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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속 Dec 01. 2022

잊을 수 없는 떡볶이 코트

안녕? 찐따 소녀!

  학창 시절 나는 소위 찐따였다. 스스로를 찐따라고 표현한 데는 그동안 겪었던 일례의 사건들 때문인데 정말 찐따가 맞는지 같이 검증해보자.

  그 시작은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교복을 맞추면서였다. 잘 나가는 친구들은 하나같이 저고리처럼 교복 상의를 짧고 꽉 끼게 줄였는데 치마까지 달라붙는 미니스커트로 만들어 입었다. 그래서 걸음걸이가 우스웠는데 똥 마려운 사람이 괄약근을 조이며 엉거주춤 걷는 꼴이었다. 상의도 있는 대로 줄이다 보니 버스 손잡이를 잡을 땐 옆구리가 다 보였다. 왜 저렇게 기괴하고 불편하게 교복을 입을까. 이해가 되지 않아, 난 교복에 손을 전혀 대지 않았다.

  어느 날 친하다고 생각한 나영이가 다른 친구에게 나와 다니기 창피하단 소릴 했단 말을 전해 듣고 하늘이 노래졌다. 이제라도 교복을 줄여야 하나 고민했지만 무릎 아래까지 여유 있게 내려오는 긴치마와 널널한 상의 품이 참 편했다. 찐따 취급을 하든가 말든가. 고작 그런 이유로 내가 창피하다는 나영이가 나 역시 아쉽지 않았다.

  줄이지 않은 교복이 빛나는 순간도 있었는데 바로 조회시간이었다. 담임쌤은 하루가 멀다 하고 나를 불러일으켜 세웠다. 

"지속이처럼 교복은 이렇게 학생답게 입어야 돼. 야! 거기 뒤에 너 치마가 왜 이렇게 짧아!"

전교 일등 하던 내 짝꿍도 목에 리본은 하지 않았는데 나는 리본까지 매일 하고 다녔다. 이 정도면 광기에 가까웠다. 교복가게 마네킹이 입고 있던 그대로를 실착 했으니. 귀밑 3센티의 단발도 어김없이 지켰다. 차림새를 보면 세상 똑똑하고 단정한 모범생이었으나 정작 중요한 공부를 못했다. 그저 공부를 잘해 보이는 이미지를 즐겼던 것이다. 그랬다. 나는 모범생 코스프레를 학창 시절 내리 6년을 했다.

   그랬던 내가 유일하게 유행을 따라 하고 싶었으니 바로 빈폴의 떡볶이 코트였다. 학생다워 보이면서도 고급진 재질의 코트, 귀여운 단추 포인트까지 그 코트가 정말 입고 싶었다. 그 당시 40~50만 원의 비싼 가격이었는데 유행이라 많은 친구들이 입어 아빠에게 사달라고 말하니 110 사이즈 자신의 코트를 줄여 입으라고 진지하게 말하는 게 아닌가. 장난하나. 난 시위하듯 한겨울에 외투도 없이 학교에 가서 오들오들 떨다 대차게 감기에 걸렸다. 그제야 아빠가 코트를 사 입으라며 10만 원을 줬는데 택도 없이 부족한 꼬깃꼬깃한 만 원짜리를 든 채 울고 싶었다.

  아쉬운 대로 보세 옷가게에서 파는 떡볶이 코트를 사 입었는데 한 이틀 입으니 부직포 질감의 싸구려 코트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천을 아껴 만들어 앞섬을 여유 있게 가리지 못하니 떡볶이 단추가 벌어져 코트 사이로 칼바람이 들어왔다. 탄탄한 재질에 지퍼까지 있던 빈폴 코트와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보풀은 또 어찌나 지저분하게 생기는지 산지 한 달 된 새 코트가 의류수거함에서 막 꺼내 주워 입은 모양새였다. 에휴,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 누더기 코트를 중학교 시절 2년이나 입었으니 찐따로 낙인찍힐 수밖에.

  아직도 떡볶이 단추 사이로 시리게 불던 찬바람이 생생하기만 하다. 겨울이 다가오면 그 시절 그 소녀가 떠오른다. 지금 내 눈앞에 있다면 신상 구스다운 패딩을 입혀 목 끝까지 여며주고 꽉 한 번 안아줬을 텐데. 흘러내린 머리칼을 넘겨주며 지금 느끼는 감정이 먼 훗날 글을 쓰는 양분이 될 거라 귓가에 나지막이 속삭여줄 텐데. 

  그럼 그때의 찐따 소녀내게 옅은 미소를 지어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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