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첫째가 여섯 살이 됐다. 부쩍 자란 아들. 벌써 자전거를 탈 나이가 됐나 보다. 어느 날 아들이 아내에게 자전거를 사달라고 했다. 생각해보면 작년부터 아들은 자전거를 타고 싶어 했다. 언젠가 유치원에서 세발자전거를 탔다며 이제는 자전거를 탈 수 있다고 자랑했었다.
몇 주전부터 아들은 자전거를 타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다. 아무래도 아들이 운동장에 삼삼오오 모여서 자전거를 타는 형들을 보고 부러웠던 모양이다. 무엇보다 옆 집에 세워진 자전거가 한몫 거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아들 자전거를 샀다. 하원 하는 길, 아들이 차에 타자마자 '오늘 엄마가 자전거 사 준댔어, 빨리 자전거를 봤으면 좋겠어'라고 한껏 기대에 부풀어 흥분했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결국 첫째는 둘째가 기저귀를 뗀 것처럼 킥보드를 뗐다. 킥보드보다 자전거 타는 것에 재미를 붙였다. 세 살 때부터 함께 타던 킥보드, 이제는 그마저 혼자 타려고 한다. 가끔 둘째를 킥보드에 태우면 경쟁하듯 자기도 태워달라고 하지만 잠시뿐이다. 언제 컸나 싶을 정도로 '내가 할게' 아빠 도움은 당차게 거절하는 아이가 됐다.
가끔 자전거를 타다가 오르막길을 오를 때 힘에 부쳐 짜증 내지만 그렇다고 자전거 타기를 그만두지 않는다. '보조 바퀴는 언제 떼냐며' 우쭐해하는 모습에서 스스로 하려는 아들의 강한 의지를 엿본다. 자전거를 신나게 타는 아들을 보면 그렇게도 좋을까 싶다. 지금은 보조 바퀴를 달아야지만 킥보드를 뗀 것처럼 곧 떼겠지 싶다. 날로 부쩍 크는 아이 모습에 놀랍고 어리둥절하다. 이러다가 초등학교 입학 통지서를 받을 날이 곧 오겠다.
사실 자전거를 보면 어릴 적 모습이 떠오른다. 상처다. 아들과 비슷한 나이에 자전거를 가지고 싶었다. 어렵게 아버지에게 용기를 내 자전거를 사달라고 말을 꺼냈지만 아버지는 위험하다는 이유로 단번에 거절했다. 차가운 아버지 반응과 되레 사고 난다며 야단만 맞아 어린 마음에 상처가 됐다.
돌이켜보면 아버지는 예민하고 신경질적인 분이었다. 스스로 결정하는 경험보다 당신 기준에 벗어나면 혼내고 다그쳤다. 어린 시절 한 번 아니면 끝까지 아니었다. 냉소적인 아버지 반응에 분노했었고 '어차피 안 들어줄 텐데' 하는 마음에 점점 입을 닫았다.
결국 풀지 못한 욕구는 잘못된 행동으로 이어졌다. 국민학교 5학년 때 처음으로 다른 사람 물건에 손을 댔다. 자전거는 가지고 싶고 아버지에게 사달라고 하면 혼날 것 같은 생각에 일을 저질렀다. 달리 다른 방법이 없었다. 나름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동네 버려진 자전거를 주워오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동네에서 녹이 슨 자전거가 세워진 것을 발견하고 마음 졸이며 가져왔다. 솔직히 버려진 것인지 확인하지 않았으니 훔쳤다는 말이 맞겠다. 집으로 자전거를 끌고 와 친구가 줬다며 부모님에게 거짓말했다. 그 당시에는 자전거가 생겼단 이유로 신나게 타고 다녔으니 철없었다.
첫째는 어려서부터 붙임성이 좋았다. 동네 어르신들을 보면 반갑게 인사를 했다. 어르신이 쉬고 있는 정자에 달려가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고 다시 돌아오곤 했다. 그때까지는 '품 안의 자식'이라고 별 느낌을 없었다.
하지만 어린이집을 다니면서 친구가 생기고, 아침 등원 길에 '선생님 사랑해요'라고 색종이에 편지를 써달라고 할 때 조금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동네 형, 누나들과 시간 보내는 것을 좋아하는 아들을 보면서 조금씩 울타리 밖으로 나가려는 아들을 마주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품 안에서 떠나는 아들과 이별 중이다.
요즘 어떻게 하면 품 안의 자식을 잘 떠나보낼까 고민이다. 아이가 크면서 숙제가 생긴 것이다. 어쩌면 이미 답을 알고 있을지 모른다. 어린 시절 상처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우리 아빠가 이런 아빠'였으면 좋겠다는 모습에서 좋은 부모란.
어릴 때 칭찬보다 비난하는 아버지를 원망하며 나의 선택을 믿고 지켜봐 주길, 꾸중하고 다그치는 대신 생각할 시간을 주길,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기도했다.
아버지의 그림자일까. 세 가지 중에 꾸중하고 다그치는 대신 생각할 시간을 주는 것이 가장 어렵다. 아무리 눈꼴사나워도 '기다리자' 생각하지만 감정이 생각을 따라가지 못한다. 요즘 아들에게 하는 말과 행동을 보고 문뜩 아버지 모습이 오버랩된다. 그때마다 쥐구멍이라도 찾아 숨고 싶을 만큼 부끄럽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감정적으로 반응하고 행동하지 않을까. 아이들이 나처럼 어린 시절 아픔에서 머무는 어른으로 크지 않았으면 좋겠다. 조급해하지 말고 진짜 눈 질끈 감고 딱 한 발자국만 물러나고 3초만 기다려보자. 올라오는 감정을 알아차리고 심호흡을 하자. 평정심을 잃지 말자.
오늘도 반성해본다. 훗날 아이들 커서 '아버지'를 떠올렸을 때 행복하길 바라며.
둘째는 원래 빠른 것일까, 벌써 '내가 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