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순창으로 떠났다. 순창 예향천리 마실길에서 섬진강을 따라 자전거를 탈 생각이었다. 알뜰히 둘째 킥보드도 챙겼다. 하지만 아이 셋을 챙기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챙길 짐이 너무 많다. 이것저것 챙기고 나갈 준비를 하니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앗 분명 아침부터 준비했는데 도착하면 점심때다. 이런 가장 뜨거울 때 자전거를 타게 생겼다.
어쩔 수 없이 장소를 바꿔 순창 향가터널로 갔다. 터널 안은 에어컨을 튼 것 마냥 시원했다. 은행인 줄. 따갑게 내리쬐은 가을볕을 피하기 딱 좋았다. 두 아들과 터널 양쪽 입구를 왔다 갔다 하며 킥보드를 탔다. 그러다가 입구 쪽에 일본군의 모형이 재현되어 있는 것을 보고 향가터널이 일제강점기에 쌀을 수탈하기 위해 만든 터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들과 마냥 웃으면서 킥보드를 탈 수 없었다. 따갑게 내리쬐은 가을볕을 잠깐 피하고 점심 먹으러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점심은 콩비지찌개를 먹으려고 했다. 메뉴를 고르다가 갑자기 할머니 손맛이 그리워졌나. '점심은 뭐 먹지' 순창 맛집을 한참 검색하다가 콩비지찌개를 보고 단번에 결정했다. 가게가 차도 못 들어가는 골목길 안쪽에 있었다. 다른 골목에 차를 정차하고 가게가 열었는지 아들과 뛰어갔다 왔다. 골목길 공사하는 모습을 보고 왜 불길한 예감은 비켜가지 않는지,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 자체 임시휴일이었다. 앗 내 콩비지찌개.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아들과 함께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그때부터 살짝 멘붕. 그 뒤로 뭐 먹을지 못 고르겠더라. 아내와 뭐 먹을지 고민하다가 아내가 아들에게 '뭐 먹고 싶어?' 물었다. 아들이 한치의 고민도 없이 고구마 치즈 돈가스. 그래 돈가스 먹으러 가자.
점심을 먹고 정읍사공원으로 갔다. 정읍천에서 빛 축제를 한다고 해서 집에 가기 전에 들르기로 했다.
정읍사공원 안 아양사랑숲에 놀이터가 있다. 이곳은 작년부터 아이들을 데리고 갔던 곳이다. 지금까지 다녀본 숲 속 놀이터 중에 단연 최고. 아들이 제일 좋아하는 그물 놀이터에서 한 시간 놀았다.
그물 놀이터에서 둘째의 진면목을 볼 수 있었다. 다섯 살 때 무서워서 그물에 올라가지 못했던 첫째와 달리 세 살 둘째는 처음에는 망설이더니 성큼성큼 거침없이 그물에 올라섰다. 겁이 없는 건지 생각이 없는 건지 아찔한 높이까지 서슴없이 올라 형 누나들과 섞여 신나게 놀았다. 형이 하면 무조건 따라 하는 탓에 형들을 따라 구멍으로 내려온다고 키도 안 닿는데 매달려 있다가 결국 아래로 떨어졌다. 나만 식겁, 나보다 더 놀랐을 둘째는 울지도 않았다. 참 너란 녀석, 둘째는 알다가도 모르겠다.
그새 어둑어둑 땅거미가 졌다. 차를 타고 3분 거리인 빛 축제를 하고 있는 정읍천 달하다리로 갔다.
달하다리에서 내려다보이는 LED 꽃잔디 물결이 이뻤다. 형형색색 화려한 조명과 다양한 조명 포토존이 많아 사진 찍기 좋았다. 아이들도 좋아했다. 셋째가 빛나는 조명을 보고 품 안에서 까르르 웃었다. 사실 제일 신났다. 첫째는 하루 종일 걸어서 피곤했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집에 가자고 칭얼거렸다. 둘째는 여전히 쌩쌩. 살짝 불안했다.
여행의 종착지는 빠른 육퇴였기 때문이다. '집 밖에서 10시간 동안 하얗게 불태웠으니 일찍 자줄 거지?' 간절한 심정으로 기대했다. 사실 숲 놀이터에서 엄마로 보이는 사람이 신나게 노는 아이에게 하소연하는 모습을 봤다. 누가 봐도 집에 갈 생각이 없어 보이는 아이에게 엄마는 집에 가자고 사정했다. 엄마가 8시간을 집 밖에서 놀았으니 가야 하지 않냐며 아이에게 재촉하는데 엄마의 간절한 모습을 보고 진짜 뭔가 짠하고 공감되더라. 하하.
잠든 시간이 애매해 서둘러서 집으로 출발했다. 아니나 다를까 집으로 가는 길 셋째가 잠들었다. 솔직히 셋째가 차에서 자면서 재충전할 것 같아 불안했다. 집에 도착하면 잠에서 깨 쌩쌩할 것 같았다.
두 아들은 잠들지 않게 아내가 계속 말을 걸었다. 서둘러서 도착한 시간 저녁 9시. 현관문 열자마자 후다닥 화장실로 들어가 두 아들을 씻기고 안방에 함께 누웠다. 의외로 둘째가 10분 만에 잠들었다. 둘째가 잠든 것을 보고 어찌나 기분이 좋던지. 곧 육퇴 하리라.
셋째가 복병일 줄이야. 장난감 만지는 소리가 거실에 울렸다. 차에서 자면서 재충전한 것이다. 평소보다 두 아들이 빨리 잠들어 기뻐했는데 기쁨도 잠시 좌절했다. 좀처럼 잠들지 않는 셋째를 품 안에서 흔들흔들. 자장가를 부르며 재우기 위해 온갖 방법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결국 육퇴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지쳐 아이와 함께 잠들어버렸다. 아!!! 소중한 육퇴여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