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지속 Feb 03. 2023

층간 소음의 말로

참을 걸 그랬나

  궁궐 같던 신혼집에 단 하나의 스트레스가 있었으니 바로 층간소음이었다. 9층엔 자매가 살았는데 발망치가 장난 아니었다. 온몸의 체중을 뒤꿈치로 모아 일부러 그런 소리를 내기도 어려울 텐데 윗집 아이들이 그 어려운 걸 해냈다. 아이도 없는 신혼, 게다가 직업도 없어 종일 집에서 시간을 보냈던 나는 신경쇠약에 걸릴 지경이었다. 쿵쿵쿵 거실에서 방으로, 방에서 화장실로 윗집 사람들의 이동경로를 꿰뚫는 것은 형벌처럼 고통스러웠다.

  고심 끝에 인터넷을 보니 곽두팔체로 '조현병으로 소음에 예민합니다. 밤은 깁니다' 같은 협박이나 우퍼 스피커로 "신문을 보지"  노래를 종일 틀어놓거나 화장실에서 고등어를 굽거나 담배를 태우라고. 그럼 애를 둔 윗집에 직빵이란 체험담들이 넘쳐났다. 진짜 미친 척 저 중 하나를 해볼까 했지만 일단 대화를 해보기로 했다.

  꽤 긴 망설임 끝에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들고 윗집 문을 두드렸다.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예쁘장한 여자 아이가 문을 열었고 어른이 있냐 묻자 없다고... 난 아이스크림을 주며 아랫집인데 조용히 해주길 부탁한다고 웃으며 말하고 집으로 내려왔다. 그러자 잠시 잠잠해졌고 나의 지혜롭고 평화로운 대처에 만족했다. 우아한 문제 해결은 생각보다 쉽다고 자만했는데  그 자만은 채 반나절을 넘기지 못했다. 저녁 8시쯤이 되자 또다시 천장에서 천둥이쳤다. 병히가 야근으로 늦는 날이었다. 지난 8개월의 고통이 쓰나미처럼 몰려오더니 겨우 붙잡고 있던 이성의 끈이 끊어지고 말았다. 경비실을 통하지도 않았다. 바로 윗집에 인터폰을 걸어 소리소리를 질렀다. 미친 여자처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곤 인터폰을 끊고 화를 삭이지 못하고 씩씩거리고 있는데 윗집여자가 거칠게 우리 집 벨을 눌렀다. 나는 너 잘 왔다. 이 여편네야. 오늘 너 죽고 나 살자란 마음으로 현관문을 벌컥 열었다.

아줌마도 화가 났는지 언성을 높였다. 나도 언성 하면 지지 않지. 복식호흡을 하며 냅다 내질렀다. 벌써 수년 전 일이라 대화내용이 다 기억나진 않지만 추잡스러웠다.

  아줌마는 그렇게 층간소음이 시끄러우면 주택에 살라고. 너 전세야? 나는 자가라서 여기서 평생 살 거야. 시끄러우면 네가 이사가! 애도 없이 절간 같으니 네가 예민한 거지! 뭐 이런 내용이었다. 그 집 아저씨가 쫓아내려와 아줌마랑  나를 말렸다. 아저씨가 조금만 늦었어도 아줌마의 머리끄덩이를 쥐어뜯고 얼굴을 할퀴였을 터였다. 쌍방폭행으로 난리 났을 텐데 막장으로 가기 전에 상황이 종료되어 새삼 고마웠다.

  아줌마의 조언을 따라 전세가 끝나자마자 이사를 했다. 9층 아줌마는 죽을 때까지 네 식구 30평대 아파트에서 사신다니 집 없는 내가 떠나는 것이 맞지. 그렇게 같은 동의 22층으로 이사를 해 나도 9층 아줌마처럼 두 딸의 엄마가 되었다. 웃긴 건 같은 동이라 엘리베이터에서 아줌마와 간혹 마주쳤는데 우리 아파트는 이웃과 엘리베이터에서 인사하는 문화가 있다. 몰라도 보면 그냥 인사를 하는 아름다운 문화인데 그 여편네 하고는 서로 쌩깠다. 그 집 두 딸도 다른 이웃에겐 인사를 해도 나에겐 하지 않았다. 싸가지 상실은 유전이로구나. 애미나 딸들이나 싹퉁바가지라고 그들을 볼 때마다 속으로 욕을 했다. 더한 악담도 했는데 생략하자. 우아하고 싶으니까.

  오늘 진이를 데리고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9층에서 멈췄고 설마 했는데 이 아파트에 뼈를 묻을 분과 그 자녀분이 탔다. 눈이 마주쳤는데 서로 외면했다. 내가 먼저 내렸는데 역시나 인사는 나누지 않았다. 어쩌다 친인척 하나 없는 외딴 지역에 시집와서 친구도 아니고 원수만 만들었는지 스스로가 좀 한심했다.

  2년 뒤 이사를 할 예정인데 어디로 갈지 아직 모르겠지만 그곳에는 흉흉한 증오 말고 싱그러운 친절만 뿌리고 싶다. 이곳에 심은 증오엔 싹이 돋지 않아 영 별로니!


작가의 이전글 잊을 수 없는 떡볶이 코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