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아 엄마를 돌려줘!'
속마음은 '나 돌아갈래' 영화 박하사탕의 절규처럼 부르짖는다. 하지만 돌아갈 수 없는 현실. 요즘 아내의 살갗이 그립다. 아내와 잠자리를 같이 한지가 언제인지 기억나질 않는다. 그냥 까마득하다. 첫째가 태어났을 때는 그럭저럭 버텼다. 하지만 둘째부터 어쩌다 보니 각방은 아니더라도 아내와 따로따로 자고 있다.
이제는 잠을 자는 곳과 잠을 깨는 자리가 다르다. 보통 둘째 옆에서 잔다. 하지만 첫째가 새벽에 깨서 '아빠 내 옆에서 잔다고 했잖아!' 잠이 덜 깬 목소리로 칭얼거리면 어김없이 다음 날은 첫째 옆에서 눈을 뜬다. 가끔 첫째 옆에서 잠이 들 때면 둘째가 새벽에 뒤척이다가 졸린 눈을 비비며 '아빠, 아빠' 찾는다. 잠결에 '아빠' 둘째 목소리를 들으면 눈이 번쩍 떠진다. 비몽사몽 둘째를 토닥이다 옆에 누워 잠든다. 오늘은 첫째 옆에서 잤는데 아침에 눈을 떠보니 셋째 옆에서 움츠리고 자고 있었다. 아무래도 피곤하고 허리가 아픈 이유 같다.
아내는 본의 아니게 거실에서 잔다. 보통 남편이 거실에 자는데 이유가 있다. 셋째 임신 때 소변이 자주 마려워서 새벽에 깨 화장실을 가야 했다. 화장실 갈 때 아이들 깨우지 않고 편히 가기 위해 거실에서 잔 것이다. 지금은 뒤척이는 아이들 때문에 조금이라도 편히 자라고 거실에서 자라고 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졌다.
이대로 계속 아이들과 잘 수 없다. 언제쯤 아이들 수면 독립을 시킬 수 있을까. 만약 각 방에 아이들을 재울 수 있다면 아무래도 방 네 개가 있는 지금보다 큰 집으로 이사 갈 때가 아닐지. 이거 참 오랜 독수공방의 삶을 끝내기 위해 넓은 평수로 이사 가야겠군.
이사 가기 전에 일단 정관수술부터 해야겠다. 언제까지 '수술하려고' 말로 때울 수 없다. 수술부터 하라는 아내의 말이 맞다. 진짜 수술부터 해야 한다. 그것은 아내에 대한 배려이기에 잔말 말고 아내의 뜻을 따라야 한다. 그래야 아내가 살갗만 닿아도 소스라치게 놀라지 않겠지.
문제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의 심정이랄까. 몇 년째 마음의 준비만 하는 내가 웃긴다.
애들아! 언제쯤 수면 독립할래?
네가 여섯살은 되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