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어리

잠자냥의 5분 소설

by 잠자냥

H아파트 놀이터에 언제부터인가 한 여인이 보이기 시작했다. 여인은 거대했다. 놀이터 벤치 하나를 여인 홀로 다 차지하고도 모자랄 만큼 거, 대, 했, 다. 아침 8시 55분부터 9시 30분까지 언제나 여인은 그 벤치를 지켰다.


맨 처음 여인을 본 몇몇 아파트 주민들은 그 여인이 여자인지 남자인지 헷갈려했다. 거대하게 살이 찐 남자로 보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여인은 늘 터질 듯한 흰색 라운드 면 티셔츠에 꼭 그 윗도리처럼 또 그렇게 터질 듯한, 금세라도 살이 찢고 튀어나올 듯한 푸른 청바지 차림이었다. 그것은 아무래도 빅 사이즈 옷만 파는 가게에서도 가장 큰 사이즈일 게 틀림없었다.


주민들은 아침 출근, 그 바쁜 시간에 홀로 우두커니 벤치에 앉아 있는 그 여인을 처음에는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다. 다만 가끔 여인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이들이 있었으니, 간혹 놀이터에 놀러 나오는 꼬마들이었다. 하지만 그 조차도 드물었다. 꼬마들은 여인의 압도적인 덩치에 놀라 놀이터에 나왔다가 슬슬 뒷걸음질 쳐서 달아나기 바빴고 어떤 아이는 크게 놀라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여인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숨만 쉬며 앉아 있었다. 그럼에도 차츰 꼬마들이 놀이터에 가기를 꺼려하자 몇몇 주민들이 경비실에 불만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경비원들이 여인이 있을 시간 즈음 그 벤치를 찾았다.


그날도 여인은 우두커니 앉아 있을 뿐이었고, 경비원 황 씨는 뒷짐을 지고 가서는 여인에게 싫은 소리를 해댔다. 하지만 여인은 잘 들리지 않는지, 아니면 듣지 못하는 척하는 것인지 아무런 대꾸가 없었다.


“아무튼, 그러니까, 여긴 애들 놀이터니까 아이 없인 어른은 못 와요.”


바위처럼 아무 대꾸 없는 여인을 등 뒤에 놓고 황 씨는 돌아갔다.


“귓구멍도 살로 꽉 쳐 막혔나.....원....”


하지만 다음 날도, 다음 날도, 또 그다음 날도 여인은 계속 놀이터에 나타나서 그 벤치를 지켰다. 8시 55분부터, 9시 30분까지 늘 꼼짝 않고 그 자리를 지켰다. 황 씨의 잔소리도 점점 심해져만 갔다.


“아니. 이 사람이 대체 왜 그러는 거야. 여보쇼, 집이 어디요? 당신, 이 아파트 사람 아니지?”

“자꾸 이렇게 나타나면 경찰 부를 거요!”


그럼에도 여인은 우두커니 앉아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것은 여인의 몸이 점점 더 거대해져 갔다는 것이다. 황 씨가 잔소리, 협박, 회유를 할 때마다 여인은 날이 갈수록 커져만 갔다. 마침내는 벤치 하나로는 여인의 그 엉덩이를 감당할 수 없을 지경이 되었고, 멀리서 보면 벤치 다리가 땅속으로 조금 더 깊숙이 박혀버린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 또한 여인은 변함없이 벤치에 앉았고 황 씨가 또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그 순간 우지끈 벤치 다리 하나가 무너져 내렸다. 이에 황 씨는 기회를 잡았다 싶게 여인을 매섭게 몰아세웠다. 그럼에도 여인은 숨을 크게 들이마실 뿐 어떤 대꾸도, 미동도 없었다.


“이 벤치 물어내라고 벤치! 이 사람아! 살은 뒤룩뒤룩 쪄서 의자가 무너져라 쳐 먹고, 여자가 돼서 원.... 이게 소귀에 경 읽기여? 돼지 귀에 경 읽기여!”


황 씨는 침을 탁 뱉고는 뒤돌아섰다. 그때 여인의 몸이 풍선처럼 크게 부풀었음을 황 씨는 미처 몰랐다. 여인을 멀리서 지켜보던 한 꼬마. 열린 베란다 창문으로 지켜보던 어느 꼬마의 눈에 여인은 꼭 풍선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풍선은 점점 커져만 갔다. 온 힘을 다해 분 풍선껌처럼 위태롭게 부풀어 올랐다.


다음 날 황 씨는 제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인이 늘 앉던 벤치에는 여인의 옷가지가, 그 꼭껴서 터질 것만 같던 흰 티셔츠와 푸른 청바지가 갈가리 찢겨 뒹굴고 있을 뿐이었다. 풍선껌이 터져서 벤치에 엉겨 붙듯 옷가지만 널브러져 있었다.


“뭐여, 이게 대체…. 쨌든, 산더미 하나는 없어진 거 같구먼. 어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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