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마 유키오, <봄눈>
미시마 유키오는 나에게 불량식품 같은 작가이다. 굳이 먹지 않아도 되고, 먹어서 좋을 것도 없는데 너무나 맛있어서 자꾸만 손이 가는 그런 불량식품. 먹을 땐 그 맛에 탐닉하느라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지만, 먹고 나면 어쩐지 공허한 기분이 드는 그런 불량식품. 그럼에도 다음에 또 먹고야 마는, 아니 기어이 먹을 수밖에 없는 그런 불량식품. <금각사>를 비롯해 <가면의 고백>, <파도 소리> 등 잘 알려진 작품은 물론, <사랑의 갈증>, <비틀거리는 여인> 등 덜 유명한 작품까지 국내에 출간된 미시마 유키오 작품은 다 읽었다. 그러고도 부족해서 미시마 유키오의 다른 작품이 출간되기를 늘 바랐다. 이렇게 매혹적인 불량식품이 또 있을까. 그런 중 <봄눈>, 그러니까 ‘풍요의 바다’ 1부에 해당하는 이 작품의 출간 소식은 가슴을 설레게 할 정도였다.
미시마 유키오는 일찍이 “‘풍요의 바다’를 읽으면 나에 대한 모든 것을 알 수 있다.”라고 말했다. 게다가 그는 ‘풍요의 바다’ 마지막 권인 <천인오쇠(天人五衰)>를 탈고한 날, 그 유명한 할복자살로 삶을 마감했다. 여러 가지로 궁금한 작품이 아닐 수 없다. ‘풍요의 바다’ 4부작은 <봄눈>을 시작으로 <달리는 말>, <새벽의 사원>, <천인오쇠(天人五衰)>로 이어지는데 저마다 시대 배경과 공간을 달리하는 독립된 이야기로, <봄눈> 말미에 미시마 유키오는 “‘풍요의 바다’는 <하마마쓰 중납언 이야기>를 전거로 삼아 꿈과 전생을 다룬 이야기”라고 쓰고 있다. 대략 이 4부작의 배경이 되는 시기는 메이지 시대 말기인 1910년에서 미시마 유키오의 죽음(1970) 이후인 1975년까지를 그리고 있다. 작가 스스로 ‘나에 대한 모든 것을 알 수 있다’ 이야기한 이 대작은 과연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까.
<봄눈>의 줄거리는 어찌 보면 간단하다. 메이지 시대가 끝나고 다이쇼 시대가 시작된 1912년, 14만평에 이르는 대저택의 주인인 마쓰가에 후작의 외아들 기요아키와 아야쿠라 백작의 딸 사토코와의 ‘이룰 수 없는’ 사랑을 그리고 있다. 그런데 ‘이 이룰 수 없는 사랑’이라는 설정이 조금 특이하다. 처음부터 불가능한 사랑이 아니라 기요아키 스스로 금기를 설정하고 그 금기에 제 한 몸을 불사르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기요아키의 특이한 성정도 한몫한다. ‘아름다운 용모, 우아함, 우유부단한 성격, 소박함의 결여, 노력의 방기, 몽상가다운 심성, 근사한 외양, 유연한 젊음, 상처 받기 쉬운 피부, 꿈꾸는 듯한 긴 속눈썹’ 등등 빼어난 미모로 주위의 선망을 받는 기요아키는 모든 것에 무관심하다. 자기 외에는 그 누구에게도 관심을 두지 않는 탐미적 몽상가로, 어린 시절 함께 자란 사토코가 자기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외면한다. 그 이유는 오직 하나, 사토코가 자기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기요아키는 ‘자신을 사랑해 주는 인간을 깔보고, 깔볼 뿐 아니라 냉혹하게 취급하는’ 좋지 않은 성향을 지녔는데, 기요아키의 유일한 친구인 혼다는 그의 ‘이러한 종류의 오만함은 열세 살의 기요아키가 자신의 아름다움에 보내는 사람들의 갈채를 알게 된 때부터 마음 깊은 곳에서 은밀하게 길러 온 곰팡이 같은 감정’일 거라고 추측한다. 기요아키의 열세 살 때의 남다른 경험은 이 작품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그 무렵 궁중 신년 축하연에서 시동으로 불려 나가 황족 여성들의 옷자락 시중을 들던 어린 기요아키는 서른 살 안팎의 아름다운 가스가노미야 비(妃)의 새하얀 목덜미가 도드라진 옆얼굴이 한순간 눈에 들어오자 가벼운 현기증을 일으키며 걸음을 비틀거리는 실수를 한다. 그때 그것이야말로 눈이 멀 듯한 여인의 아름다움에 동경을 품은 그의 첫 번째 기억이며, 이 금기의 대상에 대한 강렬한 동경의 체험은 <봄눈>에서의 기요아키 전 생애를 지배하게 된다.
기요아키는 손쉽게 사토코를 자기 사람으로 둘 수도 있었다. 집안에서도 백작의 딸인 사토코를 좋게 보고 있었으며 당사자인 사토코 또한 기요아키를 사랑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그렇게 평범하고 손쉬운 것은 그에게는 아무런 매력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기요아키의 자유분방한 기질은, 자신을 좀먹는 불안을 스스로 증식시키는 성향도 함께 갖고’ 있었고 그렇기에 그는 ‘아름다운 꽃보다는 가시투성이의 음침한 꽃씨에 기꺼이 덤벼’들기를 선택한다. ‘기요아키는 어느새 그 씨앗에 물을 주고 싹을 틔워 마침내는 자기 안 가득히 그것이 번성하기를 기다리는 일 외에는 모든 관심을 잃어’버리고 ‘한눈도 팔지 않고 불안을’(43쪽) 키워나간다. 사토코가 천황이 칙허를 내린 황가의 정혼자가 되자(금기가 만들어지자) 기요아키는 사토코를 유혹해 금지된 관계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다. 이런 기요아키의 모습은 저 먼 옛날 <겐지모노가타리>의 겐지를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금기의 대상에 빠져들기를 멈추지 못하는, 아니 오히려 그러기를 기꺼이 선택하고 거기로 자신을 몰아가는 그들.
기요아키에게 환희를 안긴 것은 불가능이라는 관념이었다. 절대적 불가능. 사토코와 자신을 잇는 실이 예리한 날붙이로 끊어버린 거문고의 줄처럼, 솟구치는 단현(斷絃)의 비명을 지르며 칙허라는 빛나는 칼에 베여 버린 것이다. 그가 어린 시절 이후 오래도록 되풀이해 온 우유부단함 속에서 비밀스레 꿈꾸고 남몰래 바라 온 사태는 이런 것이었다. 옷자락일 들며 올려다본 봄의 흰 잔설 같던 비전하의 목덜미, 우뚝 솟은 채 접근을 거부하던 비길 데 없는 그 아름다움은 그가 품은 꿈의 발원지, 그가 지닌 바람의 성취를 똑똑히 예언하고 있었다. 절대적인 불가능성. 이것이야말로 더없이 뒤틀린 자신의 감정에 변함없이 충실해 온 기요아키가 스스로 초래한 사태였다. (235쪽)
스스로 금기를 만들어 그 금기를 범하고 도리를 어기는 기요아키. 그 우미(優美)한 손을 흙, 피, 땀 그 어떤 것으로도 더럽히지 않고 지켜내, 오직 감정만을 위해 쓰인 손을 지닌 기요아키. 무엇에든 유보적이며 그게 뭔지는 몰라도 “뭔가 결정적인 것”을 꿈꾸는 기요아키. ‘모독의 쾌락’을 즐기며 ‘쇠운’이라는 말과 ‘죽음’, 그것도 젊을 때의 죽음을 꿈꾸는 기요아키. 자신에게 단 하나 진실한 것, 방향도 귀결도 없는 오직 ‘감정’만을 위해 살아가는 일에 기꺼이 몸을 던진 기요아키. 권력으로도 돈으로도 상대가 안 되는 불가능한 상대를 고르고, 불가능하기 때문에 끌렸던 기요아키. 그런 불가능한 비극을 향해 맹렬히 나아가는 기요아키를 지켜보며 혼다는 ‘그건 아름다운 일이지. 하지만 창가를 스쳐 지나가는 새 그림자 같은 찰나의 아름다움을 위해, 인생이란 희생물을 바치도록 내버려 둬도 되는 걸까.’(268쪽)하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기요아키의 모습에서 미시마 유키오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의 모든 것을 엿볼 수 있다.
그는 바다의 조수와 기나긴 시간의 이행, 그리고 자신도 머지않아 늙으리라는 생각에 돌연 숨이 막혔다. 노년의 지혜 따위는 이제껏 한 번도 바란 적 없었다. 어떻게 하면 아직 젊을 때 죽을 수 있을까, 그것도 되도록 괴롭지 않게. 탁자 위에 아무렇게나 벗어던져둔 화려한 비단 기모노가 어느 틈에 어두운 바닥으로 흘러 떨어지는 것 같은, 그처럼 우아한 죽음. (162쪽)
<봄눈>은 뜻밖에도 기요아키와 혼다가 러일 전쟁 전사자 위령제 사진을 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금기의 사랑을 나누는 기요아키와 사토코의 이야기가 중심인데 왜 전쟁 사진을 보는 장면으로 시작한 것일까. 게다가 혼다는 훗날 기요아키와 사토코의 사랑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 러일 전쟁 사진을 떠올린다. ‘그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에 흙먼지로 뒤덮인 평야의 풍경이’ 겹쳐지는 것이다. 그때 혼다는 이렇게 말한다. 사실 혼다는 이 ‘풍요의 바다’ 4부작을 실질적으로 이끌어가는 관찰자이자 주인공이라 할 수 있기에 그의 이 말은 매우 의미심장하며, <봄눈>을 통해 미시마 유키오가 말하고자 했던 바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메이지 시대와 함께 웅대한 전쟁의 시대도 끝이 났지. 이젠 옛날이야기가 된 전쟁 이야기는 살아남은 감무와 부사관들의 시골 난롯가의 자랑거리로 전락해 버렸으니까. 이제 젊은이가 전장에 나가 전사하는 일은 많지 않을 거야. 하지만 행위로써는 전쟁이 끝난 대신 이젠 감정의 전쟁을 치르는 시대가 시작됐어. 둔감한 놈들은 보이지 않는 이 전쟁을 전혀 느낄 수 없을 테고, 그런 게 있다는 것조차 믿으려 들지 않을 거야. 그렇지만 이 전쟁은 분명히 시작됐고, 이 전쟁을 위해 특별히 선택된 젊은이들은 틀림없이 싸우기 시작했어. 넌 분명히 그중 하나고. 행위의 전쟁과 마찬가지로 감정의 전장에서도 역시 젊은이들이 전사해 간다고 생각해. 그게 아마도 널 대표로 하는 우리 시대의 운명이겠지. 그래서 넌 그 새로운 전쟁에서 전사하기로 각오를 굳힌 거야. 그렇지?”(263~264쪽) 행위로써의 전쟁 대신 감정의 전쟁을 치르는 시대. 이런 감정의 전쟁에서 기요아키는 전사하기로 각오한다. 봄눈처럼 덧없이 사라지고 말 사랑에 기꺼이 몸을 던진다. 아무리 찰나일지라도 그 덧없는 아름다움에 비할 것은 없기에.
혼다는 이 ‘풍요의 바다’를 관통하는 환생에 관한 생각도 의미 있게 밝힌다. “인간의 품는 모든 사상을 미망(迷妄)이라 생각한다면, 전생에서 현생으로 환생한 한 생명의 전생의 미망과 현생의 미망을 각각 식별해 낼 제삼의 견지가 필요합니다. 그 제삼의 견지에서만 환생을 증명할 수 있을 뿐, 다시 태어난 당사자에겐 모든 것이 영원한 수수께끼에 지나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그 제삼의 견지란 아마도 깨달음의 견지일 테니 환생이란 생각은 환생을 초탈한 인간만이 파악할 수 있겠지요. (....) 환생이란 건 우리가 생의 측면에서 죽음을 바라보는 것과 반대로, 그저 죽음의 측면에서 생을 바라본 것을 표현한 데 지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저 바라보는 방향이 바뀌었을 뿐인 겁니다.”(304~305쪽) 환생이란 우리가 생의 측면에서 죽음을 바라보는 것과 반대로 죽음의 측면에서 생을 바라본 것을 표현한 데 지나지 않을 거라는 말이 인상 깊다. 앞으로 2부, 3부, 4부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꽤 기대된다. 무엇보다 <봄눈>은 너무나 아름답다. 문장 하나하나가 아름다움 그 자체이다. 읽는 내내 절로 탄복하게 된다. 그 문장을 눈으로 삼키며 그 아름다움에 푹 빠지다 보면 어느새 마지막 장에 이르러 있다. 책을 덮고 나면 그 아름다움은 봄날의 눈처럼 덧없이 사라지고 말아 왠지 공허해지고 허기가 지지만 다음에도 또 그 아름다움에 기꺼이 빠지기를 바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