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딸은 13개월이 조금 지났다.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란다. 기어 다니던 아이가 어느 순간 아기 의자 등받이를 잡고 뒤뚱뒤뚱 곧잘 걷기 시작했다. 위태롭게 걷기 때문에 보기 좀 우스꽝스럽다. 그래도 넘어지지 않고 아기 의자를 질질 끌며 잘도 걷는다. 아기 의자를 보행기처럼 사용하는 것을 보아하니 진짜 곧 걸으리라.
막내는 "엄마"보다 먼저 "까까"라고 목놓아 부르고 "맘마"라고 소리 질렀다. 하루라도 빨리 "아빠"라는 말을 듣고 싶었다. 매일 퇴근하자마자 아이 귀에 대고 "아빠", 눈을 맞추고 "아빠". 나의 존재를 알렸다.
그러던 어느 날 나를 보더니 발음이 뭉개지며 "아~~ 빠!"라고 불렀다. 투박한 목소리로 "아~~ 빠!"라고 악을 섰다. 처음 "아빠"라고 부르던 날, 그 감격은 여전히 잊지 못한다.
며칠 전 갑자기 아이가 아팠다. 5일 동안 미열과 고열을 오르락내리락했다. 아픈 내내 눈이 퀭하고 흐리멍덩했다. 게슴츠레 반쯤 감긴 초점 없는 눈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고열이어도 컨디션은 좋았다. 잘 먹고 잘 놀아서 조금은 안심했다. 이미 두 아들을 키우면서 고열은 병원에도 별다른 처방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의사 선생님도 컨디션만 좋으면 괜찮다고 했었다. 사실 고열에는 시간에 맞춰 해열제를 먹이고 미지근한 물로 몸을 닦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38.4도. 체온계의 빨간불에도 놀라지 않았다. 차분한 말투로 아내에게 열난다고 말하고 해열제를 먹였다. 바로 미지근한 물을 떠다가 가제 손수건으로 아이의 이마와 목덜미를 닦았다. 아내가 겨드랑이와 사타구니만 잘 닦아도 금방 체온이 내려간다고 했다. 바로 기저귀를 벗기고 열이 내릴 때까지 몸을 닦았다.
아프고 난 다음 큰다는 말이 있다. 사실 열이 난 그날, 재울 때까지 아무 이상 없었던 터라 조금은 당황했었다. 하지만 크려나 보다 생각했다.
다행히 5일 만에 말끔히 나았다. 하지만 이건 웬걸, 아픈 뒤로 컸다기보다 더 아기가 된 느낌이다. 당혹스러운 것은 나를 보고 "엄마"라고 부른다. 제2의 엄마라고 생각하는지, "아빠" 단어를 잊었는지 잘 놀다가도 눈에 안 보이면 칭얼거린다. 꽁무니를 따라다니며 앙~앙~ 거린다. 두 팔 벌러 안아달라고 바짓가랑이에서 보챈다.
드러눕는 것은 또 어디에서 배웠는지. 이제 돌 지난 아이가, 그것도 이쁜 공주님이... 벌러덩 누워 발을 쿵쿵 구르면서 우는 소리를 하는데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첫째와 둘째는 그러지 않아 더 당혹스럽다는. 자신의 요구를 강하게 어필하는 것을 보면 위로 오빠가 둘이나 있어서 그런가 보다. 선머슴처럼 크면 어쩌지.
이젠 안고 있다가 바닥에 내려놓으면 난리다. 계속 안아 달라고 한다. 땅에 엉덩이가 닿으면 눈물 스위치가 켜지는지 앉은 채 다리로만 바닥을 짚어 기어 온다. 어떻게 묘사해야 할지 모르겠다. 기어 오는 모습이 어찌나 괴기한지 흉내도 못 내겠다. 누가 봐도 봐도 거짓 울음이다. 영혼 없는 울음소리로 안을 때까지 드러누워 한쪽 다리로 바닥을 쿵쿵. 뒹굴뒹굴.
누워 있으면 배에 올라타 앉아서 위아래로 쿵쿵 구른다. 까르르 웃으며 장난치길 좋아한다. 유독 무릎 맡에 누워 치대는 것을 좋아하는데 퇴근하고 바로 자기를 안아 올리지 않으면 안을 때까지 소리 지르며 부른다. 오빠가 둘이나 있어서 그런지 몸으로 노는 것을 좋아한다. 둘째와 셋째를 함께 안고 있으면 첫째가 등에 매달린다. 하하. 그 덕에 팔이 떨어지게 생겼다. 지금까지 허리가 멀쩡한 게 신기할 정도다.
애들아, 절대 성가신 게 아냐! 지금처럼 질척대도 좋으니 오랫동안 아빠의 껌딱지가 되어다오.
사실 껌딱지는 두 명이 더 있습니다. 다음 글은 둘째 껌딱지를 소개하겠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