 수용을 할 수 있도록 부모 역할을 대신 하기보다 아이들에게 부모를 돌려주면 어떨까 그런 부모로 성장시키기 위해 사회가 힘쓰면 어떨까 아이들에 맞는 눈높이에서 먼저 손을 내밀어주면 어떨까. 적어도 부모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