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 만큼, 사랑한 만큼 크는 아이

by hohoi파파

퇴근을 하고 첫째를 데리러 유치원에 가는 길이었다. '부르르'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오늘 애들 데리고 저녁 늦게 들어갈 테니 유호랑 데이트해!" 아무래도 첫째와 오붓한 시간을 보내라는 배려 같다. 관계 회복을 위해 강제 데이트일 수도.


며칠 전 첫째를 유치원에 데려다주는 길에 '여수 좋았지' 신이 난 표정으로 아들이 말했다. 작년 여름, 첫째와 단둘이 1박 2일 여수 여행을 갔었는데 아무래도 그때 기억이 좋았나 보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예전처럼 아빠와 좋았으면 좋겠다는 말처럼 들려 갑자기 울컥,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일렁였다.


아들에게 '아빠하고 하고 싶은 게 뭐야?' 물었다. 아들이 한참을 곰곰이 생각하더니 동물원에 가자고 했다. 이미 날이 저물었고 오후 5시 이후면 입장이 되지 않아 갈 수 없었다. 차근차근 갈 수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아들에게 '다른 거 말해봐?' 아들이 '음...' 한동안 뜸 들이더니 '앵무새 박물관' 아~ 속으로 지금 당잘 할 수 없는 것만 말하는지, 하고 싶은 거 다 말해봐 다 들어줄 것처럼 물어봤다가 안된다고 거절하는 모양새가 됐다.


아들과 함께 지금 당장 갈 수 있는 곳을 찾고 하고 싶은 일을 정했다.


'한옥마을 갈까?'

'서점 갈래?'

'강아지 보러 가자'

'그럼 저녁은 뭐 먹고 싶어?'

아들이 자기는 서점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며 서점에 가자고 했다. 바로 교보문고로 차를 돌렸다. 교보문고로 가는 길에 돈가스 집이 보였다. 좀 전에 치킨마요가 먹고 싶다는 아들이 지나가다가 돈가스에 관심을 보였다. 가게에 들어갔다. 마침 치킨마요도 팔았다. '유호야! 치킨마요 먹을래? 돈가스 먹을래?' 아이가 메뉴를 고를 수 있게 메뉴표를 보여주고 물었다. 아들은 고구마 치즈 돈가스를 골랐다. 어쩜 이렇게 개성이 확실해.


교보문고에서 한참을 구경하다가 아들이 배고프다고 해서 저녁 먹으러 다시 돈가스 가게로 갔다. 오랜만에 아들과 마주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저녁을 먹었던 것 같다. 집에서 느낄 수 없는 편안함을 느꼈다. 둘째와 셋째가 바짓가랑이 붙들며 달려드는 식사시간에서 벗어난 자유함, 첫째도 느꼈으리라.

서은국 저자 [행복의 기원] 책 마지막에 나오는 사진이 떠오른다. "행복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다." 서은국 저자는 좋은 사람과 즐겁게 먹는 식사에서 행복감을 느낀다고 했다. 아들 역시 나와 먹은 저녁 식사에서 행복감을 느꼈으면 좋겠다. 세 아이를 키우면서 정신없었던 요즘, 잊고 있던 행복감을 오랜만에 느꼈다. 오랜만에 첫째 단둘이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처음 아이를 가지고 분만실에서 내 품에 안기까지 '건강하게만 커다오!' 했던 마음을 다시 기억하고 꺼내본다. 첫째가 커갈수록 함께 커지는 욕심과 기대감 때문에 자꾸 다그치고 혼낸 것은 아니었는지 반성한다. 부모는 왜 그토록 아이의 있는 모습 그대로 보지 못할까. 존재만으로 아름답고 고마운 것을. 믿는 만큼, 사랑한 만큼 큰다는 말을 다시 잊지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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