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밑장 빼다 손모가지 날아갈 뻔

by hohoi파파

매일 밤 아이들을 재우기 전에 하는 일이 있다. 수면 의식을 치른다. 방에 불을 끄고 핸드폰 손전등이나 헤드 랜턴을 켜고 이부자리에 나란히 누워 책을 읽어 준다. 혹여나 눈 나빠질까 봐 요즘은 다 읽고 불을 끄고 있다. 사실 책 읽기 루틴으로 규칙적인 생활습관이 생겨 좋다고 하지만 이른 육퇴를 할 수 있어 더 좋다.


저녁 8시쯤 되면 아내와 나는 마음이 바빠진다. 쉬고 싶은 마음에 수면 의식을 서두른다. 아이 셋을 차례로 양치질시킨다. 재빨리 이부자리를 펴고 잘 준비를 마친다. 아내와 나는 각각 아이들을 데리고 방에 들어간다. 첫째와 둘째는 안방에서, 막내는 작은 방에서 재운다. 막내가 울고불고 엄마를 찾고 난 후로부터는 계속 둘째를 재우고 있다. 솔직히 아내와 번갈아가면서 아이들을 재울 때가 좋았다. 금방 잠드는 막내가 그립다.

가장 읽고 싶은 책, 3권씩 가져와요.


아이들에게 3권씩 읽고 싶은 책을 가져오라고 한다. 더 읽어 달라고 네다섯 권씩 가져오지만 얄짤없다. 권 수를 정해주지 않으면 한도 끝도 없이 책을 읽어줘야 한다. 스트레스받지 않기 위한 고육지책, 어쩔 수 없다. 다 읽으면 30분~40분. 유치원에서 낮잠을 자지 않는 첫째는 책을 읽어주는 사이에 잠들지만 어린이집에서 낮잠 자는 둘째는 바로 자는 일이 없다. 요 며칠 계속 둘째만 재웠더니 예민해졌다.


"아빠 또 읽어줘!"

"아빠 라인 프렌즈 틀어줘!"


보채는 둘째에게 하는 수 없이 "세 개만 더 듣자"라고 말하고 유튜브에 라인 프렌즈를 검색해 오디오 동화를 틀어줬다. 요즘 둘째와 쓸데없이 실랑이를 벌이는 이유다. 한 번 틀어주면 네다섯 개는 족히 듣는다. 자는데 1시간은 족히 더 걸린다. 오디오 동화를 틀어주다가 잠을 이기지 못하고 아들보다 먼저 잠들고 마는데...

다음 이미지
잘 가요. 육퇴여!!!!!!!!!!!!!!!!!!!!!!!


문득 개그맨 김수용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재미없게 책 읽어 줬더니 그 뒤로 딸이 책 읽어 달라는 소리를 안 한다고. [라디오 스타]를 보면서 어찌나 공감되던지 무덤덤하게 말하는 모습을 보고 배꼽 잡고 웃었던 기억이 났다. 가끔은 드라마를 보면서 맥주 한 캔 마실 생각에 빨리 재우려고 대충 읽게 되더라.


어느 날 둘째가 책 다섯 권을 가자고 왔다. 컨디션 좋은 둘째를 보고 "아~ 오늘 쉽지 않겠는데" 눈을 질끈 감았다. 딱 봐도 둘째는 잘 생각이 없다. 아직 팔팔했다. 둘째는 피곤한 기색 없이 범퍼 침대에 누웠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읽어주기 위해 책 다섯 권을 배 위에 올려놨다. 한 권을 다 읽고 한쪽으로 치웠다. 이때다 싶어 읽지 않은 책 한 권을 밑에 껴서 재빠르게 내려놨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곁눈질로 아들 눈치를 살폈다. 아들이 누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한마디 한다. "그 책 안 읽었어!" 아들의 말을 듣고 아귀의 명대사가 떠올라 빵 터졌다.


"동작 그만 밑장 빼기냐?"

"내가 빙다리 핫바지로 보이냐?"



아들의 말 한마디에 가슴이 서늘했다. 하마터면 손모가지 날아갈 뻔했다. 둘째는 다른 책에 포개진 안 읽었던 책을 기어코 찾아냈다. 이대로 빠른 육퇴를 포기할 수 없었다. 문장과 내용을 눈치 안 채게 간추려서 읽었다. 눈치 빠른 둘째가 무섭게 한마디 한다.


'거기 아닌데!'


결국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육퇴만 늦어졌다. 오디오 동화를 들으면서 오만 가지 생각으로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그냥 제대로 읽을 걸 후회했다. 오늘도 일찍 자긴 글렀구나.


책을 좋아하는 아이들에게 책 한 권 더 읽어주지 못하는 못난 아빠의 일기였습니다. 잠자리에서 책 읽어 줄 날도 머지않겠죠? 읽어 달라고 할 때 부지런히 읽어줘야겠지요? 하하.



keyword
작가의 이전글언젠간 킥보드도 혼자 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