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을 때리는 매운 시집살이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여러분 집중해 주세요. 여기 호되게 시집살이를 당한 가여운 여자가 있으니...
그날도 주말에 애들을 데리고 시댁에 방문했다. 시어머니가 다진 청양고추와 멸치로 양념장을 만드셨는데 정말 맛있었다. 뜨끈한 밥에 양념장을 한술 넣어 쓱쓱 비벼먹으니 콧등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면서 육아로 쌓인 스트레스가 풀렸다. 맛있게 먹는 내 모습을 유심히 보던 시어머니는 재료가 있는데 만들어가겠냐 물었고 좋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까지는 정말 좋았다. 청양고추 한 봉지를 주며 다지라고...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맨손으로 고추를 숭덩숭덩 찹찹 자르기 시작했다. 눈이 좀 매웠지만 주부 3단인데 고추에 굽힐 리가.... 태권도도 3단이면 검은띠 아닌가. 개의치 않고 도마 위 신명나는 칼부림을 부렸다. 그렇게 한참 고추를 다져놓자 시어머니가 멸치와 다진 고추를 냄비에 넣고 마법의 가루를 뿌려 푹 끓이니 아까 먹은 멸치 고추양념장이 완성되었다. 락앤락 반찬통에 가득 옮겨 담으니 뿌듯했는데 문제는 집으로 돌아온 후 생겼다. 왼손이 떨어져 나갈 듯 화끈거리며 아렸다. 마치 화상을 당한 것처럼 살갗 깊숙이 고통이 전해졌다.
'왜 이러지 갑자기??'
불현듯 맨손으로 맵디매운 청양고추 한 봉지를 다진 것이 생각났다. 시어머니는 모르셨을까? 매운 식재료를 맨손으로 다지면 캡사이신 화상을 입는다는 것을? 주부 10단 어머니가 몰랐을 리가 없을 텐데.... 지금 이거 날 멕인 건가? 화닥화닥 아픈 손은 둘째치고 서운함이 밀려왔다. 병히에게 고추를 다지다 화상을 입었다니 뭔 개소리냐고 믿지 않았다. 벌겋게 달아오른 손을 직접 보고선 휴대폰으로 열심히 검색을 하더니 "진짜네! 화상을 입는다네!"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어머니에 대한 섭섭함을 쏟아냈다. 이것이야 말로 원초적인 매운 시집살이고 그걸 내가 호되게 당했다고. 장갑 끼란 소리가 어려운 것도 아닌데 이건 다분히 의도적이라고 열변을 토하니 병히는 그제야 미안하다고 대신 사과를 했다. 그러나 죄 없는 병히의 사과는 마음의 동요를 전혀 일으키지 못했다.
시어머니는 왜 그러셨을까? 그러고 보니 내가 시가에 가면 한겨울 딸기를 사놓고 먹으라고 주셨다. 두 딸이 좋아해 기뻤는데 그거 아시죠? 과일은 찬물로 씻어야 하는 거. 찬물로 소쿠리 속 딸기를 맨손으로 씻으면 손이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병히가 고기를 좋아하니 시가에서 구운 고기를 자주 먹었는데 찬물에 상추와 깻잎을 씻는 건 내 몫이었다. 그동안 별생각이 없었는데 다진 고추로 화상을 입자 저의가 있었는데 내가 몰랐구나 싶었다. 그리고 그 후로 시가 방문 횟수를 줄였다. 남편과 아이들만 보냈다. 대놓고 따져 묻는 것도 속좁아 보이니 그저 상황을 피하면 그만이라고. 매주 가던 시가를 어쩌다 두 달에 한번? 행사 때나 찾게 되었다.
병히가 무말랭이 무침을 좋아한다고 그 단단하고 큰 무를 손톱크기로 자르게 시키고 마늘을 먹으라며 통마늘 한 접을 두식구 살림인데 묻지도 않고 주고 여름이면 큰 수박을 쪼개라고 손도 크고 힘도 좋은 아들이 옆에 있는데 굳이 내 앞에 들이밀었다. (내가 낑낑거리며 대왕수박과 사투할 때 병히는 낄낄거리며 티브이를 봤다) 그런데 병히가 아이들 새로 산 샌들에 묶인 아주 실처럼 얇은 플라스틱 끈을 가위 없이 맨손으로 끊으려 잡아당기자 옆에서 보던 시어머니가 손 다친다고 호들갑을 떠는 것이 아닌가. 저 얇은 플라스틱 끈에 아들 손 다치는 건 무섭고 무나 수박을 썰다 며느리 손이 부엌칼에 썰리는 건 괜찮은 분이구나..... 그 광경에 또다시 정신이 번뜩 들었다.
이런 일례의 사건들로 많이 배웠다. 그리고 그 교훈을 뼈마디 마디에 새겼다....... 아! 맵고 쓴 시월드 탈출은 도대체 언제쯤!!!